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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06. 2023

철학을 '왜' 하지?

유작가의 인도 철학 이야기

철학을 ’ 하지?        

       

도대체 왜! ‘나’는 왜!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운가? 이보다 절실한 철학의 이유는 없다. 자연을 향한 경이로움, 그것에서 철학이 시작했다는 건 사실 믿기 어렵다. 자연을 향한 경이로움, 그것보다 정말 정말 나의 삶에 절실한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괴로운가? 나의 잘못인가? 특별히 크게 죄인으로 살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 괴로운가?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결국 철학이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다.      


왜 괴롭지? 어쩌면 잘 몰라서일지 모른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나를 모를 수 있다. 나라고 아는 것도 사실 거짓이거나 과장일지 모른다. 나도 나를 제대로 모른단 말이다. 나도 모르는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찌 알까?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 진짜를 알아야 한다. ‘철학’이란 말, 즉 유럽말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고 부르는 것을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샤나(darsana)’ 혹은 따뜨와(tattva)라고 한다. 이 말들은 진짜를 보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나의 진짜를 알아내겠다는 말이다. 물론 내가 사는 이 우주의 진짜도 알아내겠다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우린 영원한 사랑을 원한다. 나의 자녀가 지금과 같이 영원히 변치 않고 자신만 바라보고 자기 말만 듣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건 아집(我執) 속에서 만들어진 욕심(欲心)이다. 사랑은 변한다. 자녀도 변한다. 영원한 건 없다. 영원을 향한 욕심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영원한 것 없는 세상에서 영원을 바라니, 무엇으로도 그 욕심을 채울 수 없다. 그냥 괴로울 뿐이다. 어제 뱀을 지켜주던 뱀의 허물은 이제 뱀의 감옥이 되어 버렸기에 버린다. 어제의 뱀과 지금의 뱀은 다르다. 어제는 뱀은 작지만, 지금의 뱀은 성장했으니 더는 과거의 허물에 머물 수 없다. 그러니 버려야 한다. 버려야 산다. 뱀도 변했고 뱀의 변함에 따라 허물의 가치도 변했다. 뱀이 허물을 너무 사랑해 영원히 함께하려 하면, 뱀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허물 속에서 죽을 거다. 허물이 뱀을 너무 사랑해 뱀을 놓아주지 않아도 뱀은 죽는다. 허물은 더는 보호막이 아닌 감옥이 되어 뱀의 목을 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뱀도 허물도 괴롭지 않기 위해 뱀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그런데 영원을 추구하며 영원히 함께하자면, 모두가 괴롭고 모두가 죽는다. 제대로 알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뱀은 자연히 하는 일을 우리는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버릴 때 버리지 못하니 괴롭다. 그러니 철학으로 진짜를 알아가는 거다. 버릴 건 버리기 위해 말이다. 나 자신조차 버릴 것은 버리며 새롭게 되기 위해 말이다. 아집에서 만들어진 억견(臆見) 속에서 괴로워하며 죽어가지 않기 위해 말이다.      


철학은 괴롭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인도철학 역시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철학은 우리에게 뜻을 품는 거다.      


유지승 씀

2023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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