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002. 이천 화재 참사, 코로나19로 알게 된 것들

by 느루양
유난히 나뭇잎이 푸른 4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참담한 하루였겠구나, 뒤늦게 생각했다



1.


이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른여덟 명의 인부가 사망했다. 어제, 오늘 연신 속보가 떴지만, 사람들마다 소식을 접하는 기분은 천차만별일 테다. 매번 반복되는 익명의 노동자의 사망사고로 들릴 수도 있고, 현장에서 일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누구보다 안타깝게 뉴스를 봤을 것이다.


내게 이 뉴스는, 오늘 여러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으로 들렸다. 누군가는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고, 동생을 잃었다. 유난히 날씨가 맑은 4월의 마지막 날, 서른 가구 넘는 집에서 초상이 났다. 여러 재난 상황을 겪고 있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뉴스다.


어린 시절부터 건축 현장에서 사고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아빠도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마치 일기예보처럼 매일 한 꼭지씩 빠지지 않는 노동자의 사망사고 뉴스에 늘 마음이 쓰였다.


이름조차 보도되지 않는 누군가가 일하다가 죽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고, 기계에 깔려 죽고, 누군가는 구멍에 빠져서, 누군가는 화재로 숨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누군가라는 노동자는 한 사람이 아니다. 매일 누군가 그렇게 죽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때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누군가의 가족을 생각하곤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얼마나 벼락같은 소식이었을까. 그 벼락을 맞은 사람이, 맞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어렸을 땐 이런 뉴스를 보고난 밤에는. 제발 평생 이런 벼락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곤 했다.


2.


'황금연휴를 맞아 제주공항에 입도 행렬이 줄을 이었고, 전국 명소 곳곳에 인파가 모였습니다.' 이천 화재 소식 다음 뉴스는 이랬다. 두 뉴스의 간극이 묘했다. 첫번째 뉴스와 두번째 뉴스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닌가. '아니, 이런 상황에서 여행을 가?' 하는 억하심정을 토로하는 게 아니다. 이 순간 우리 각자각자가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 , 내가 속해있는 세계마저 이질감이 들었다.


이건 코로나19가 막 확산됐을 때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재택근무를 결정한 회사가 있었고, 재택근무에 돌입한 친구가 있었다. 모두는 아니었다. 그때도 누구는 계속 출근했다. 프리랜서인 나도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불려나갔다. 주변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보였다. 코로나 확산 무렵,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였는데, 대부분 이런 시나리오였다. 3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파트 거실에서 두 아이와 아빠가 이런저런 놀이 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힘든 시기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요."


그리고 이어 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에 관한 보도가, 이어 청도 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 보도가 나왔다. 58세 무연고자인 첫 사망자는 일찍부터 조현병을 앓아, 아주 오랜시간 병원 안에서만 살았다고 했다. 이들의 삶의 온도차가 몸으로 느껴졌다.



3.


재난이 닥쳤을 때, 고통은 아래에서부터 온다. 결국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은 것은 사회적 약자이고 취약계층이다. 내가 집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 없어서 불편과 우울을 호소하고 있을 때, 삶의 지반이 취약한 이들은 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는다. 코로나 국내 확진자가 0명이라는 소식에 일상을 금방 회복해내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어제나 그제나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마음으로 느낀 답답함과 불편함, 두려움을 어떤 이들은 몸으로 겪는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상상할 수 없이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세계와 내가 상상할 수 없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 사이에 얼마나 수많은 층이 존재할까?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얼마나 섬처럼 떨어져 살고 있나. 내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사는 이 섬은 얼마나 좁은 섬인가. 순식간에 나를 둘러싼 세계가 이미지처럼 다가온다.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봤다. 개탄스러워하지만 그렇다고 무얼 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록해두고 기억해두고 싶었다. 나와 다른 풍경을 직면하고 사는 이웃의 소식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지. 온전히 알 수 없다 해도 다른 섬을 두리번거려야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애도하고 기억해야지. 우리라는- 막연한 세계에 비극을 줄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힘을 보태야지.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좁은 섬에서 잘 살아간다는 건 뭘까, 생각해보는 밤이다.


이천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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