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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Feb 25. 2021

비대면 조과제란 무엇인가

하나도 좋지 않은 과제였다

그놈의 조과제

고약한 조과제


  입학 초에 모 프로젝트의 용도로 각자 생년월일을 적어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공유된 엑셀파일에서 나는 알게 됐다. 석사생 중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구나^^ 놀랍게도 대부분이 열 살 이상 나이가 어렸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올라온 친구가 3분의 1정도. 직장 생활 후에 학업과 병행하기 위해 등록한 친구가 3분의 1, 그리고 나처럼 진로를 바꾸거나, 다른 공부를 다 하고 기록학을 더하려고 온 친구가 몇몇.  

    

  비로소 기사에서나 보던 MZ세대를 만나는 것인가,라는 기대도 잠시. 애초에 볼일이 없었으니까. 수업에서 작은 화면으로 보이는 친구들의 얼굴은 정말 앳되 보였다. 공부하는 데 나이가 어디 있어,라고 분명히 시작했지만...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그거 알아? 요즘 ‘내가 이 나이에 말이야’ 여보 갑자기 이런 말 자주 한다.” 으읭, 내가???      


  너무 꼰대 같은 서두인 건 알겠다. 하지만 가끔, 내 나이의 자각으로 인한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조과제, 그놈의 조과제 때문이다. 조과제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건, 대학원에서도 변함없는 국롤이었다. 맙소사. 조과제가 그렇게 고약한 것인줄 정말 몰랐다. 대학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코로나19시대에 비대면 조과제라니... 이것은 최고난도의 서커스 묘기같은 것이었다.     



'넵'과 '좋아요'밖에 없는 

카톡창


  화상회의 프로그램 Zoom에는 ‘소모임’ 기능이 있다. 호스트가 소모임을 개수를 설정하면, 게스트가 임의로 나눠져 소모임방 여러 개로 분리되어 들어간다. 손쉽게 조모임이 구성된다. 교수님이 이 소모임 기능을 알아채자마자, 우리는 매주 조모임 과제가 생겼다. 뽑기 같이 아무 근거도 맥락도 없는 대 여섯 명이 한팀이 된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우리는 다음주까지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 누가 카톡방을 개설해 사람을 모을 것인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눈치게임에 돌입한다.      


  특별히 눈에 띄게 성실한 친구들이 몇몇 있다. 그냥 고민할 것도 없이, 타고난 반장처럼 총대를 매는 친구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제가 하는 게 편해서요.” 하지만 나는 타고난 아싸라서 먼저 나서는 걸 대단히 싫어하는데... 하루 이틀... 과제 제출을 이틀 앞두고도 과제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민 끝에 방을 만들어 사람을 모았다. 오프닝 멘트를 해본다. “여러분, 우리도 이제 과제를 시작해 볼까요.” 아무도 답이 없다. 심지어 읽지도 않는다...... 

  

  겨우 대답을 듣고, 주제를 정하기로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만, 다른 의견이 있으실까요?"    


‘좋아요.’

‘좋아요.’

‘저도 좋아요.’

‘좋습니다.’

     

  모든 것에 ‘넵’과 ‘좋아요’라는 대답만 들었다. 아무도 의견 같은 건 없었다. 결국 그렇게 혼자 끙끙 살을 붙여서 모두가 ‘좋아’하는 과제가 완성됐다.     


나한테 왜그래요... 하나도.. 하나도 좋지 않은 과제였다... 


“내가 진짜... 마흔 앞둔 나이에도 이렇게... 무임승차 애들 태우고 숙제 하고 있을 줄은...”      

이런 하소연이 나와, 안나와. 

나도 이게 다 처음이란 말이다.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할테니까,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려만 주세요.”     

이렇게 말한 친구도 있었다. 놀랬다. 


  분명히 개인 과제였으면 어떻게든 했을 친구는 그냥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다 정해서 시켜달라고. 방법을 찾는 것부터가 과제이고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어쨌든 조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 자체가 학습일 텐데. 운이 나쁘게도 나는 조금도 학습이 되지 않았다. 의욕도 의지도 없는 친구들과 카톡으로 과제를 하는 일은 그냥 너무 재미가 없었다. 얼굴이라도 맞대고 했으면 설득을 하든 욕이라도 하든 속은 시원했을텐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 어떤 마음인건지 난 여전히 저들을 모른다.  


  그래도 조모임 운이 아주 나빴다가 서서히 좋아져서, 마지막 학기가 끝날 즈음에는 평소 관심있는 친구들과 조가 되어 과제다운 과제, 학습다운 학습을 하긴 했다. 하지만 매번 5명 중에 2명은 무임승차였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대학원이 필수 정규 과정도 아닌데, 공부할 마음이 없다면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왜 다니는 걸까? (Z가 알려주었다. “회사에서 비용도 대주고 지원해 준대잖아.” ... 하지만 전부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니냐...)   


  시간표를 짤 때, 교수님만 잘 만나면 되는 줄 알았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누구냐에 따라 수업 분위기도, 배움의 질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조과제를 통해서 배운 것은 이것 뿐이다. 다음 학기에는 필히, 절대, 네버 조별 과제 없는 수업을 듣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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