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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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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처음 의사

"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제가 대동맥을 찌른 것 같아요!”

3월 3일.

오늘 할 일이 적혀 있는 노트에 의사가 된 지난 3일 동안 해본 피 뽑기, 동의서 받기 외에 새로운 일인 복수천자가 2개나 있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본 적도 없는 복수천자.

교육용 비디오를 검색해서 보고 또 봤지만 무서웠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지난 3일간 5번을 했다며 시범을 보여준 친구는 최악의 경우가 장을 찌르는 것이라고 했다. 설령 장을 찌른다고 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늘을 빼면 된다.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다시 오더 노트를 확인했다.

#1. 403호 복수 천자 3L,

#2. 407호 복수 천자 1L

3L라면 물이 3배 더 많을 테니 실수할 확률이 더 적겠지? 403호 먼저 해야겠다.

403호 2번 자리엔 까맣고, 퀭한 눈을 가진 임산부처럼 배만 부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책에서 본 대로 오른쪽으로 돌아눕게 하고 배운 대로 굵은 바늘로 쿡.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찌른 바늘을 통해 새빨간 물이 엄청난 속도로 콸콸콸 쏟아져 나왔다. 교육용 비디오의 복수는 노란색이었는데. 친구가 보여줄 때도 노란색이었는데…. 그럼 이건 피? 배에 있는 큰 혈관이라면 대동맥!

“환자분, 잠깐만요.”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주치의 선생님께 달려 나갔다.




“하핫, 인턴 선생님 미안해. 내가 미리 정보를 안 줬구나. 그 사람 원래 hemoperitoneum이야. 그냥 빨간 복수려니 하고 뽑아드리세요.”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상태여서 무슨 말인지도 잘 이해가 안 간다. Hemo는 피, peritoneum은 배. 내가 찔러서 지금 피가 나고 있는데 무슨 말이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선생님 표정에서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별 일 아니라는 것.

‘앗, 배에 꽂아놓고 온 바늘은 어쩌지?’

너무 당황해서 환자 배에 바늘을 꽂아놓은 채 뛰어나왔다는 사실이 이제야 생각났다. 태연한 척 다시 병실로 돌아가서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을 했다. 물론 거짓말도 약간 섞어서.

“제가 복수천자는 많이 해봤는데 빨간 색깔은 처음 봐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보통은 복수라는 게 노란색이거든요.”

그리고 오늘 친구에게 배운 대로 고정해놓고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1시간쯤 후에 바늘을 제거하러 갔더니 환자분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3L는 뽑아야 하는데 바늘이 금방 빠져서 1L밖에 안 나왔잖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나도 짜증이 울컥 한다.

“원래 이렇게 고정하는 겁니다. 바늘 그대로 있는데요. 복수가 그만큼 밖에 없었나 보네요.”

“아~참. 바늘이 일찍 빠져서 조금 밖에 못 뽑았다니까! 내가 이거 한두 번 한줄 알아? 고정을 잘해줬어야지. 고정을 잘못 해서 바늘이 빠졌잖아!!”

인턴 동기들에게 고정 방법을 물어봤지만 다들 그 방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간호사들도 말했다. 원래 까칠한 분이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이틀 후 다시 그분의 복수를 뽑게 됐다.

이번엔 빨간 복수에도 놀라지 않고 능숙하게 찌르고 고정한 후 병실을 나갔는데, 아무래도 불안하고 오기도 든다. 고정방법이 그게 맞는데 환자의 괜한 고집에 내가 질까봐? 그까짓 것 다 끝날 때까지 내가 바늘 잡고 있으면 되지. 바늘이 빠진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어.

딱히 할 말도 없이 그냥 바늘만 붙잡고 앉아서 멍 하니 흐른 한 시간. 그리고 원하던 3L가 되자 바늘을 뽑고 반창고를 가져와 붙여드렸다. 이번엔 정말 3L가 나왔다. 정말 고정이 잘 안됐던 것이었을까. 아니, 이번에 양이 더 많았겠지.

그 뒤로 한 두 번 더. 가능하면 옆에, 바늘을 보면서 앉아있었다. 졸기도 하고 음료수 주시면 마시기도 하면서. 그리고 1주일쯤 그 환자의 복수천자 오더는 없었지만, 그것도 모른 채로 정신없이 일하며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보름쯤 지났을까.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보호자가 살며시 다가오더니 “왜 요즘은 우리집에 안 놀러와? 보고 싶잖아. 남편하고 얼마나 기다린다구” 하시며 가운 주머니에 오렌지 주스 한 병을 살며시 넣어주신다.

‘우리집? 언제 집에 놀러 오라고 하셨었지? 설마 병실을 집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가? 일상이 되어버린 병원 생활이구나.’ 왠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며칠 후에 다시 시작된 복수천자. 도구를 잔뜩 들고 ‘집에 놀러왔어요’ 하니 반갑게 맞아주신다. 환자분은 오른쪽으로 누워 배에 바늘을 꽂고, 난 그 바늘을 잡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들.

