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by 썸머G

수술한 이듬해 봄, 엄마는 영정 사진을 찍어두면 오래 산다며 찍으러 가자 했다. 그 봄날도 수술했던 그해 봄처럼 선 분홍색 철쭉이 곳곳에 활짝 피어있었다. 옷을 차려입고,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고, 집 앞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간만에 화장까지 했으니 바로 집에 들어가기 아쉽다 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피어있는 꽃마다 멈춰 서서 꽃놀이 나온 마냥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사진을 찾아왔는데 엄마도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진관 아저씨의 친절한 터치로 엄마의 양쪽 볼이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땡땡했다. 엄마가 엄마처럼 보이지 않아 눈길이 가지 않았다. 수정 안 한 원본 그대로 다시 인화해 달라고 할까 하다 아파 보이는 것보다 낫다며 옷장 속에 묵혀 두었다.


영정 사진 속에 엄마가 환히 웃고 있다. 영정 사진 속에 엄마는 내 나이와 비슷하다. 영정 사진 속에 엄마는 젊고 건강하고 찬란하다. 하얀색 티셔츠에 카디건을 걸치고, 그 위에 스카프를 툭 두르고서는, 바지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은 채, 신록의 공원 앞에 서서 찍은 사진 속에 엄마는 자연스러운 멋이 넘쳤다. 엄마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미인이었는지라 인사치레로 으레 건네는 말이 아니라 엄마를 본 모든 이들은 “상당히 미인이시네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하물며 항암치료를 받느라 듬성듬성 있는 머리카락을 병실에서 드러내고 있을 때도, 미인이지만 볼록하게 예쁜 뒤통수는 가지지 못했던 민머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때도 ‘예쁜 아줌마’로 불렸다. 엄마는 주목받는 게 피곤하다 했다 했고 나는 치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꾸미지 않아도 예뻤던, 건강해서 더 예뻤던, 이 사진을 흑백으로 인화해 영정 사진으로 하자 했을 때 엄마도 좋다 했다.


잘했다. 오시는 분들마다 생각지도 못한 젊고 환한 엄마를 보고 한 마디씩 더 하고 가셨다. 사람들이 오고 간 자리에 홀로 남는 시간이면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엄마 보고 있어? 다들 엄마 사진 보고 한 마디씩 하네. 예쁘데. 엄마 예쁜거야 뭐 사는 동안 지겹게 들었는데, 죽어서도 들으니 좋아? 은영 언니는 울먹이며 들어섰다가 엄마 사진 보고 이모가 너무 젊어져서 깜짝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데. 울 엄마, 이렇게 보니까 진짜 영화배우 같다. 외할아버지가 잘못했어. 배우 시켰어야 했는데. 엄마도 잘못했어. 그 미모 나한테나 주고 가지. 어쩌다 아빠만 닮게 만들어서 어렸을 때 계모냐는 소리나 듣게 하고.”


아빠 장례식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조문을 하러 온 회사 사람이 인사를 건네자 나는 답으로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울지 않고 왜 웃으세요….” 모르겠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랬던 내게, 후에 엄마는 자신의 장례식 때는 너무 웃지 말고 우는 척이라도 하라 했지만 난 울지 않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나도 화답으로 웃었다.


하루 만에 엄마를 보러 갔다. 관 속에 엄마가 생전에 하지도 않았던 화장을 곱게 하고 삼베옷을 입고 누워있다. 엄마의 손이, 발이 꽁꽁 싸매 있다. 내가 만질 수 있는 건 엄마의 얼굴과 민머리뿐이다. 엄마의 얼굴이, 민머리가 너무 차갑다. 손으로 온기가 조금이나마 전해질까 엄마의 민머리만 계속 문질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민머리만 쓰다듬고 있으니 옆에 있던 염습 장례사 분이 듣고 계시니 마지막 인사를 하란다. 울음을 참을 재간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엄마 옆에 나란히 눕고 싶다. 엄마 숨소리를 듣고 싶다. 엄마 손을 잡고 싶다. 엄마 뺨에 내 뺨을 비비고 싶다. 엄마 입술에, 이마에, 볼에 뽀뽀하고 싶다. 엄마 품속으로 파고들고 싶다.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엄마가 나를 숨 막힐 듯 안아주면 좋겠다. 엄마가 내 등을 토닥거려 주면 좋겠다.


한 번 터진 울음은 숨이 꺽꺽 넘어가는 데도 그칠 줄 몰랐다.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이냐면요, 우리 엄마가요, 우리 엄마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아빠는 첫째가 아니었다. 아빠 형제자매들은 기독교인이었고 외국에 나가 살았다. 할머니는 아빠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엄마는 뵙지도 못했고 할아버지는 엄마가 모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가 시켰던 것도 아니고 누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엄마는 혼자서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상을 매년 꼬박꼬박 차렸다. 그런 엄마는 자신의 생일은, 결혼기념일은, 어버이날은 그런 날이 뭐 대수냐며 챙기지 않았다. 엄마는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도 하지 마라, 조의금도 받지 말라 했다. 남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한순간 지나가면 그만이니 굳이 자기 때문에 그런 수고는 하지 말라 했다. 싫다 했다. 내 맘대로 다 할 거라 했다. 엄마 맘 편하자고 내 맘 불편하게 하면 그게 말이 되냐며 투덜거렸다. 금요일 밤 11시 5분 눈을 감았으니 3일장이면 어제가 출상이었다. 딸내미 토요일 하루만 애쓰면 되게 참 엄마답게 갔다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근데 엄마야 어제는 화장장에 자리가 없어 엄마 아직 나랑 있다. 약 오르지? 난 엄마랑 하루 더 있게 돼서 좋은데 엄마는 엄마도 그렇지?


월요일, 새벽 5시 30분. 가을의 끝자락에 겨울바람이 분다. 살아 숨 쉬는 나는 추울까 옷을 껴입는다. 운구 버스가 화장장에 도착하고 엄마는 불과 1시간 만에 재가 되어 내 품에 안겨졌다. 차디찼던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품 안에 꼬옥 안은 엄마는 너무 가볍고 너무 따뜻했다. 엄마가 내 엄마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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