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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27. 2023

「창세기」 1장 2절: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다.

경전 읽기

창세기」 1장 2우린 아무것도 아니었다     

ב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wə·hā·’ā·reṣ, hā·yə·ṯāh ṯō·hū wā·ḇō·hū, wə·ḥō·šeḵ ‘al- pə·nê ṯə·hō·wm; wə·rū·aḥ ’ĕ·lō·hîm, mə·ra·ḥe·p̄eṯ ‘al- pə·nê ham·mā·yim.

(뵈하아레쯔, 하예타 토후 봐보후, 뵈호쉐크 알 페네 테홈 뵈루아흐 엘로힘, 메라헤페트 알-페네 함마임)

그리고 그 땅은 어떤 모습도 없이 텅 빈 채 있었고, 그리고 어둠이 깊은 수면 위에 있고, 신의 숨이 물 위를 떠다녔다.     


맨 처음, 모든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구체적 모양 없이 있으니 구체적 이름도 없고, 구체적 이름이 없으니 구체적으로 부르고 기억할 무엇으로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있다고 해도 없는 것이니 같다. 어떤 모습도 없이 텅 비어있단 말이다. 그 위에 신의 숨, 즉 신의 바람이 떠다녔다. 자연현상으로 보면 그저 바람이지만, 사람으로 보면 숨, 즉 호흡이다. 사람의 호흡은 사람의 생명이고 또 사람의 정신이다. 라틴어 spiritus를 보면 알 수 있다. 숨이란 말이었지만, 호흡이 되고, 또 정신이 된다. 그런데 신의 숨은 사람과 같은 생명체에겐 어쩌면 생명의 시작이다. 신의 숨을 나누어 품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살아있지 않다. 아직 생명체도 아니니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신의 숨을 나누어 품어 생명체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제 자기 삶을 시작하게 되면, 이제 자기 힘으로 무엇이 될 수 있다. 자기 생각과 결단으로 말이다. 숨, 즉 자기 생명과 자기 생각을 품은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람의 앞에 놓인 첫 관문은 좋음과 나쁨의 기로일지 모른다. 자기 결단으로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기 결단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숨을 쉬고 생각하게 되면, 이제 책임을 지며 사는 존재가 된다.      


살아가면서 매 순간 쉼 없이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잠시의 만남인 배달하시는 분에서 오랜 만남이 이어지는 인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만나며 살아간다. 그 순간, 우린 쉼 없이 선악과의 앞에 선다. 나만을 생각하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게 편하다. 그냥 자기만 생각하면 된다. 자기 답만 답이라 고집하면 되고, 자기 생각만 바른 생각이라 고집하면 된다. 남의 숨은 모두 죽이고 자기 숨을 위해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면 된다. 강하고 부유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면 그만이다. 그게 더 쉽다. 하지만 선악과의 앞에서 좋은 사람이 되긴 참 어렵다. 나의 앞에 나와 더불어 있는 이와 나, 우리의 좋음을 생각해고 결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우리의 좋음에 나의 좋음은 줄어들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줄어들어도 우리의 좋음 안에서 나에게 기쁨인 것이 더불어 좋음이다. 그리고 참 좋은 사람은 더불어 좋을 때 가능하다.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게 우리다. 그런 우리가 숨을 품고 산다. 하지만 항상 기억해야 하는 건, 우리의 본모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내 것을 더 늘인다 해도 나는 나조차 나의 것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거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것에 집착함은 무슨 의미겠는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되어 홀로 웃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그냥 이 구절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참 대단하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도덕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는 나쁜 이가 될 수도 있고 좋은 이가 될 수도 있다.      


유대칠 옮기도 씀

2023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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