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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08. 2023

나와 다른 너로 인해, 나도 나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3

나와 다른 너로 인해나도 나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3     


돼지는 맑은 물보다 진흙탕을 즐깁니다.

ες βορβόρῳ ἥδονται μλλον ἢ καθαρῷ ὕδατι

(휘에스 보르보로이 헤돈티이 말론 에 카타로이 휘다티)

Clemens, Stromateis 1.2.2     


읽다:     


저마다 좋음은 다르다. 나에게 좋음이 다른 이에겐 나쁨일 수 있다. 나에게 나쁨이 다른 이에겐 좋음일 수 있다. 이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좋음이 심지어 누군가에겐 독일 수 있다. 나의 과도한 좋음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나만 생각하며 살아가다 보면 내가 곧 우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좋은 게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다고 믿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며 나의 좋음을 우리 모두에게 강요한다. 마치 정답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독이 될 수 있음에도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없이 독을 강요하는 셈이다. 그러니 그 독에 누군가 죽어도 모른다. 조금의 죄책감도 없다. 자신은 그저 좋음을 나누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자신은 아주 선한 사람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참 독한 아집(我執)이다.     

돼지의 좋음은 맑은 물이 아니라, 진흙탕이다. 그것은 돼지가 좋은 것을 몰아서가 아니다. 돼지도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단지 돼지의 좋음을 우리가 우리가 무시하는 거다. 진흙탕을 좋아하는 돼지의 삶을 무시하는 거다. 그에겐 그의 좋음이 있고 그 좋음 속에서 그는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할 수 있다. 자연의 오랜 지혜, 그 지혜로 이루어진 좋음일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돼지의 좋음을 무시한다. 참 독한 아집이다.      

나와 다름이 나 아닌 너를 너로 만드는 너의 본질이다. 너와 다름이 너 아닌 나를 나로 만드는 나의 본질이다. 네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고 굳이 통일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각자의 좋음이 각자의 좋음으로 긍정될 때 바로 그곳에서 서로의 좋음을 위해 배려도 흔하디 흔한 것이 된다. 어쩌면 바로 그 자리가 진짜 제대로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나와 다른 너를 나와 같게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네가 너로 긍정되는 바로 그곳,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제대로 우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나와 다른 너로 인해, 나도 나이고, 너와 다른 나로 인하여, 너도 너인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유지승 씀

2023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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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사진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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