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3
나와 다른 너로 인해, 나도 나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3
“돼지는 맑은 물보다 진흙탕을 즐깁니다.”
ὕες βορβόρῳ ἥδονται μᾶλλον ἢ καθαρῷ ὕδατι
(휘에스 보르보로이 헤돈티이 말론 에 카타로이 휘다티)
Clemens, Stromateis 1.2.2
읽다:
저마다 좋음은 다르다. 나에게 좋음이 다른 이에겐 나쁨일 수 있다. 나에게 나쁨이 다른 이에겐 좋음일 수 있다. 이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좋음이 심지어 누군가에겐 독일 수 있다. 나의 과도한 좋음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나만 생각하며 살아가다 보면 내가 곧 우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좋은 게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다고 믿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며 나의 좋음을 우리 모두에게 강요한다. 마치 정답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독이 될 수 있음에도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없이 독을 강요하는 셈이다. 그러니 그 독에 누군가 죽어도 모른다. 조금의 죄책감도 없다. 자신은 그저 좋음을 나누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자신은 아주 선한 사람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참 독한 아집(我執)이다.
돼지의 좋음은 맑은 물이 아니라, 진흙탕이다. 그것은 돼지가 좋은 것을 몰아서가 아니다. 돼지도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단지 돼지의 좋음을 우리가 우리가 무시하는 거다. 진흙탕을 좋아하는 돼지의 삶을 무시하는 거다. 그에겐 그의 좋음이 있고 그 좋음 속에서 그는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할 수 있다. 자연의 오랜 지혜, 그 지혜로 이루어진 좋음일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돼지의 좋음을 무시한다. 참 독한 아집이다.
나와 다름이 나 아닌 너를 너로 만드는 너의 본질이다. 너와 다름이 너 아닌 나를 나로 만드는 나의 본질이다. 네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고 굳이 통일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각자의 좋음이 각자의 좋음으로 긍정될 때 바로 그곳에서 서로의 좋음을 위해 배려도 흔하디 흔한 것이 된다. 어쩌면 바로 그 자리가 진짜 제대로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나와 다른 너를 나와 같게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네가 너로 긍정되는 바로 그곳,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제대로 우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나와 다른 너로 인해, 나도 나이고, 너와 다른 나로 인하여, 너도 너인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유지승 씀
2023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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