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폭룡적인 더위.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푸른 바다 위로 시원한 바람이 살랑이고, 가벼운 커튼이 춤을 추는 풍경이 잠시나마 숨을 식혀준다. 바람 한 점 없는 이 열대야에 무슨 소리냐고? 물론 현실 얘기는 아니다. 캔버스 안에서라면 가능하다.
숨 막히는 오후, 나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으로 피신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커튼 너머 잔잔히 펼쳐진 바다. 그 한 장면이 뜨겁게 달아오른 여름 공기 속에서 얼음 한 조각처럼 시선을 사로잡았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1939년생으로 올해로 86세다. 이번 회고전엔 그녀의 65년 화업을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시대별로 소개한다.
가장 놀라웠던 건 눈앞에 있는 이 작품이 바로 2025년, 그녀가 86세에 완성한 최신작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작품이야말로, 그녀가 걸어온 시간을 모두 품은 듯 깊고 완벽해 보였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더니, 그녀의 작품들이 정확히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1950년대, 미국 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같은 이름들이 예술의 중심에 선 시대였다.
그 시절, 아이 셋을 키우며 집 안의 물건이나 창밖 풍경을 그리는 게 전부였던 브라운에게 미술 시장은 낯설고도 멀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가부장적 색채가 강했고, 여성 작가가 설 자리는 좁았다. 브라운은 그 현실을 거스르는 대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소재를 찾고 그렸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여유가 생긴 39세의 어느 날, 그녀는 마침내 갤러리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한 마디였다.
“포기하세요.”
화가로선 늦은 데뷔였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담담히 말했다.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요.”
그저 계속 그렸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물에 보이지 않는 심리가 있다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의 결을 캔버스에 옮기려 노력했다.
흔히 풍경화는 ‘보고 그리는 그림’이라 여겨져, 추상화에 비해 창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브라운 역시 스스로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무언가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릴 수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면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는 깊이가 느껴진다.
그녀의 초, 중기의 작품에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연상됐다. 풍경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특별한 감수성. 실제로 젊은 시절 브라운은 호퍼의 작품을 동경했다고 했지만, 그의 고독함 대신 그녀의 그림에는 따뜻한 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미국 동부 해안 풍경, 베란다, 커튼, 물결, 빛의 움직임 등을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그녀는 거장의 반열보다는, 일상의 평온을 극도로 아름답게 포착해 내는 시적 리얼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미술사적 가치나 시장가치보다, 삶의 공간과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그녀의 작품에서 사람들은 편안함과 위로를 받는다.
전시된 140여 점의 작품 중 특히 후기작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최근 5년간 그녀의 그림은 더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품었다. 빛과 공간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은 점점 깊어졌고, 그 깊이는 작품을 보는 이의 마음까지 조용히 물들였다. 그녀의 작품이 명상이나 심리치료에도 활용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림 속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듯,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풍경화 속에서, 그녀는 결국 자신만의 세계를 피워냈다. 그저 묵묵히 탐구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온 노화가를 보며,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만 희망의 문이 열린다고 느꼈다.
인생의 깊이란, 결국 인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잠시 그리고 영원히
일시: 25년 9월 20일까지
장소: 더현대 서울 Al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