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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Dec 14. 2023

나희덕의 '뿌리로부터'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뿌리로부터     

나희덕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린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뿌리로부터 달아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뿌리로부터 달아나려는 정신의 행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허공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뿌리 대신 뿔이라는 말은 어떤가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 올리면

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뿌리로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오늘의 일용할 잎과 꽃이

천천히 시들고 마침내 입을 다무는 시간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뿌리에 의지해 살다 뿌리를 벗어날 때, 불안하다. 뿌리, 생명의 시작,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게 하는 든든한 토대, 스스로 과거가 되어 미래를 위해 잊혀야 하는 존재, 나에게 뿌리란 이런 존재다. 어느 생명도 뿌리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뿌리에서 시작한 생명의 힘은 뿌리에 머물지 않고 여러 가지로, 또 가지마다 달린 여러 줄기로, 또 줄기마다 달린 여러 잎으로 흩어져간다. 흔들림 없이 단단한 기운의 힘, 그 힘은 갈라지고 갈라지며 가느다란 무엇이 되어 흩어져간다. 그러나 이는 나약해져 감이 아니다. 가벼워짐이며, 또 성장함이다. 가벼워짐은 더 많은 가능성으로 자신을 채워감이며, 성장함은 더 단단히 뿌리에 의존함이 아니라, 허공으로 날아가 다시 또 다른 뿌리로 새로운 시작을 시작할 희망이다.      


‘뿌리의 신도’로 시작하지만, 우린 ‘뿌리의 신도’로 끝날 순 없다. 뿌리에 향한 믿음은 줄기를 향한 믿음이 되어야 하고, 다시 그 믿음은 줄기보다 더 가는 잎을 향한 믿음이 되어야 한다. 결국엔 ‘잎보다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 되어야 한다. 그게 생명이다. ‘뿌리의 신도’에서 시작해 ‘뿌리의 신도’로 끝나는 생명은 생명이 아닌 죽음이기에 말이다. 단단하게 박힌 뿌리에 머물 것이 아니라, ‘흩날릴 준비’를 하는 것이 생명이기에 말이다. 단단한 뿌리에서 점점 가늘게 나약해져 가는 자신을 보면 불안할 거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 올리’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어야 생명이다. 그게 사는 거다. 그게 삶이다. 식물이든 나든 말이다. 불안하고 힘들어도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이 삶이다. 식물이든 나든 말이다. 누구나 ‘뿌리의 신도’였지만, 결국 작디작은 씨앗이 되어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될 때 우린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자격을 얻게 되는 거다.     


뿌리에서 나는 열심히 달아가고 있다. 나는 점점 흩어져 비워진 존재가 되지만 결국 그 비워짐의 불안만큼이나 나는 가벼워지고 있다. 그러니 아프게 불안해하지 말자. 그렇게 가벼워진 후에야 나는 허공에 날리며 새로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유대칠 읽고 씀


[부디 나희덕 시인의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 지성사)를 구하셔서 직접 읽어주세요. 각자의 시선엔 각자의 생각이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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