집은 먼 지방이라고 하셨다. 간암말기를 진단받고 그래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서울까지 오셨다고. 중학생인 아이들은 할머니들이 돌봐주고 있는데 여기서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것도 말씀해주셨다. 두 분의 연애담 같은, 마치 옆집 아줌마 아저씨랑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덤덤한 이야기들이 일상처럼 흘러갔다.

“혹시 맛있는 짜장면집 알아요? 병원에 있으니 재미도 없고. 서울 짜장면 맛 좀 봐야겠어. 짜장면을 엄청 좋아하거든.” 그 말에 인턴들이 이용하는 주변 식당 배달리스트에서 중국집만 편집해서 건넸다. 내가 좋아하는 집엔 별표도 쳐서.

“인턴 선생님, 403호 환자 저녁마다 짜장면 시켜 먹는 거 알아요? 와, 간암 환자가 짜장면을 시켜먹으면 어떻게 해? 내가 미치겠어. 단백질이 올라가면 더 악화되는데, 근처 중국집 전화번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맞다. 간암환자는 단백질이 올라가면 간성혼수가 올 텐데 내가 왜 그랬을까. 다음날 찾아갔더니 말도 꺼내기 전에 내가 드렸던 리스트를 돌려주시는데 별점이 매겨져 있었다.

“여긴 면이 맛있고, 여긴 영~ 별로더라. 다음에 시킬 때 참고해.”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도 다 드셔보신 것 같으니 더는 안 드시겠구나.

며칠 후 또 ‘우리집’에 놀러 오라신다. 네네~. 대답은 했지만, 너무 바빠서 잊어버렸다. 저녁에도 한 번 더 초대받았지만 가지 못했다. 새벽에 병동 구석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들이 부른다.

“인턴 선생님을 찾아오셨는데요?”

“네? 누가 절 찾아요?”

얼굴을 내밀었더니 능청스런 목소리.

“**야~"

푸하핫.

“인턴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보호자가 어디 있어요?”

“뭐, 어때? 내 자식 같아서 귀여워서 그러는 건데. 우리 집에 오라니까 왜 안 와~. 잠깐 이리로 와봐.”

따라갔더니 침상 옆에 포장된 떡볶이와 순대 한 그릇이 있었다.

“오전에 사놨는데 다 불어서 이젠 먹지도 못하겠네. 선생님 주려고 챙겨 놓은 건데. 그러니까 오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좀 일찍 오지. "


주치의 선생님께서 이제는 가슴에도 물이 차기 시작한 그 환자분 흉수 천자를 하러 간다기에 도와드리러 갔다. 가는 길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아주 쉬운 케이스인데 직접 해보고 싶으냐고 물으셨다. 물론 잘 봐주겠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수기는 역시 무서웠다. 병실에 들어가서 환자 등 뒤에서 어시스트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찌르려다 말고 환자 몰래 입 모양으로 “정말 안 해 볼래?” 하시기에 환자분이 눈치 챌까 고개를 살짝 도리도리 하는데, 뒤돌아 있던 환자가 갑자기 말씀하신다.

“넌 만날 보기만하고 할 생각을 안 하니? 그래서 도대체 언제 배울래? 어차피 복수도 내 거 처음 뽑았잖아? 흉수도 내 거로 연습해봐.”

“그걸 아셨어요?”

“아니 그럼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어디 딴 데 가서 또 울 것 같은 얼굴로 뛰어 나가지 말고 나한테 해. 내가 특별히 허락해 줄게.”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는 다른 병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종종 놀러 올게요.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을 것 같던 분들.


인턴 당직실에서 이번 달에 그 환자분을 담당하고 있는 인턴이 그 분이 간성혼수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오래 못 버티실 것 같다고. 임종을 맞기 위해 집 근처 병원으로 전원 할 예정이라고.

문득 떡볶이를 사놓으셨던 그날이 생각났다. 내 얼굴만 보면 그렇게 집에 오라고 하던 그날. 그게 겨우 1주일 전인데. 그 초대가 언뜻언뜻 생각나고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바쁘다고, 귀찮다고 들르지 못했던 부끄럽던 모습. 다음날 낮에 병동에 가봤더니 벌써 떠나셨단다.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해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로.

다음날 저녁, 일을 하고 돌아오니 부재중 전화 1통과 문자 메시지.

‘인턴 선생님. 우리 남편 떠났어. 고마웠어. 그리고 내 걱정 많이 하고 있지? 난 괜찮아. 고마워.’

돌아보면 그때의 난 차마 의사라고 부를 수 없었던 상태였다. 배의 옆 끄트머리에서 대동맥에 닿지도 않을 길이에 바늘로 찌르고 대동맥을 찔렀을까 걱정하고, 간암환자에게 단백질 음식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모르던. 하지만 그러한 무지가 그분들을 사랑하고 그분들께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었을까. 때때로 환자와의 소통을 걱정하지만, 어쩌면 자신하고 있는 우리의 지식이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인턴 선생. 힘들지? 우리 같이 도망갈까?”

“에이, 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절 왜 데려가세요. 주치의 선생님이면 몰라도….”

“할 줄 아는 거 없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래도 마음은 편하게 해주잖아. 어차피 병은 누굴 데려가도 못 고치니까. 한 번 생각해봐. 밥은 안 굶길테니.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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