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반찬을 준비해야지
그즈음 나는 아빠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가,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지내고 있는 요즘, 아빠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덩달아,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며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것이 아빠 탓이라고 생각할 때만 아빠를 나의 존재에 연관시켰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연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가는 것처럼. 나는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아빠를 잊어가고 있었다.
효녀는 되지 못해도 부모님께 손 뻗치며 살지는 말자 라고 다짐하며 살았는데
그 다짐에 아빠를 잊자 라는 소제목이 따라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고 있다.
거울을 보며 오늘도 힘내자는 주문을 외울 땐 아빠의 모습이 비친다.
어떻게든 잘 살아 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의 몸에서는 아빠의 땀내가 난다.
언니와 함께 다니며 언니는 엄마를 닮고 나는 아빠를 닮았다는 설명을 할 때 나의 부모는 엄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빠도 있음을 내 입으로 얘기한다.
나는
잊을 수 없는 존재를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생각 끝에 미안한 마음이 듬뿍 들어 전화라도 걸어보고 싶지만 밤이 너무 깊었다.
추석에 할머니 댁에서 만나면 아빠가 뜨는 밥술에 제일 맛있는 반찬 올려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