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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29. 2022

나나에게

나나야. 거기선 건강히 잘 지내고 있지? 곰순이도 잘 만났을 거라고 믿어. 오늘이 벌써 2021년 5월 24일이네. 네가 떠난 지 딱 반년이구나. 우리 가족은 아직도 너를 보고 싶어 하면서 지내고 있어. 나는 특히나 더 그래. 너를 보내고 온 날. 네가 늘 앉아 있던 그 자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는지. 거실이 너무 휑하게 느껴졌어. 네가 쓰던 방석은 버리려고 했지만 시우가 버리지 말라고 해서 버리지 못하고 빨아뒀는데 여전히 우리 집 베란다에 있어. 소파에 너를 뉘어놓고 청소를 하던 그날 아침을 기억해. 눈이 부어서 잘 떠지지 않았는데도 오늘이 아니면 네 물건을 정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마구잡이로 네가 쓰던 물건, 간식, 남아 있던 사료, 밥그릇, 장난감, 옷가지 등을 정리해버렸지. 슬픈 와중에도 배는 고프고 그런 스스로가 얼마나 혐오스럽던지. 그런데 네가 쓰던 민트색 담요는 이미 빨래를 하려고 내놔서 생각 못하고 지나갔었어. 뒤늦게 그걸 발견하고 어찌나 슬프던지.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그 담요를 정리하지 못하고 네가 쓰던 마약 방석과 함께 베란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아직도 우리 가족은 너를 보내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네가 태어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 무척이나 더웠던 한 여름날이었지. 2004년 7월 31일. 너를 포함해서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은 곰순이가 기진맥진해 있는 와중에도 매달려서 젖을 먹던 막내가 바로 너였지. 무척이나 더웠던 그 여름의 무더위에 네 형제들을 허망하게 보내고 첫째와 너만 남았을 때, 나는 왠지 너를 꼭 끝까지 우리 가족으로 삼고 싶었어. 잠깐 너를 다른 집으로 보내자고 했던 부모님의 말에 아무런 힘이 없어서 그러게 하라고 했었지만 너를 보내려고 했던 날, 하루 종일 학교에서 우울했었어. 집으로 돌아오기 싫어서 한참이나 이리저리 쏘다니다 집에 와 보니 네가 아직도 남아서 나를 반겨주던 그날이 아직도 생각나. 개를 유독 싫어했던 아빠가 아침에 엄마한테 너를 보내지 말자고 했다는 말을 듣고 안도감에 괜히 울컥했던 기억도 아주 생생해. 17년간 너와 함께 지내오면서 잘해준 것보다는 못해준 게 더 많이 생각나는 건 왜 그럴까? 내가 좋은 주인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산책도 제대로 많이 못 시켜줬고 바쁘다는 핑계로 늘 집에 늦게 들어왔었고, 간식도 많이 못 사줬어. 늘 밖으로 나도는 주인이라 너랑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지. 후회하는 마음 때문에 너에게 더 미안한가 봐. 그리고 너를 더 사랑해서 곰순이한테도 미안하고. 사실 어린 마음에 가끔 너를 챙겨야 하는 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 참 못됐었지.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한 게 많은 주인일까?


내가 슬프거나 힘들 때마다 말없이 내 옆에서 웅크리고 함께 자주던 너, 내 얼굴을 핥아주던 너, 내가 부르면 아무리 자고 있어도 언제나 바로 내게 와주곤 했던 너. 너무 활발해서 사고도 많이 쳤지만 그만큼 귀여워서 늘 많이 혼내지 못했었어. 아빠의 카메라를 망가뜨려놓고, 내 책가방에 실례를 하고, 쓰레기통이나 테이블 위를 죄다 헤집어놔도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던 네가 너무 귀여워서 결국은 꽉 끌어안아주게 됐던 그 기억들. 내가 나이를 먹었던 것처럼 네 시간도 그만큼 지나갔다는 걸 생각지 못하고 언제나 네가 건강하게 우리 가족들 옆에서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었어. 노환으로 점점 귀가 들리지 않게 돼서 사람이 오고 가는 것도 모르게 되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곤 했던 요 몇 년간의 너를 기억해. 늘 기운차던 네가 항상 웅크리고 사람이 와도 알지 못하는 게 얼마나 속상하던지. 차라리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다니던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러면서도 그런 너를 한번 안고 바깥바람 쐬러 나가는 건 왜 이렇게 손에 안 익던지. 한 없이 나쁜 주인인 나와, 무심한 우리 가족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착하고 우리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던 네 온기가 유달리 그리워진다.


나나야. 나는 아직도 때때로 네 이름 세 글자를 소리 내서 부르게 된다. 그렇게 하면 누가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네가 다시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이상 내 부름에 네가 쫑긋 귀를 세우고 나를 바라봐주거나, 내게 와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어. 왜 일까? 그냥 내 마음 한 구석에 늘 네가 자리 잡고 있어서일까? 17년간 좋은 주인이 돼주지 못한 나를 사랑해주고 믿어줘서 너무 고마웠어. 너무 애달파하면 네가 좋은 곳으로 못 간다고 엄마가 그러더라. 그래서 덜 애달파하고 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너를 생각하면서 글을 쓸 때마다 그리움과 슬픔으로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는 해. 아직까진 내 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야. 이런 내 마음이 네게 슬픔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거기서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곰순이랑 잘 지내기를 바라. 정확한 시기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데리러 갈게.


잠시 떨어져 있게 돼서 서로의 곁에 없지만. 나나야, 너는 언제나 내 히어로이자 보물이야. 조금만 더 너를 추억하고 천천히 보내줄게. 너는 좋은 기억만 가진 채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나나야.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곰순이랑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나나가 너무 보고 싶고 많이 사랑하는 썸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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