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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14. 2023

영원은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2

영원은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조각글 B12     


같은 강에 다시 발을 놓아도 우리에는 또 다른 물에 씻길 뿐입니다.

ποταμοσι τοσιν ατοσιν μβαίνουσιν τερα καὶ ἕτερα δατα πιρρε

(포타모이시 토이신 아우토이신 엠바이누신 헤테라 카이 헤테라 휘다티 에피르레이)

L Didymus, in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XV,20     


읽다:      


항상 변한다. 영원한 건 없다. 영원이란 변하지 않음이다. 변화의 헤아림이 시간이라면, 영원은 시간의 밖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를 다르다. 그렇게 다름 가운데 있다는 건 내가 시간 속에 있다는 거다. 아무리 ‘나’라는 이름으로 존재해도 어제와 같지 않다. 그렇게 매일 매 순간 나는 과거를 떠나 미래를 향하는 현재를 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내가 마주하는 모든 존재자 역시 그러하다. 계속 변화한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다. 치열하게 어제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현재를 산다. 내가 어제 만난 누군가를 어제의 모습으로만 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지금의 그가 아닌 어제의 그를 알 뿐이다. 그렇게 알고 있는 그를 지금의 그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그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이 변화했을 수 있다. 물론 생각보다 아주 조금 변화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많이 변했건 조금 변했건 그는 어제의 그가 아니란 사실이다. 우리의 개념은 항상 과거를 담고 있다. 한때 현재였던 시간의 발자국일 뿐이다. 지금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나이가 많아 더 많은 과거를 담게 되면, 종종 그 과거 속에서만 살게 된다. 현실 속에서 새로운 것과 마주하고 미래를 향하여 치열하게 나아가기보다 과거의 기억 속에 안주한다. 그렇게 과거에 안주하며 미래를 향하지 못할 때, 우린 우리의 아집이란 허물 속에서 서서히 병들어간다.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가 힘겨워 점점 과거에 새겨진 개념, 그 기억 속으로 숨어들고 그 가운데 산다. 심지어 적당히 미화된 과거 속에서 말이다.      


영원한 건 없다. 생명이란 쉼 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그 이치 가운데 쉼 없이 과거로부터 달아나 미래를 향하여 도주하는 현재라는 ‘애씀’으로 존재한다. 과거의 기억으로 숨지 않고, “그래도 다시 한번!”이라고 소리치며,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여정이 인생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것이 나로 존재하는 나의 일이다. 내 존재의 모습이다.      


‘영원’은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에 없는 것에 우리 삶을 걸지 말자. 이 세상 어떤 아픔도 괴로움도 모르는 존재에게 나의 존재를 걸지 말자. 초월 존재는 잊어버리자. ‘영원’이 아니라 ‘변화’다! 이 세상은 쉼 없이 변화한다. 나 역시 그렇다. 원하는 대로 변하지 않고 때론 좌절하고 때론 너무나 괴로운 우리 삶의 모습이다. 그냥 변화하는 게 아니라, 고뇌하고 치열하게 궁리하며 변한다. 때론 함께 미래를 향하는 이와 손을 잡고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변해간다. 나의 손을 잡지 못하는 이 세상 밖 영원에 기대지 말고 변화하는 나, 그리고 변화하는 우리 자신에 충실해 보자. 내 삶의 희망은 바로 여기 변화하며 좌절하는 여기,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하나도 없어 나를 괴롭게 하는 바로 여기, 바로 여기 있을 때 진정 나와 우리의 희망이기에 말이다. 


유대칠 씀



선덕여왕과 함께 2020년 사진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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