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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Dec 31. 2023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에 나는'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시간은 잠시도 멈춤 없이 흐른다. 항상 흐른다. 그냥 흐르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지우며 흐른다. 아무리 대단한 것도 결국 지워진다. 없던 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런 시간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 안다. 단지 내 삶으로 불러 생각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모든 걸 지우는 그 시간을 내 삶에 불러 생각하는 순간, 나의 앞에 놓인 나의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는 무엇이란 걸 깨우치게 된다.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을 때, 결국 흰 공기에 담긴 밥도 영원하지 않을 걸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존재도 피어오르는 김과 같이 사라질 걸 마주하게 된다. 그 마주함 앞에서 바로 그때에서야 “알았다” 고백하게 된다. “나는 밥을 먹었다.” 그러니 흰 공기 가득한 밥은 사라지고 빈 공기만 남을 것이다. 그 빈자리만큼 내 배고픔은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내 육체도 사라져 땅의 기운으로 돌아갈 거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다시 잡초가 되어 자라고 어느 동물의 먹이가 되어 살아갈 거다. 더는 ‘나’란 아집 없이 말이다.      


이건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담담히 바라보아야 할 내 존재의 모습이다.     


유대칠 읽고 씀


[부디 한강 시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 지성사)를 구하셔서 직접 읽어주세요. 각자의 시선이 보는 각자의 생각이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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