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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Dec 07. 2018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법

나는 올해 어떤 사람이 되었나

올해는 어떤 사람이 되었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어지는 12월이다. 연말이 되면 휴대폰 메모장부터 메일함, 구글 드라이브, 심지어 옷장까지 정리하고 싶다. 2018년과 2019년은 아무 일도 없이 순식간에 넘어갈 것이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 해를 경계짓고 싶은 마음이 정리벽으로 솟구친다. 요즘은 자연스럽게 생각마저 과거의 시간을 뒤적이고 있다. 올해 초에는 뭘 했지? 무슨 생각을 했지? 그리고 올해는 어떤 사람이 되었지? 


  나는 로맨티스트다.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꼽으라면 단연코 사랑과 애정이다. 덕질하며 살았던 10대, 짝사랑으로 점철된 20대, 그리고 지금의 30대 역시, 나는 무엇인가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언가나 누군가에게 쉽게 빠지고, 오래 생각한다. 내 사랑의 실천은 앎이다. 좋아하면 알고자 하고, 그 대상에 관해 더 찾고 발견하고 연구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게 사랑의 원천이자 즐거움이다. 


이건 20대, 좋아하는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게 일이었던 시절, 나만의 무기였다. 나는 인터뷰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언급된, 혹은 그 사람이 쓰거나 말한 모든 텍스트와 정보를 서치해간다. 그래서 꼭 인터뷰할 때, "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계세요!"라는 말을 듣는 게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그건 순전히 90년대 초에 천리안으로 연예인 덕질을 하고, 2000년대 초에 싸이월드와 이메일로 짝사랑을 수행했던 내가 몸으로 체득한 방법이다.


넘쳐서 탈이에요

 

나는야 로맨티스트라서



올해는 처음으로 소셜 섹터에 발을 담근 해였다. 올초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기사나 사례로 접하거나, 강연을 듣거나 소개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소셜 섹터에서 저명한 이름들. 뭘 해도 제대로 소리를 내는 일잘러들을 만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 그들이 한 말과 쓴 글을 찾아 탐독하며, 탄복하며 밤을 지샜다. 왜 이렇게 멋진 사람이 많지? 일거수 일투족이 궁금한 여자 동료들이 많았다. 내가 가진 것들은 온통 흐트러진 것 뿐인데, 다들 너무나 반듯하고 잘 정리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움을 넘어 자괴감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또 누군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늘 먼저 한발짝 다가가는 사람이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연결된다고 믿는다. 오래 전에 책을 통해, 기사나 sns 글을 통해 마음을 품었던(?) 몇몇 여성 동료들을 지척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컨퍼런스 장에서 만나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식사를 하기도 하고, 인터뷰를 핑계대고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사랑은 이루어졌지는가! 


...싶었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누군가의 팬이 되려는게 아니라 그들과 동료가 되고 싶은 거니까. 단순히 부러워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으로 될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부러워하는 마음 같은 건 숨겨지지 않아서, 그들과 만났을 때 내 스스로가 별로 매력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마음 속에 ‘저이한테 예쁨 받고 싶은 마음’을 발견했고, 참 시시했다. 동료가 되려면 나 역시 나만의 예쁨이 있고, 뭔가 매력 같은 걸 꺼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저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나와 그 사람 사이를 좁힐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다지 흥미로운 관계를 이어갈 수가 없다. 서로 불꽃이 튀어야 연애를 하지! 혼자 넘치는 짝사랑으로는 연애할 수 없는 법이다. 




누구와도 같아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명확해진 것도 있다. 내가 그 사람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그의 어떤 태도, 문제를 다루는 어떤 방식이 좋았다. 내가 부러워한 건 그저 그들의 성과였다. 내가 만난 사람 모두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래서 내가 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누군가도 내가 꼭 되고 싶은 사람, 궁극의 내 모습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온전히 되고 싶은 모습을 여러 번 상상했다. 닮고 싶은 모습을 기억하고, 더욱 나다움을 발견하고 싶었다. 나는 뛰어난 성과를 가진 직업인을 존경하지만,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예술을 다루고 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과 내 일에 내가 좋아하는 문학과 음악이 넘실거렸으면 좋겠다. 연극과 영화가 내 삶의 연장선에 닿아있으면 좋겠다. 추상적이지만 내가 발견한 나만의 그림은 이러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예전처럼 덮어놓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유를 알고 싶어지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를 반하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들의 비밀을 알고 싶다. 이전에는 나도 모르게 원더우먼들을 지향했던 화살표를 온전히 나에게 맞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어떤 이야기를 들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나에게 너그러워졌다. 


그래서 요즘 불쑥불쑥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고, 생각만 해도 즐거운 계획들이 생긴다. 그중에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는 대단히 미지수이나, 이런 것들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록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본받고 싶은 사람이 많다.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안다. 2년 전만해도 누구와도 닮고 싶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일하기도 했으니까. 그때의 꿈은 '닮고 싶은 사람들 곁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 그리고 누구와도 같아지고 싶지 않다. 비로소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 싶은 기분이다. (...그럼 이제까지 한 얘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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