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삶, 유대칠의 철학사 강의
2. 플라톤, 더 나은 공동체를 고민하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플라톤이라는 철학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그의 철학은 스승의 죽음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죽인 공동체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 주던 소크라테스를 죽였을까?” “공동체는 왜 지혜로운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바른 삶을 따를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그를 철학의 새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플라톤은 하나의 해답을 찾게 됩니다. 지혜로운 철학자가 공동체를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삶을 한번 떠올려 봅시다. 사람들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반드시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만약 공동체를 보호할 사람이 없다면, 외부의 위협 앞에서 쉽게 무너질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용감하기만 하면 공동체를 올바르게 지킬 수 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용감한 사람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무지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 매우 용감한 경비병이 있다고 해봅시다. 어느 날, 누군가 “저기 있는 낯선 사람이 마을을 해치러 왔어요!”라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이 경비병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그 낯선 사람에게 달려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실은 마을에 도움을 주러 온 사람이었다면? 경비병은 좋은 의도로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플라톤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용기는 꼭 필요하지만, 용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무지한 용기는 오히려 공동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용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말한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철학자가 바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는 “진짜 좋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변덕스러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물질적인 욕망을 쫓지 않으며,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위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죠. 철학자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런 철학자가 공동체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 왕(철인왕)입니다. 철학자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는 단순히 자기 자신이나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다스리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는 순간적인 감정이나 변덕에 휘둘리지 않고, 신중하게 고민하며 바른 방향으로 공동체를 이끌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플라톤은 아주 유명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바로 동굴의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서부터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살아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동굴 안에는 불빛이 하나 있고, 그 불빛 뒤에는 여러 조각상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벽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각상의 그림자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태어나서부터 이 그림자만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여러분을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처음에는 너무 눈이 부셔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겠죠. 하지만 점차 눈이 적응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아, 내가 봤던 그림자는 진짜가 아니었어! 이게 진짜 세상이었구나!”
플라톤은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동굴 밖으로 나간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철학자를 의미하지요. 철학자는 세상의 본질을 고민하고, 진짜 좋은 것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사람입니다. 따져 묻는다는 건 더 참되게 좋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노력, 바로 철학의 드러남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만약 철학자가 다시 동굴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은 그림자일 뿐이고, 진짜 세상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많은 사람은 철학자의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화를 내고, 철학자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겠죠. 심지어 철학자를 배척하고, 때로는 죽이려 들지도 모릅니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운명을 맞았던 것처럼요. 하지만 플라톤은 철학자가 공동체를 바른 길로 이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자가 지도하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플라톤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공동체가 공동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철학자는 권력을 휘두르거나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유와 번영을 위해 높은 책임감을 지고, 심지어 자기 소유까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지 않고, 오직 공동체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들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 않고,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헌신합니다.
플라톤이 꿈꾼 철학자 왕은 단순히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이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자 왕 개념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철학적 메시지입니다.
플라톤의 철학은 단순한 이상이 아닙니다. 그는 지혜가 중심이 되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지도자가 있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플라톤이 제시한 철학자 왕의 개념은 바로 그러한 생각하는 사회를 향한 그의 철학적 노력의 결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