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받는다는 것만큼 사람의 다정함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위로의 사전적인 정의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뜻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주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처럼 삶이 아주 버거울 때가 있다. 내 앞에 놓인 커다란 장애물을 넘거나 고난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사람은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 낸다. 사람이 무너지기 쉬운 구간은 바로 그 고난을 견뎌낸 직후다. 생각해보면 내가 몇 년 단위로 크게 앓았던 것도 힘들었던 그때 그 당시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난 직후였다. 사람의 본능과 자기 방어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해 있을 때는 아픈지도 모른다. 고통이 계속되면 그 고통의 감각 자체에 적응해서 다소 무뎌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나는 주로 위로를 해줬던 입장이라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 어린 위로의 한 마디가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껏 지켜봐 왔다.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들 스스로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가 되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겼었다. 뭐라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일이라 섣불리 연락을 할 수도 무슨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그래서 볼일을 보러 나간 김에 빵을 사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치킨집에 들렀다. 아주 추웠던 겨울날, 별 말도 못 할 거면서 친구 얼굴을 5분간 보러 한 시간 이상을 전철을 타고 갔다. 사간 빵을 건네주고 뭐 이런 걸 들고 왔냐며 타박하는 친구와 얼마간 시선을 마주했던 기억이 난다.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생각나서 들렸다는 말과 다음에 다 같이 보자는 말. 건강 잘 챙기라는 당부의 말. 그 뒤로 그 친구를 포함해서 다 같이 보는 일은 영영 오지 않고 있다. 그 뒤로부터 몇 년 뒤, 연락이 끊겼던 이 친구와 간신히 연락이 닿았고, 그간 나는 이 기억을 거의 잊고 있었다.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추운 겨울날 밤의 일이 무척이나 고마웠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몇 년 간 잊고 있던 일이 생각이 나면서 별 다른 말이 없어도 진심만 있다면 전해진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따뜻한 기억이다.
반대로 내가 위로받았던 기억도 셀 수 없이 많다. 부서 이동 후 전혀 적응되지 않는 일과 모르는 업무 사이에서 고군분투할 때 선뜻 퇴근 시간을 넘겨서까지 나를 도와주던 동료의 도움과 불안해하는 내게 적절히 조언해주던 그녀의 목소리. 길을 잃고 헤맬 때 늘 나를 붙잡아주던 친구의 따뜻한 위로, 나나를 떠나보냈을 때 별 것 아닌 코멘트 하나에 위로받은 그 기억들. 내가 위로받았다고 느낀 순간들은 거창하지 않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늘 위로받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고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 될 거라는 생각,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 내가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자기 확신, 메말라 있던 긍정적인 감정의 발화 등. 이 모든 것이 위로의 힘이다. 위로란 그런 것이 아닐까. 특별하게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건네는 손길 속에서 혹은 몇 분간 마주하는 눈빛에서 읽어 낼 수 있는 무언의 다정함. 말로도 표현할 수 있고 작은 손짓과 마음만으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무언의 표현. 많은 것을 내포하지 않아도 따뜻함과 온기가 폴폴 풍겨져 나와서 얼어붙은 마음과 경직되어 빳빳해진 삶의 근육을 풀어주는 것. 사람은 항상 위로해주고 위로받는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도 사람 덕분에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모순이야 말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