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대칠 자까 Feb 13. 2024

네 가지 가장 옳은 깨우침

유대칠의 불교 공부

네 가지 가장 옳은 깨우침      


“여러분! 모든 동물의 발자국은 모두 코끼리 발자국 크기를 넘지 않습니다. 코끼리의 발자국은 그 크기가 동물 가운데 으뜸입니다. 이처럼 모든 옳은 진리는 모두 이 네 가지 성제를 넘지 않습니다. 그 네 가지 성제(四聖諦)란 괴로움의 성제, 괴로움 발생의 성제, 괴로움이 멸해서 사라짐의 성제, 괴로움이 멸해서 사라지는 여정의 성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중부경전(中部經典)』 28 「상적유대경(象跡喩大經)」 한역동본(漢譯同本) 『중아함경(中阿含經)』 30 「상적유경(象跡喩經)」     


고민의 시작은 괴로움이다. 어쩌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열망으로 괴로울 수도 있고,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괴로울 수도 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도 괴롭지만, 사랑한다고 옆에 둔 이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도 괴로운 것 마찬가지다. 단지 그 괴로움의 깊이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이 되었다고 하여도 꼭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인 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지만, 누군가를 그리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게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처지다. 깊이 사랑하지 않으면 깊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다. 일어나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려 애쓰는 것도 괴로움이다. 노력한다고 되지 않는 게 우리네 마음이니 말이다. 사랑함에도 사랑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힘든 것처럼 말이다.      


고제(苦諦), 괴로움이란 무엇일까? ‘생로병사(生老病死)’, 이 모두가 괴로움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만 괴로운 게 아니라,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태어나 이 모든 괴로움을 피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괴롭다.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운 이를 미워하는 것도 괴롭다.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얻지를 못하는 것 역시 괴롭다. 오음성고(五陰盛苦), 따지고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게 괴로운 일이다. 나도 나 아닌 모든 것도 말이다. 생로병사, 생명을 가진 이들이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며, 애별리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고, 원증회고, 서로 미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연한 괴로움이며, 오음성고, 감각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것인지 욕심을 품은 모든 이의 괴로움이다.


집제(集諦), 괴로움은 왜 일어날까? 바로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사랑하니(慾愛) 괴롭지 않을 수 없다. 날 사랑하지 않는 이를 사랑하며 나만을 사랑하라고 바라니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욕심대로 돈이 벌리지 않으니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있는 모든 게 어느 순간 사라져 없어질 것인데 불멸을 바라니(有愛)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명과 사랑도 돈도 심지어 나 자신도 영원하지 않음에도 영원을 바라니 괴로운 건 당연한 일이다. 살아있음에도 죽고자 한다(無有愛) 면, 그 역시 편한 마음은 아니다. 그 역시 얼마나 괴로운 마음이겠는가. 결국 괴로움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대로 가져야 하고 있어야 하고 사라져야 함에도 그렇지 않으니 괴로운 거다.      


멸제(滅諦), 그러면 어떻게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하여 열반(涅槃)에 이를 것인가.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욕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 이렇게 있어야 한다는 마음, 저렇게 있어야 한다는 마음, 그런 마음을 비워야 한다. 부모는 이러해야 한다는 마음은 부모에게 실망하게 한다. 실망도 기대도 없는 마음으로 부모를 마주할 때, 우린 있는 그대로의 부모를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비우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이도 내가 생각하고 욕심내는 그대로 있어야 하는 마음을 비우는 거다. 그도 그냥 그의 몸짓대로 있게 두는 거다. 내 욕심으로 이렇게 돼라 저렇게 돼라 조금도 바라지 않고 그냥 두는 거다. 그때 괴로움 없이 그와 더불어 있을 수 있다. 욕심, 그걸 비우면 오히려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 괴로움 없이 말이다. 굳이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 저런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식의 모든 욕심을 버리는 거다. 나 역시 쉼 없이 변하며 사라지는 한 존재임을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거다. 있는 그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내 욕심대로 되지 않는 자연히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나를 포함한 모든 걸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거다. 욕심 가득한 마음 없이 말이다. 그때 나는 나에게서 자유롭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죽음으로부터도 사랑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도제(道諦), 그렇게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린 무얼 해야 하나? 바로 ‘팔정도(八正道)’다. 여덟 가지 바름 말이다. 바르게 보아야 하고(正見), 바르게 생각해야 하고(正思), 바르게 말해야 하며(正語)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正業). 바르게 생활해야 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해야 한다(正精進). 바른 주의력으로 살아야 하고(正念), 바른 마음으로 유지해야 한다(正定).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봐도 안 되고, 욕심 가득한 생각을 해서도 안 되며, 욕심 가득한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욕심으로 살아서도 안 된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욕심에 집중하여 살아서도 안 된다. 욕심의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도 안 된다. 그런데 우린 욕심에 집중하고 욕심 가득한 말을 하고 욕심 가득한 삶을 산다. 그러니 괴롭다.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제대로 깨우쳐 지식 하나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팔정도(八正道)의 삶 말이다. 그 삶도 결국 욕심을 버리고 그 버림을 유지하는 삶이다. 결국 불교는 이야기하려는 거다. 부디 욕심내며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유대칠 씀


[대구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고전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삶에 녹아드는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면,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자 한다면, 연락 주셔요. oio-4231-o266로 꼭 문자를 먼저 주셔야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고(當苦): 착각은 괴로움의 시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