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사람이야.’라고 매번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지구에 인구는 70억 명쯤 되니까, 내 생각 보단 많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라서 종종, 아니 자주 스스로가 아주 작아 보일 때가 많고, 나에 대해 아주 깊게 파고들어서 생각하기도 한다. 이른바 자기혐오의 시간, 자책의 시간이다. 나를 제일 괴롭고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힘들게 하는 스스로를 쉽게 멈출 수도 없다.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일단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왜 알면서도 못할까, 하면서 자책의 감정으로 변환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건 참 얄궂고 사람의 성향이라는 건 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적어도 내게는 생각의 연결고리가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스스로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내가 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미련을 두지 말자, 말과 행동에 너무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 그 진위를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내가 듣고 본 것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자. 생각이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다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사람은 자기 전에 한 생각에 자는 내내, 그리고 일어나서도 아주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자기 전에 내가 회사에 관련되지 않은 생각 혹은 기분 좋은 생각을 한 뒤 행복하게 잠든 적이 언제였나. 쉽게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적어도 올해는 기대감과 행복감으로 잠든 적이 없는 것 같다. 딱히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 삶에 커다란 불만도 없지만 언젠가부터 항상 쫓기듯 살고 있고, 머릿속은 대부분의 시간 꽉 차 있다. 특히나 올해는 항상 내일 할 일, 출근하면 해야 하는 업무 생각을 한 뒤에 잠들곤 했다. 너무 피곤한데 각성이 돼서 도리어 잠이 안 오던 불면의 시간도 있었고 피로감에 지쳐 베개만 대면 잠들었던 때도 있었으며 두어 번 뒤척이다가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잠드는 대부분의 나날들도 있었다. 어찌 됐든 그 끝은 일과 회사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주 가끔은 누군가와 지나가버린 시절에 대한 추억일 때도 있었고, 혹은 내가 벌려놓은 여러 가지 이벤트일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그랬다.
내 직업이나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나를 표현해주는 수단은 될 수 있겠지만 내 정체성이 될 수 없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충분하고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내 마음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이상은 높고 항상 현실은 그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 이상 속의 나는 지나치게 괜찮고 완벽한 사람이다. 흠이 있어도 그건 그 괜찮음과 완벽함을 돋보이게 해주는 극적인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이상이라 가능하다. 이상理想은 그래서 이상인 것이다. 가장 더할 나위 없고 완벽한 상태가 의미하는 건 현실과의 괴리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대체적으로 괜찮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나 미래에 중점을 두는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매 순간 느끼면서. 조금 괜찮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꼭 사람은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한 순간에도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심각하게 몰아가며 자책하고 땅굴을 파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괜찮은 사람’에 가까워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나를 위함이고 ‘내’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내 생각들이 나를 더 이상 규정짓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스스로에게 한 조각의 비움을 선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