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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30. 2024

나희덕의 '저 바위는 언젠가'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저 바위는 언젠가 

나희덕     


바위에서 긁어낸 이끼들로

배를 채운다     


그럴 때마다 바위에 아주 작은 상처를 입힌다     


최소한의 양분으로 살 수 있게 되고

창자는 점점 단순해지고     


저 바위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허기진 손톱들에 의해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바위의 푸른 이끼는 바위의 그럴듯한 옷이다. 모나고 거친 살을 가리는 푸른색의 옷 말이다. 그런데 “허기진 손톱들”은 그 옷을 그냥 두지 않는다. “허기진 손톱들은”은 “바위에서 긁어낸 이끼들로” 자기의 허기진 “배를 채운다.” 눈에 보일까 말까 조금씩 배를 채운다. 그 허기진 손톱은 분명 마르고 마른 자일 거다. 그러니 촉촉한 푸른 이끼의 그 촉촉함에 목말랐겠지. 메마른 허기진 손톱이 자기 메마름을 그렇게 조금씩 축축하게 채울 때마다, “그럴 때마다 바위에 아주 작은 상처를 입”는다. 그 이끼의 축축함은 바위의 살결과 둘이 될 수 없는 하나이기에 말이다. 메마른 허기진 손톱 역시 크고 엄청난 자라면 이 작은 이끼로 허기를 채우지 않았겠지. 그도 사실 약하고 약한 자다. 그렇게 그도 “최소한의 양분으로 살 수 있게 되고” 더 최소한의 양분을 위해 그의 “창자는 점점 단순해지고” 그가 그렇게 저항할 줄 모르는 나약한 바위의 옷, 이끼를 먹어가면 갈수록 바위도 자기를 지키던 옷을 입고 결국 메마르고 모난 퍼석한 살만 남아 쉽게 부서져 사라지겠지. 그렇게 “저 바위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허기진 손톱들에 의해.”      


미끌미끌 이끼, 내 어린 시절, 시냇가 큰 바위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바위의 미끄러운 옷은 그 바위에 올라 장난치지 못하게 하는 어찌 보면 매우 단단한 갑옷이었다. 언젠가 메마른 이의 건조함이 그 이끼의 축축함을 가지고자 한다면, 그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손톱의 오래고 오랜 별것 아닌 약탈에 부서져 갈 거다. 그러면 그 바위도 서서히 부서져 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끼가 바위의 옷이듯이 바위도 이끼의 집이었구나 싶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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