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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May 14. 2020

때로는 기본이 최선이다

008. 이사 날짜에 맞춰 와주실거죠? (2)

 자취경력 10년, 서너 번의 원룸 이사를 경험했지만, 단 한 번도 쉬운 이사는 없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전세금을 마련하는 문제로, 나중에는 전세금을 돌려받는 문제로, 때때로 입주 날짜의 문제로, 집의 하자 문제 등등 이사할 때마다 단계별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혼하면서 원룸 탈출과 동시에 소원(그 당시 나의 소원은 침대에 누웠을 때 신발장이 보이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을 성취했고, 또 다시 첫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내가 이사가 몇 번이고 겪어본 일이 얼마나 많은데, 까짓 거 이사! 싶을 줄 알았지만, 슬픈 경험이 많아서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이사 경험만큼은 아플수록 단단해지지 않는다. 예전에 힘들었으니, 이번에도 힘들겠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사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오늘, 연초부터 나의 근심걱정이었던 이사를 차근차근 기록해보기로 한다.    



이사 빙고

무거운 이사 가볍게 만들기


  본격적으로 이사를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더라. 이사가 괜히 크고 무거운 일처럼 느껴졌다. 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씩 지워나가야지, 생각은 했는데 막상 해야할 일이 주르륵 줄 서 있으면 괜히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뭔가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노트에 줄을 다섯줄씩 그어 빙고판을 만들었다. 오오, 훨씬 보기 좋잖아. 자, 하나씩 지워나가는 거야. 이 빙고를 다 채우면, 이사가 끝나 있을 걸. 때로는 리스트보다 빙고가 낫다. 정말 일의 무게가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어느새 절반이나 지웠다고. 


5X5 사이즈의 2020 이사빙고판. 지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때로는 기본이 최선이다


@픽사베이, 



  이사 날짜가 확정된 후에는 청소 업체와 이사 업체를 찾았다. 아는 사람에게 소개를 받고 싶었지만, 딱히 손 내밀 데가 없어서 블로그에 넘쳐나는 광고 글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찾아 헤맸다. 후기인척 하는 광고보다 ‘나 광고야. 하지만 네가 이사 갈 집을 깨끗이 청소한 적 있어’ 라든지 ‘그래, 나 광고야. 하지만 침착하게- 작고 일관된 글씨로- 정돈된 검은 글씨로- 청소는 이렇게 약속할게’라고 말하는 포스팅을 쓴 업체를 골랐다. 


  저렇게 두 군데를 골라 견적 상담을 했다. 두 업체가 견적가가 비슷했는데, 한 업체가 ‘어느 구석은 청소가 가능하지만, 어디어디는 청소할 수 없다’라거나 ‘얼마다. 이 금액은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이다’라는 식으로 꼼꼼하게 설명해주어서 그쪽을 택했다. 하지만 이사 전날 콜을 해준다고 했는데, 전날 저녁까지 콜을 해주지 않아 따로 고객센터에 연락을 해서 문의해야 했다. ‘내일 청소 예약된 거 맞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사 업체는 서너 군데 방문 견적을 받는다기에, 나도 견적 사이트에 내 정보를 입력했다. 견적 비교 업체에서 두 업체가 방문하기로 했고, 브랜드 있는 업체 두 군데에 방문 견적을 예약했다. 사람이 직접 와서 견적을 내준다니, 견적만 받고 진행 안하면 너무 미안한 거 아냐? 어떤 사람이 올까? 정말 많이 차이가 날까? 하루에 시간차를 두고 네 군데에서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기본'에 마음이 간다


  나도 네 장의 견적서를 비교하며 이사업체를 고민하게 되는건가 싶었는데, 와우. 한 군데는 연락도 없이 파토를 냈고, 한 군데는 연락을 하고 파토를 냈다. 갑자기 시간이 안되겠다고... 한 군데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왔다. 약속한 시간에 방문한 업체는 딱 한군데였다. 견적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고민했지만, 역시 시간 약속을 지킨 유일한 업체와 계약을 했다. 이사 날에도 약속한 시간에 와주시겠지? 


  인터넷에 수많은 광고가 떠돌고 여러 이사업체가 서비스를 운운하며 고객을 잡으려고 혈안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업체들은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일이 드물었다. 워낙 일이 많아서일까. 약속한 날짜에 전화 주겠다고 방문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팀이 정말 드물어서 업체를 선정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때로는 기본이 최선이 된다. 기한을 지키는 것, 내가 하겠다고 말한 일을 해내는 것. 이걸 잘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꽤 믿음직한 사람이 된다. 요즘 공부할 때나 일할 때도 자주 느낀 생각이라 그런지 이사를 하는 와중에도 '기본'에 자꾸 마음이 갔다. 아마 알 것이다. 기본을 항상 지킨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때때로 좋은 글을 한편 써내는 것보다 매일 꾸준히 일정량의 글을 쓰는 일도 그 못지 않게 어렵고 훌륭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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