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Dec 27. 2021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그 앞에 서 있자니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이 문을 열면, 아마 내가 지나쳐온 문을 다시 열기란 쉽지 않을 걸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2월 내 커리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만한 일이 있었다. 그때 당시 느꼈던 감정을 회상해보자면 그저 아득하다. 아직 확정된 건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지 혹은 반만 기회를 열어둘지, 그것도 아니면 아주 좁은 바늘 문을 통과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그 무렵. 회사에서 내가 의지하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상사분이 곧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시는 터라 든든한 지원군을 잃은 느낌과 함께 미래에 대한 막막함도 들었었다. 한편으로는 그분이 떠나시며 새로운 문이 열릴 가능성을 열어주신 터라 그 기분은 말로 다 못할 만큼 복잡 미묘했다. 온전히 서운해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기쁘지도 않은 아주 애매한 상태는 그게 언제든 달갑지 않다. 이럴 때마다 인생은 정말 제로섬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어서 결국은 그 합은 언제나 0 혹은 아주 미세한 플러스 마이너스가 되곤 한다. 어쨌거나 그 숫자는 0에 아주 가까운 숫자 거나 혹은 0이 된다. 그래서 참 인생이 얄궂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조금만 더 가지면 안 되는 걸까. 혹은 잃을 거면 확 잃고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잃기만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껏 수 없이 문을 열고 닫았지만 이 새로운 순간은 매번 적응이 되질 않는다. 등 뒤에 있는 문을 지나치기 전까지 수 없이 헤매어온 그 길을 썩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아니고 늘 이 새로운 문이 열리길 갈망했는데 막상 그걸 눈앞에 두고 있자니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아마 내가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자기 의심, 그에 비례하는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그 빈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기대감. 거대한 풍랑에 휩쓸린 작은 조각배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내 감정과 내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 그리고 발언의 기회가 온다면 분명히 내 의사를 표시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제일 최선은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내 앞에 놓인 이 문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쪽짜리 기회 건 혹은 아주 미세한 바늘구멍 같은 틈새만 허락된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들어가 보고 싶다. 들어가 보고 아니면 이 문을 닫고 다시 다른 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긴 기다림 끝에 결국 열린 문 틈 사이로 몸을 구겨 넣어 간신히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새 출발을 한다는 건 항상 설렘만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설렘,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드는 불안감, 그리고 그 사이를 차곡차곡 메우는 기대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이런 감정들이다. 지금까지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고자 마음먹을 때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덤이고, 그 길을 택한 뒤에도 끊임없이 드는 양가적인 감정에 시달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결국은 내가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중요치 않다. 내가 하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출발점에 서서 다시 한번 인고의 길을 굳이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여전히 새로운 세계와 길은 내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고 있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나보다 훨씬 먼저 그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과 마주치며 낯가림의 기간에 적응해야 한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고 작은 성취감은 그에 비하면 극히 적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끔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전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내게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올 때 그래도 이 길로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또 새로운 일이 나를 찾아오고 모르는 것들이 생겨난다. 귀신 같이 내가 약한 부분만을 파고드는 상사의 질문 습격을 받고 있노라면 이런 게 머피의 법칙이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 다닐 때는 학부만 졸업하면 인생의 배움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더 이상 물리적으로 공부라고 칭할만한 것은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차원이 다른 공부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끝도 없이 나오고 머리는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는데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매번 다르게 선택하고 자의로 새로운 출발점에 설 수 있다는 선택권을 갖는 것도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기 때문에 가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막막함 보다는 기쁨을 더 크게 조명하며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새로운 시작은 두렵다.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안고 한 발 내딛고 그 걸음을 발판 삼아 마침내 속도를 내서 달릴 때 그 두려움과 막막함 마저 성취감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도전을 행하고야 만다. 그래서 지금 막연한 불안감에 떨고 있는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견딘 시간들은 정직히 내게 그 과정과 결과를 말해줄 것이라고. 그러니까 스스로를 믿고 정직하게 한 걸음을 내디뎌보자고 말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딱 서른 살. 1월에 생일이 지났으니 만으로 스물아홉이다. 길을 찾아가는 것에 나이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달리 무거웠던 분위기에 휩쓸려 움츠려 들어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직은 한참이나 헤매도 된다.’ 스스로에게 나직이 되뇐다. 스무 살이 됐을 때 서른 살까지의 그 십 년 간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던 것처럼, 앞으로 사십 대가 될 때까지 또 다른 십 년이 내 앞에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일단은 한 발자국 내디뎌 저 너머에서 또 다른 문이 나를 허락해줄 때까지 조금은 더 기다려봐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의 마음으로 무장한 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