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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08. 2024

나희덕의 '너무 늦게 죽은 사람들'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너무 늦게 죽은 사람들

나희덕     


불에 그을린 다섯 구의 시신     


장례도 치를 수 없어 영안실 냉동고로 옮겨졌다 그러나

어떤 냉기도 그들을 얼릴 수 없었다     


2009년 1월 19일

용산 4구역 남일당 망루,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그들은

불길 속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던 그들은

냉동고 속에서도 외쳤다     


너무, 뜨거워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이 뜨거운 얼음 속에서, 우릴 좀 꺼내주세요.     


영하 20도의 냉동고 속에서

불을 앓던 사람들은

355일 만에야 풀려나 흙으로 돌아갔다

너무 늦게서야 죽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유리로 된 마천루와 주차장이 들어섰다

흙과 불의 기억은 지워졌다     


완벽하게 포장되어

그날의 기억이라곤 남아 있지 않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그곳에서 두리번거렸다

그날의 화염과 비명의 메아리를 아스팔트 위에서 기억해내려고     


그해 여름 용산역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내 손목이 떠올랐다

전단지를 받아들거나 내팽개치던 행인들의 손목이     


너무 늦게 죽은 사람들을

너무 일찍 잊어버린 사람들 속에 오래 서 있었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2018년 영화 ‘염력’에선 초능력의 아버지가 불길에 죽어가는 이들을 구했다. 초능력, 이 세상에 없는 능력으로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능력은 이 세상에 없는가 보다. 2009년 1월 19일 그 불의 비극은 한 없이 아프기만 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그들”을 정말 더 이상 물러날 곳 없이 이 세상 끝으로 밀어 버렸다. 그 끝에 “냉동고 속에서도” “너무, 뜨거워요”를 외치며 “우릴 좀 꺼내주세요” 외쳤지만, 그 외침이 한없이 외롭기만 했다. 뜨거운 얼음, 아프고 힘든 이를 죽이는 그 뜨거운 불길과 한 없이 차갑기만 한 얼음 같은 현실, 그 모든 것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완벽하게 포장되어 그날의 기억이라곤 남아 있지 않”게 되었지만, 어쩌면 우린 이미 그들을 너무 빨리 보내버렸는지 모른다. “영하 20도의 냉동고 속에서 불을 앓던 사람들”, 이미 죽었지만, 빨리 죽지 못하고, “355일 만에야 풀려나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그날 그 외로운 절규를 외롭게 두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늦게 죽은 사람들을” 우린 “너무 일찍 잊어버린 사람”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정말 현실에 없는 초능력의 누군가가 필요한가? 우리의 간절함으로 지금이라도 다시 그들을 기억함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은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란 말인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그곳”과 같이 어쩌면 지금 우리네 현실도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 차가움의 공간일지 모르겠다. 


유대칠 씀


[시인 나희덕의 시집 <가능주의자>(문학동네, 2022(3쇄))를 구하셔서 읽어보세요. 각자의 시선에 각자의 이야기가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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