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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Dec 13. 2023

김소연의 '연두가 되는 고통'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연두가 되는 고통     

김소연      


왜 하필 벌레는

여기를 갉아 먹었을까요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들고 네가

질문을 만든다     


나뭇잎 구멍에 눈을 대고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나뭇잎 한 장에서 격투의 내력이 읽힌다     


벌레에겐 그게 긍지였겠지

거긴 나뭇잎의 궁지였으니까

서로의 흉터에서 사는 우리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준다     


물조리개를 들 때에는 어김없이

산타클로스의 표정을 짓는다     


보여요? 벌레들이 전부 선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새잎이 나고 새잎이 난다     


시간이 여위어간다

아픔이 유순해진다

내가 알던 흉터들이 짙어진다     


초록 옆에 파랑이 있다면

무지개,라고 말하듯이     


파랑 옆에 보라가 있다면

멍,이라고 말해야 한다     


행복보다 더 행복한 걸 궁지라고 부르는 시간

신비보다 더 신비한 걸 흉터라고 부르는 시간     


벌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든 네게서

새잎이 나고 새잎이 난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사실 드문 일이 아니다. 흔하다. 마음먹고 찾겠다면 찾을 수 있다. 벌레 먹은 구멍 난 나뭇잎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살다 갑자기 그 흔함을 손에 잡고 질문을 건진다. “왜 하필 벌레는 여기를 갉아 먹었을까요?” 머릿속으로 아픈 나를 돌아보게 되는 구절이다. 아무것도 아닌 부분, 없어도 그만인 부분, 그런 부분은 상처가 되어도 그리 아프지 않다. 말 그대로 사라져도 그만이니까. 사라져도 되는 게 내가 궁지가 되지 못한다. 나름 내게 귀한 것, 희망인 것, 바로 그곳이 궁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그곳으로 긍지를 누리는 이도 있다. 나뭇잎의 궁지였던 부분을 갉아먹은 벌레에게 나뭇잎의 궁지는 자신의 긍지였을 거다. 참 슬픈 긍지이고 찬 아픈 궁지다. 그리 보면 나에겐 ‘나뭇잎 구멍에 눈을 대고’ 하늘을 바라보는 창이 되어주지만, 사실 그 “나뭇잎 한 장에서 격투의 내력이 읽힌다.” 누군가에겐 궁지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긍지이며 또 나에겐 하늘을 바라보는 창이 되는 격투의 자리, 싸움터, ‘서로의 흉터에서 사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는 아픈 나뭇잎 한 장이다.     

 

“벌레들이 전부 선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 궁지의 자리마다 자기 긍지를 위해 구멍을 내는 벌레들이 전부 선물이었으면 좋겠다니. 그래, 어쩌면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나뭇잎의 편에선 구멍 나 떨어져 흙이 되어 다시 시작하는 편이 더 좋을지 모른다. 나무 편에선 벌레로 인한 자기 상처마저도 스스로 이겨내며 또다시 새잎을 내는 편이 더 좋을지 모른다. “새잎이 나고 새잎이 난다”라는 글귀에서 나는 아픈 싸움터, 이 고난의 자리에서 안간힘을 다하는 생명의 애씀을 읽는다. 결국 “흉터들이 짙어진다.” 그 시간을 보내고 ‘행복보다 더 행복한 걸 궁지라고 부르는 시간’이라 하고 ‘신비보다 더 신비한 걸 흉터라고 부르는 시간’이라 이야기한다. 극한의 행복, 그것이 궁지라는 시간이란다. 극한의 신비, 그것을 흉터라고 한다. 행복이란 지금의 안락이 아닌 고난 가운데 아픈 궁지 가운데 이겨내는 애씀이며, 흉터는 바로 그 여정의 흔적이다.      


구멍 난 나뭇잎, 그 격투의 자리를 잊고 우린 ‘산타클로스의 표정’을 하고 새잎을 위해 물조리개를 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궁지의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우린 다시 새잎을 위해 물조리를 드는지 모르겠다. 


연두의 아름다움, 나뭇잎의 그 흔함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나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은 내 삶의 힘겨움 같아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왜 하필 내 혼의 여길 갉아 먹었을까.... 


유대칠 읽고 씀


[제가 잘못 읽었을 수 있습니다. 부디 시인 김소연의 시집 <수학자의 아침>(문학과 지성사)을 구하셔서 직접 읽어주세요. 각자의 시선엔 각자의 생각이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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