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소소한 내 일상의 소사전
'기적'이란 무엇일까요? 초자연적인 일을 말합니다. 물이 갈라지거나 물 위를 걷는 것은 모두 기적입니다. 중세 신학자들이 생각한 기적, 즉 초자연은 이와 같이 자연적인 법칙을 일순간 다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도 치료기술도 없이 갑자기 누군가에 의하여 병이 치유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하느님이 직접 자연의 이런저런 법칙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도 기적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게 하는 것은 남성과 정자라는 원인이 필요하지만 하느님이 직접 그런 원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원인이 되어 처녀에게 아이를 잉태하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존재이니 말입니다. 그냥 두면 그렇게 될 일을 하느님은 다르게 할 수 있는 그런 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은 사람이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항상 자연의 법칙에 의존합니다. 이런저런 물질의 자연스러운 법칙을 이용해서 약을 만들고 이런저런 인과관계를 따져 치료를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모든 것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원하는 결과를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게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느님과 같은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도 기적이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든 일이 자본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그것이 거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그것이 학문이고 지식이고 지혜입니다. 언론에서도 어떤 이가 무슨 일을 했다 할 때 기존이 되는 것이 얼마나 벌었나 말입니다. 누구가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해서 이런 사회적 공헌을 했다 보다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다가 우선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그런 사회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돈인 것이죠.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사랑을 이끄는 이기심에 거스르는 일은 기적입니다. 소소한 기적이죠. 당연히 그냥 두면 그렇게 될 일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니 말입니다. 길거리 노숙자를 위해 컵 라면 한 박스를 보내는 것도 기적입니다. 그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릴 일을 하는 것이 더 당연하니 말입니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우니 말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하면서 그것으로 행복해한다면, 더 기적적인 일입니다. 집에 앉아 편하게 치킨을 시켜 먹어도 그만일 것을 그 돈을 보아 힘든 이웃에게 컵라면이나 과일을 보내고 자신으로 잠시 배고픔을 잊을 이들을 생각하며 행복해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당연하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행복으로 누리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실 좋은 미담이라 하지만 막상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부자연스러우니 말입니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굳이 할 생각도 일상 속에 익숙한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홀로 잘 삶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고 부자연스럽게 더불어 잘 삶을 최고하며 살아가는 것, 스스로 자기 자신의 희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모두의 희망이 되는 것, 더 큰 기쁨이 되는 길이지만 부자연스러운 것, 그것을 자신에겐 자연스럽다 실천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배경 속에선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이라면 우린 얼마든지 결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추운 겨울입니다. 다시 홀로 있음의 차가움이 더 차가운 시간입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 다시 한번 우린 더불어 있음의 기적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결단해 봐야겠습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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