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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01. 2024

한강의 '어두워지기 전에'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어두워지기 전에

한강     


어두워지기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을

너는 그림자로도 문지르지 않고

내 눈을 건너다봤다,

내 눈 역시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두려웠다.)

두렵지 않았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분명히 “더 어두워질 거라고” 확신에 찬 말을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난 이미 들었다. 그러니 모르지 않았다. 벌써 알고 있었다. 그것도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을” 가진 또 다른 나인 너에게서 그 말을 들었다. 그런 “너는 그림자로도 문지르지 않고 내 눈을 건너다봤다.” 당연히 “내 눈 역시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 너를 보고 있겠지. 너는 남이 아닌 나의 또 다른 나이니.     


굳이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안다. 누군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내 삶의 예언자가 되어 알려준다. 어둠이 찾아온다고 말이다. 더욱 어두운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어둠이지만, 이미 두려운 마음에 아직 오지 않은 어둠은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되어 있다. 이미 여기 있단 말이다. 그리고 그 어둠이 내 눈에 박히더니 내 눈도 이젠 지옥이 되어 힘겨워하고 있다. 그런 내가 나에게 어둠이 온다는 걸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이미 지옥이 되어 지옥 속에 사는 나에게 말이다. 이미 담담히 그 어둠을 안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어쩔 수 없는 두려움에 내 혼은 이미 지옥이 되어 있다. 난 그렇게 지옥이다. 슬프게도 말이다.     


이 깊은 지옥에서 어찌 벗어날까. 어둠만을 응시하는 이 눈에서 어찌 어둠을 지울까. 어쩌면 너무 깊은 두려움에 아예 벗어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이미 이런 두려움이 일상이 되어 ‘나’란 존재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슬프게도.     


유대칠 읽고 씀


[부디 한강 시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 지성사)를 구하셔서 직접 읽어주세요. 각자의 시선이 보는 각자의 생각이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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