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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꾸러기 덴스 Feb 01. 2019

고슴도치와 여우, 누가 살아남을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서양 전통에서 꾀쟁이 여우는 신기하게도 고슴도치와 짝을 이룬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Multa novit vulpes, verum echinus unum magnum)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그리스 시인이자 전사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의 말이다.       

에라스뮈스의 <격언집>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여우는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냥꾼을 속이지만 마침내 붙잡히곤 한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만으로 사냥개의 이빨을 피한다. 몸을 둘둘 말고 가시바늘을 세우면, 누가 고슴도치를 잡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온갖 일에 참견하는 사람에 비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고 에라스뮈스는 친절하게 덧붙인다. 아마도 그는

고슴도치형 인간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이사야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고슴도치형 인간과 여우형 인간으로 구분한다. 고슴도치는 변치 않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고 믿고 이를 향해 외곬으로 나아가는 사람. 여우는 세상의 다채로운 모습에 빠져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 벌린에 따르면, 플라톤·헤겔·도스토옙스키는 고슴도치고, 아리스토텔레스, 셰익스피어, 헤로도토스·에라스뮈스는 여우라고 나름 분류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통해 고슴도치형과 여우의 조화를 이상적으로 봤지만 정작 본인은 고슴도치를 지향하는 여우에 가깝다)


모든 것을 포섭하는 단일한 세계관에 흥미를 지니는 사상가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경험적 사실들의 다양성과 그 다양한 측면에 흥미를 보이는 사상가를 대비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도했던 생물학적-경험적 자료들의 수집과 같은 작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플라톤은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우연한 사실들의 한갓 누적이나 실험적 연구가 아니라, 이 사실들을 포괄하여 하나의 체계적 통일로 묶어낼 수 있는 하나의 관념을 찾고자 하였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자 필립 테톨록 (Philip Tetlock)은 정치 전문가들의 사고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하향식 사고와 상향식 사고가 그것이다. 전자는 연역적 방법이다. 전제를 특수한 사례에 적용시키는 식이다. 후자는 귀납적 방법이다. 테틀록은 합리적 타당성을 중시하는 연역적 전문가를 ‘hedgehogs(고슴도치)’로, 사실적 경험을 중시하는 귀납적 전문가를 ‘foxes(여우)’로 구별했다.

테틀록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의 정확도를 평가하기 위해 284명의 전문가에게 인터뷰하여 약 8만 건 넘는

예측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결론이 틀리면 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의 입장과 상반된 증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함께 물었다. 응답자들은 각 질문마다 현상유지, 나아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로 결과를 추정해야 한다.  하향식 사고를 하는 전문가들은 "중요한 것 하나를 알고" 특정 사건을 논리적으로 일관된 틀로 설명하고 자신의 예측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으로 확신한다. 테틀록은 그들이 80~90퍼센트 확신한다고 말하면, 기껏해야 60~70퍼센트 정도만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귀납적 사고를 하는 전문가들은 자신의 예측(결론)에 대해 확신을 덜 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비판적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했으며, 다른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자세와 사고방식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반영해 자신의 관점을 수정할 줄도 알았다. 그 결과 큰 전제는 없지만 세세한 것을 많이 알고 있는 여우형 전문가가 큰 이론을 가지고 있는 고슴도치형 전문가(hedgehogs) 보다 정확하고 일관된 예측력을 보였다.

물론 TV에서는 미디어 특성상 여우형 인간보다 고슴도치형 인간을 선호한다. 여우형 인간은 TV토론에 초대될 가능성이 낮다. 지금 TV를 켜고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토론회나 공청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나름 전문가로 여기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전략과 전술에 따른 문제 해결 방향이나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일도양단하듯 현실을 재단한다. 문제를 분석하는 태도에 자신감이 넘쳐난다.  언변의 전문가이거나 그럴듯한 자기 논리의 전문가이지 예측의 전문가는 아니다.

사실 실험 결과를 보면 사실 평균이상인 독자나 시청자에 비해 그들을 전문가라고 얘기하기도 어렵다.

그들의 말이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될까. 그들이 자신 있게 내놓는 미래 예측은 어떤 전제나 근거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을까.

‘블링크(blink)’, 즉 순간적 판단과 직감의 힘을 강조하는 이론이 있는 반면, 느리게 생각하며 자기비판적인 인지 기능을 지닌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블링크는 첫 2초를 강조하지만, 시스템은 모든 것에 2초 이상 여유를 둡니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유형의 사고법이 더 나은가 하는 문제는, 내 생각에 전적으로 경험적인 문제입니다. - 대니얼 카너먼(2015), <생각에 관한 생각>


여기서 다시 고슴도치의 매력을 어필해 보자.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기업으로; Good to Great>에서 위대한 기업은 어느 정도 고슴도치 유형에 가깝다고 했다. 위대한 리더는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고 명쾌한 개념으로 바꿔 조직을 끌고 나가는 고슴도치 컨셉트(Hedgehog Concept)의 개발자라는 것이다. 콜린스는 고슴도치 컨셉트가 3개의 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1)당신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2)당신의 경제 엔진을 움직이는 것

(3)당신이 깊은 열정을 갖고 있는 일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변화된 기업에는 이 3가지 원의 질문을 던지고 이를 고슴도치 처럼 단순하고 핵심으로 응축시켜 자기 조직에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기업은 아는 게 많고 교활한 여우처럼 여러 가지를 시도하지만, 여우가 고슴도치를 이기지못하듯이 위대한 기업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고슴도치와 여우중 누가 삼아 남을까?

링크나 네트워킹을 중시하는 현대 산업에 비춰 여우가 유리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뛰어난 고슴도치형은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우형은 후천적으로 학습되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고슴도치가 되고자 하는 여우 인지도 모른다.    


전략적으로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고슴도치인가, 여우인가?




*연역법의 목적이 주장의 확실성을 찾는데에 있었다면

귀납법은 전제의 주장을 넘어 지식을 확장시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즉, 논리적인 비약을 귀납법에서는 허용한다.

귀납법에서는 결정적 증거보다도 개연성만을 제공하려는 성질이 있다.

즉, 전제가 모두 참일 경우 결론이 참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참임을 확실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가

귀납적 문장의 결론은 전제의 내용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역법은 타당성, 부당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귀납법에서는 강한/약한 논증을 기준으로 설득력이 비교적 강한 경우를 참으로 약한 경우나, 없는 경우를 거짓된 경우나 무관한 경우로 본다.


* 필립 테틀러(2005) < Expert Political Judgement: How Good Is It? How Can We Know?>

*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기업으로; Good to Great> 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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