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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08. 2024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포기'의 진정한 의미

유대칠의 에크하르트 읽기

우리가 드러나게 그리고 보이지 않게 실천해야 한 포기그 가치     


에크하르트 씀

유대칠 옮김 


이 세상엔 너무 많이 포기해서 더는 포기할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한데 이를 제대로 알고 꾸준히 애쓰는 이는 참으로 드뭅니다. 어찌 보면, (참 슬프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받을 것도 없는 참으로) 공정한 거래이며, 평등한 교환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포기하는 가에 따라, 정말 더도 덜도 없이 그만큼, 하느님은 자신의 모든 것과 함께 당신 안으로 찾아오십니다. 당신이 (고집부리는) 그 모든 것 가운데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을 떼어내는 만큼 말입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때 당신은 다른 곳에선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참된 평화를 바로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무엇인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들과 그들이 행하는 방식이 선하다면, 그들의 행위도 당연히 빛날 겁니다. 당신이 의로운 사람이라면, 당신이 한 일 역시나 의로운 것이겠지요. 우리는 거룩함이 우리가 하는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바로 그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건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행위를 거룩하게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행위라는 점에서 보자면, 그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룩하고 존재의 충만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거룩하게 하는 이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으며, 깨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미약한 이들의 행위에도 작은 무엇인가가 나옵니다. 우리는 더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행위의 성격에 관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온 정신을 다해 그 근거, (즉 우리 자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지금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입니다.     


유대칠의 풀이      


우리 각자는 얼마나 비워져 있을까요? 우리 자신을 한번 마주해 봅시다. 어쩌면 우린 욕심으로 가득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의 행위란 것도 바로 그 욕심이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아무리 거룩해 보이고 화려해 보여도 자기만 홀로 더 거룩해 보이고 홀로 더 많은 걸 가지고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위라면, 그 행위는 사실 조금도 거룩하지 않고 조금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도” 그 행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 속으론 자기만 홀로 더 거룩하고 자기만 홀로 더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가 아무리 거룩해 보이는 행위를 하고 착해 보이는 행위를 해도, 어디 그런 행위가 그를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집 없이 나만이 홀로 더 거룩하고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 행위엔 하느님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포기하는 가에 따라, 정말 더도 덜도 없이 그만큼, 하느님은 자신의 모든 것과 함께 당신 안으로 찾아오십니다.” 즉 하느님이 당신이 당신 욕심을 비운 만큼 자신의 안으로 찾아오십니다. 만일 온전히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간다면, 온전히 모든 걸 아프고 힘든 이와 더불어 나누며 살아간다면, 그 비어진 욕심의 자리에 그 비어짐 만큼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더불어 있으시니 당연히 거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욕심 없이 그 자리에 하느님이 더불어 있는 이의 행위,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아프고 힘든 이와 더불어 사는 이의 행위, 바로 그 행위는 그 행위의 주인공이 온전히 자신을 비웠기에 거룩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욕심 없이 하느님으로 채운 이의 행위라 그 행위가 거룩했던 겁니다. 그 행위가 그를 거룩하게 한 게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온전히 비우고 살아가는지, 아집과 욕심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를 이끌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정말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우선 나를 돌아봐야겠습니다.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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