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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11. 2024

이현승의 '까다로운 주체'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까다로운 주체

이현승     


당신은 웃는다.

당신은 종종 웃는 편인데

웃음이 당신을 지나간다고 생각할 때

기름종이처럼 얇게 떠오르는 것.     


표정에서 감정으로 난 길은

감정에서 표정으로 가는 길과 같겠지만

당신은 화를 내거나

깔깔깔 웃겨죽으려 할 때에도

나는 당신이 외롭다.     


도대체가 잠은 와야 하고

입맛은 돌아야 한다.

당신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어디인가

외롭다고 말하는 눈,

너무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입술로

당신은 말한다.

그렇게 당신은 내가 보이지 않는다.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     


나는 웃음이 당신을 현상한다고 느낀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우린 현상(現象)만을 말할 뿐이다. 우리의 오감이 대상에 다가가 다다르는 유일한 것이 현상이니 말이다. 나를 무시하고 조롱한다고 해도 드러난 행동과 말이 나를 향한 존중이라면 나는 그 무시와 조롱을 알 수 없다. 나를 향한 철저한 경멸(輕蔑)이 있다고 해도 그의 말과 행동에 조금의 경멸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 경멸을 알 수 없다. 알 길이 없다. 그럴듯한 포장에 쌓인 경멸이라면, 비록 지독한 경멸이라 해도 웃으며 받는다. 심지어 고마운 마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게 우리 사람의 한계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포장에 쌓인 경멸이라도 어느 순간, 그 경멸은 무시와 조롱의 모양으로 스며 나오게 되어 있다. 참 슬프게도 말이다. 그때 그 경멸의 무게감은 엄청나다. 본래 담긴 독보다 더 독한 독이 되어 온몸을 떨게 한다. 이런 비극이 가능한 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현상에 한정되어 살기 때문이다. 현상으로 속이며 위선을 인생의 여정으로 삼아도 조금의 죄책감 없이 당당한 것도 우린 현상에 한정되어 살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상에 담기지 않는 경멸과 조롱 그리고 무시는 죄가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다. 참 슬프게도 말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의 웃음에 내가 없을 때가 있다. “종종 웃는 편인데, 웃음이 당신을 지나간다고 생각할 때”조차도 나는 당신에게 없고 당신은 혼자일 때가 있다. 현상만이 진짜로 고집부리고 싶지만, 스며  나오는 지독한 홀로 있음에 나는 없을 때가 있다. 아니, 이룰 수 없는 간절한 그리움 가득한 다른 이를 향한 시선에 심지어 그 홀로 있음이 슬퍼 보일 때가 있지만, 현상에 보이는 당신은 나의 앞에 나와 더불어 있지만, 스며 나오는 당신 그 자체는 나의 앞도 나와 더불어 있지도 않다. 그냥 처음부터 나 없이 홀로 있을 뿐이다. 현상과 달리 말이다. “당신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상 속 나는 당신 앞에 당신과 함께 있지만, 실상 나는 당신 앞에 적던 것도 당신과 더불어 있던 적도 없으니 말이다. 차라리 나와 함께 하는 현상이 거짓이길 바라며, 나 아닌 다른 이와 함께 하길 간절히 그리워하기에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나 아닌 곳에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 거짓의 말과 행위를 강제하는 현상 속 나 없이 말이다. 그러나 현상 속 당신은 나와 함께 함을 알게 된다. 그 간절한 마음과 달리 말이다.     


나와 있지만, “이곳은 어디인가”라고 당신의 영혼은 나에게 묻는다. 나와 함께 있지만, “외롭다고 말하는 눈”엔 나란 존재가 없다. 아무 말없이 눈치 보며 이 모든 현상이 지옥 같은 나의 침묵 앞에서도 “너무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입술로 당신은 말한다.” 아니,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영혼으로 그 온 삶으로 말한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현상 속 당신의 앞에 있는 거짓된 웃음의 우리 둘에 만족하는 거다. 조금의 자리도 없는 내 자리를 포기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 
 

“당신은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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