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에 대하여: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바라보는 법

지나친 긍정이 나를 가릴 때

by 여름아


나는 늘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어디서든 밝게 웃고, 분위기를 띄우는 성격 덕에

사람들은 나를 활기찬 사람으로 기억했다.


나 역시 그런 내 모습을 좋아했다. 긍정적인 태도는 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조금 지나친 낙관주의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낙관주의는 ‘세상과 미래를 밝게 바라보는 태도’를 뜻한다. 처음에는 그게 별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긍정이라는 빛 때문에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은 내가 상상한 것처럼 밝게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상황은 ‘잘 될 거야’라는 말만으론 해결되지 않으며, 낙관주의가 너무 강하면, 위험이나 불편한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신호를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감당해야 할 무게가 훨씬 더 커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적어도 나는 스스로 지나친 낙관주의임을 인지하고 있구나.’


낙관주의가 가져올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무방비 상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BBC 기자 앨리 볼페는 이것을 ‘해로운 긍정성’이라 칭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나친 낙관은 실패나 약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가리는 독이 될 수 있다.


이 문구를 본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고민이 생겼다. 긍정을 버리지 않되, 현실을 덮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던 중 나는 ‘비극적 낙관주의’라는 관점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내 고민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개념이었다.


“비극적 낙관주의란, 희망과 의미를 붙잡으면서도 상실과 고통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다.”


작가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말했다.

“많은 이들은 고난을 부정하거나, 혹은 그 고난에 완전히 압도된다.”

하지만 비극적 낙관주의는 그 중간에 서서, 고난을 인정한 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고.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햇빛만 보려 하지 않고, 그림자만 바라보지도 않는 태도. 어쩌면 비극적 낙관주의란,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고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낙관주의는 잘못된 게 아니다.

긍정적인 마음은 분명 삶에 힘을 준다.

다만 그것이 현실을 덮어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건강한 긍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비극적 낙관주의자로 살아가고자 한다. 긍정을 의심하지 않고,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눈앞에 다가오는 일들을 그때그때 마주하며 나아가는 삶


그리고 혹시 나처럼

‘나는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작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