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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11. 2023

진짜 ‘신비’의 자리는 바로 여기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4B

진짜 신비의 자리는 바로 여기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4B     


사람들이 사이 행해지는 신비의 의식은 거룩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τά νομιζόμενα κατ’ ανθρώπους μυστήρια άνιερωστι μυουνται.

타 노미즈도메나 캇 안트로푸스 뮈스테리아 아니에로스티 뮈운따이

Clemens, Protrepticus, 22,2     


읽다:     


현실의 고단함과 부조리를 참고 참으면 죽어서 천국 간다는 종교가 많다. 맞는 말 같지만, 결국 억울한 고단함과 부조리에 소리칠 이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 종교의 말에 순종해야 하니 말이다.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거다. 순종은 생각이 필요 없다. 생각 없이 종교 권력자의 말을 따라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생각 없는 자의 자리엔 항상 ‘타락’이 함께 한다. 생각 없는 자를 부려 먹는 나쁜 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이는 자신의 돌아보지 않는다. ‘명령’을 기다릴 뿐이다. ‘명령’을 기다리는 자 앞에서 명령 내리는 자는 쉽게 자기 욕망을 종교의 언어로 미화해 명령하기도 한다. 결국 생각 없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다. 그러니 타락이 어찌 없겠는가.      


신비의 자리, 그 자리는 생각 없는 이들의 자리가 아니다. 신비의 자리는 자기 힘으로 자기 신비를 깨우친 이들의 자리다. 남의 명령에 따라 신비를 향하는 이들은 사실 거짓 신비에 속은 거다. 진짜 신비의 자리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 걸음으로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바로 그런 삶의 자리다. 참 신비의 자리는 수동적인 이들의 자리가 아니다. 명령을 기다리는 이들의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신성해 보이는 의식(儀式)이라도 자기 생각으로 자기 답을 만들지 못하면, 즉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지 못하면, 그곳은 절대 신비의 자리가 아니다. 거짓 신비의 자리일 뿐이다. 누군가 홀로 자기 욕심을 누리고 누군가 홀로 신에게 더 가깝고 누군가 홀로 더 고귀하다는 자리, 그러니 그의 앞에 또 다른 누군가는 명령을 듣기만 하고 가져다 바치기만 하고 고개 숙이기만 해야 한다는 자리, 그런 자리는 절대 진짜 신비의 자리가 될 수 없다. 그저 거짓 신비의 자리일 뿐이다. 거짓이 종교의 언어로 미화된 위선의 자리다.      


참 신비는 스스로 자신의 신비를 깨우친 이들의 자리다. 참 신비의 자리는 서로의 신비를 알아보며 서로를 신비를 깨우친 자리다. 자기 신비도 서로의 신비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누군가의 명령으로 신성한 의식 속에 있다고 한들 어찌 신비스러운 이들이라 하겠는가? 어찌 신성하고 거룩한 이라 하겠는가! 신비와 신성과 거룩함의 자리는 바로 여기 지금이다. 


유지승 씀


2023년 7월 22일



구미 도리암에서 사진 유대칠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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