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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Dec 22. 2023

손택수의 '죽음이 준 말'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죽음이 준 말

손택수     


조문을 가서 유족과 인사를 나눌 때면 늘 말문이 막힌다     


죽음을 기다리는 병실에 병문안을 갈 때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쾌유를 빕니다

이런 유창한 관용구는 뭔가 거짓만 같은데

그럴 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내게 구박만 받던 관용구는 늙은 아비처럼 나를 안아 준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좋으니

내 것이 아닌 말이라도 좀 흘러나왔으면 싶을 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말이 그치는 그때,

어둠 속 벽을 떠듬거리듯 나는 말의

스위치를 더듬는다


그럴 때 만난 눈빛들은 잘 잊히질 않는다

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4월 16일, 세월호의 아픔이 녹아든 그날은 내 아들의 생일이기도 하다. 나는 내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 아픔을 마주했다.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니지만, 한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더불어 있음 속에서 나는 미안했다. 나는 슬펐다. 나는 아팠다. 그리고 그 미안함과 슬픔 그리고 그 아픔은 곧 떠난 이의 남은 가족을 향하게 했다. 막상 “조문을 가서 유족과 인사를 나눌 때면 늘 말문이 막”혔다. 어떤 말도 그 큰 상실의 아픔을 담을 수 없기에, 어설픈 내 말의 “스위치를 더듬”으며 애쓰지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나는 “말이 그치는 그때”를 피할 수 없다. 어디 세월호의 아픔에서만 그렇겠는가. 영원한 이별의 시간,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함께 한 모든 장례식에서 나는 항상 어설픈 내 말의 “스위치를 더듬”어야만 했다. 그때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쾌유를 빕니다. 이런 유창한 관용구는 뭔가 거짓만 같은데 그럴 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시간 내 입에서 새어 나온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보다 서로 주고받은 눈빛, “눈빛들이 나의 말”, 가장 진실한 내 말이었다. 내 입의 말로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그 어떤 마음이 드러난 가장 진실한 내 말이었다. 


그리고 세월호, 그 아픔의 시간,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라는 어쩔 수 없는 내 말보다 그 아픔과 더불어 든 촛불이 내 가장 진실한 말이었고 내 가장 진실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 말이고 내 마음이다. 지금도. 지금도. 지금도 말이다.     


유대칠 읽고 씀     


[부디 손택수 시인의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문학동네)를 구하셔서 직접 읽어주세요. 각자의 시선이 보는 각자의 생각이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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