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18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이란 철학책이 있습니다. 제법 큰 영향력을 누린 책입니다. 아마 20세기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참으로 다양하게 많은 책들이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척 어려운 철학자입니다. 프랑스어를 잘해도 읽고는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을 만나기는 쉬운 그런 철학자입니다. 왜일까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해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쉽지 않은 책입니다. 많이 팔린 책이지만 제대로 읽힌 경우는 많지 않은 책입니다.
10여 년 대중 철학 강의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마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철학 수업을 하면 대부분 이런 철학자들의 철학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들 철학자들은 철학의 기초란 것이 없습니다.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리고 체계성을 가지고 진행하기보다는 무질서해 보이는 체계성으로 논의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다음으로의 이행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진행된 것인지 난감해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읽고 정리해주면 그것을 따라 읽는 식으로 읽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정말 철학엔 기초가 없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각 철학자마다 다르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 단어는 이렇게 이해하면 다른 철학자에게선 막힙니다. 이것은 조선 철학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개념을 이렇게 이해하면 다른 철학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교과서를 만들어 정리하면 그것을 철학 구경하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막상 스스로 철학책을 읽거나 혹은 그냥 개론 철학 수준 이상의 철학 수업을 듣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철학이란 '지금' 자리에서 밖으로 '지금' 나오는 일입니다. 고정된 자리에서 지금 당장 나와서 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철학의 차이는 나움의 정도와 방향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란 시점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봅니다. 스승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철학의 순간이 시작됩니다. 그들의 대화 속 그 지금, 철학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어떤 체계를 가지고 어떤 질서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요약정리하여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어떤 무엇이 난제로 등장할 때, 바로 그때 철학의 순간이 함께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하게 합니다. 혼자 고민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아는지 모르는지 묻고 누군가는 안다고 모른다고 답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답 만들어감에 한몫을 합니다. 그렇게 대화 속 서로 다른 둘은 철학의 순간, 하나의 답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답은 적어도 그 철학의 순간을 위한 공동체로 있던 그들에게 고유된 하나의 Commons로 그 둘의 공유 자산이 됩니다. 그리고 그 공유 자산은 다시 그들의 서로 다른 구체적인 삶에서 또 다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로 달라질 것입니다.
스스로 철학의 주체가 되는 시간은 일상 속, 그것도 대화 속, 어떤 일상의 어려움이 고개를 들고 둘을 어려움의 세계로 초대할 때입니다. 바로 그 시간의 철학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남의 철학책들을 읽으며 준비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정말 내가 어려워하는 일상 속 지금 이 순간 찾아온 나를 향한 철학의 질문에 반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철학의 부재를 그렇게 자기 스스로 채워가면서 철학은 한 사람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 가는 것이겠지요.
유지승
2021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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