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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Oct 07. 2018

나의 진짜 표정은 무엇일까?

웃음은 약한 사람이 짓는다

저 사람,

외국에서 살다왔나?


  첫 인상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사람의 외형적인 스타일. 평범하거나 무언가 눈길을 끄는 특색이 있거나. 그리고 그 사람이 내뱉는 몇 마디 말에 내면적인 스타일도 엿볼 수 있다. 처음부터 웃음기 듬뿍 머금고 상대방을 무장해재 시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도통 무뚝뚝한 표정을 풀지 않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10월 주말마다 한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다. 낯선 사람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 나는 보통 그런 자리에서 상냥한 편이다. 쉽게 웃음을 띄고, 호감을 얻기 위해 말 거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한다. 워크샵을 진행하는 강사는 표현이 직설적이고 투박해서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을 툭툭 뱉어냈다.


악의는 없지만 갑작스럽게 따져 묻는 질문과 맞딱뜨리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후자의 사람. 무뚝뚝한 표정을 풀지 않는 한 여성분이 강사의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 “왜 저에게 그렇게 따지듯 물으세요?”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역시 악의 없이 가만히 되물었다.


어떤 호의에도 무심한 표정. 공격적인 질문에도 여유 있게 할 말 하는 그 표정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외국 생활을 하셨나?‘라고 생각했다. 우스꽝스럽게도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을 했다.


워크샵을 마친 오후에 실제 외국 생활을 오래한 친구와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같은 공유오피스를 사용해서 종종 얼굴은 보지만, 잘은 모르는 친구였다. 이 친구가 처음 사무실에 등장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뭔가 좀 다른 것 같았어요. 얼굴은 분명 한국 사람인데. 스타일랄지, 풍기는 느낌이 딱, 나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 이런 느낌?”


오전에 내가 워크샵에서 만난 무심한 표정의 여자에게서 느낀 그 느낌. 도대체 그 ‘다른 느낌’ ‘다른 스타일’이라는 게 뭘까. 정말 외국에서 산 사람들에게 어떤 다른점이 있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전에 그 분은 실제로 외국 생활을 오래한 분이었다!  역시... 그런데 도대체 뭘까, 그 느낌적인 느낌.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가장 큰 변화를 줬다고 생각해요?

남의 눈을 덜 의식하는 것 같아요. 제 머리 스타일, 패션 스타일이 한국에서는 튄다고 해요. 그렇지만 제가 굳이 노력한 것도 아니고. 저는 학창시절 때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말라야 하고. 피부는 하얘야 이쁜 거고, 공부를 잘해야 하고. 그런 게 싫었어요.

 

또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쟤는 어디 대학, 쟤는 어디 기업. 이런 수근거림이 힘들었는데, 외국에 나가보니 다양한 삶, 다양한 외모가 너무나 많은 거죠. 기본적으로 생김새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잖아요. 너무 당연한 다름이 있었어요.


그런 다름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살다보니까, 저는 저 자신인게 너무 좋더라고요. 제 스스로 의미 있으면 된 거고, 거기서 끝인 거예요.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죠.”


사실 대단히 특별한 이야기를 해준 건 아닌데, 그 말들이 와락 와닿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거기 있었구나.


가장 나다운 표정은 무엇일까?


웃음은

약한 사람이 짓는다


인간관계에도 사계절이 있다고 하는데, 나의 관계는 요즘 겨울이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대로 최근에 애착을 갖고 있던 작은 공동체가 깨졌고, 그로 인해 그 멤버들과도 소원해졌다. 오늘은 가깝게 지내던 언니가 불쑥 내가 요근래 답문을 재빨리 보내지 않는다고 섭섭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뭔가 나는 그대로 나 인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관계들이 돌연 저무는 요즘이다. 원래도 좁은 인간관계 탓에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소원해지고 있다보니 다시금 인간관계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남과 딱히 친해지는 재주도 없으면서,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 이 웃음이 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웃음은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호의를 얻고자 하는 웃음이다. 상대도 비슷한 웃음을 지어보이면 별일 없지만, 내 웃음에도 상대가 무뚝뚝한 얼굴을 풀지 않으면 내가 긴장하게 된다. ‘어? 내가 먼저 친절을 보였는데, 왜 이 친절해 답하지 않는거지?’하고 당황하게 되는 거다.


알고 있다. 웃음은 약한 사람이 흘리는 거다.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 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먼저 웃는다. 실제로 그랬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무심코 하는 행동이고, 무심코 드는 마음이다. 도대체 왜 낯선 사람에게도 이렇게 사랑받으려는 걸까? 나 스스로에게 가만히 묻는다. 왜 자꾸 사랑받고, 인정받고, 호의를 모으려는 걸까?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곁에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 원래 자기한테 없는 것들을 부러워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싶고, 그들과 잘 지내고 싶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그들처럼 자신감 넘치게 웃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멋져 보이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승승장구 멋져지고, 와 나도 친해지고 싶어! 멀리서 해바라기처럼 기웃거리는 나는 되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파탄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이, 시시해라.


내가 왜 자꾸 이 마음을 골똘히 들여다보는가 하면, 이게 정말 나의 진심이 맞는가 싶어서다. 사람들이 sns에서 멋지다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멋진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고, 낯선이들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이 행동과 욕망이 혹시 학습된 건 아닌가? ‘모름지기 친절해야 하고, 모름지기 인기가 있어야 하고, 모름지기 친구가 많아야 하고’ 이런 고리타분한 잠언에 세뇌되어, 내가 그 모름지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내 부족한 점을 돌아보며 가짜 욕망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상냥한 웃음만으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사실 익명의 공간이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지만, 바깥에서 보면 나도 꽤나 사교적인 ‘것처럼 보이고’ 친구들이 많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낮에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과연 내가 다른 공간에서도 이런 똑같은 욕망을 가질까? 싶었다. 친절한 미소로 무작위 호의를 갈구하고, 왠만해서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이 마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냥 남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닐까??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자꾸 모임에 나가지만, 과연 어떤 사람이 나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건 그저 상냥한 웃음만으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내가 그 사람의 미소 넘어 그 사람의 어떤 생각들, 어떤 용기 있는 행동에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나만의 매력이랄 게 있어야 하는데.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작 SNS, 인간관계, 친구사이. 이런 거 아닐까? 그게 다라면 너무 허전하지 않은가.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 너무나 뻔한 일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의 장점과 매력은 여러번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나의 본질, 나의 장점은 그만큼 살펴보지 않은 것 같다. 누구처럼 멋질 필요가 없고, 나는 나만의 멋짐을 발견하고 가꿔 나가야하는데, 누군가가 나의 멋짐을 발견해주기 전에는 그걸 알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좀 그렇다.


당장 외국에 나가서 살 수는 없으니까, 이런 점을 일부러라도 인지해봐야겠다. 내 진짜 표정은 무엇일까? 내 진짜 욕망은 무엇일까? 낯선 사람들에 대한 내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가을이라고 뿔뿔히 흩어지는 친구들에만 골몰해있지 말고, 요즘 같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때, 진정한 관심사를 찾아봐야겠다. 이런 것들, 진작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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