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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 수술동의서에는 발생 가능한 합병증이 나열되어 있었다.
전신마비, 안면마비, 연하곤란, 간질, 뇌경색, 뇌하수체기능장애, 부정맥, 심근경색, 심장마비, 쇼크, 혈전, 심기능부전, 기흉, 객혈, 폐수종, 호흡마비, 장천공, 췌장염, 간기능부전, 요로감염, 신기능부전, 요도 및 방광 천공, 피부조직 괴사...
이 후유증이 전부 다 오진 않겠지만, 조금 놀란 건 사실이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이 이렇게 많다니.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뭐가 올지 모르는 수술 후유증 vs. 당장 죽음 중 선택하라면 당연히 전자였으니. 수술하지 않으면 몇 주 안에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었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긴 엄마는 새벽에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겼다. 오전 11시쯤 되자 통화가 가능할 만큼 멀쩡해졌다.
"엄마 이제 괜찮아. 컨디션 아주 좋아."
목이 조금 잠겨 있었지만, 발음이 또렷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래 울 엄마, 고생 많았어..."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우리 엄마는 진정 건강 체질인가 보다. 대수술이 끝난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멀쩡해지다니. 수술동의서의 무시무시한 합병증들은 평소 지병이 있던 사람들이 걸리기 쉽지, 엄마는 괜찮을 것이다. 그 나이에 흔한 고혈압이나 당뇨, 관절염 하나 없던 엄마 아닌가. 암이 잘 생겨서 문제지.
"엄마, 밥 잘 먹고 잠 많이 자 알겠지? 그래야 얼른 회복해."
"나 아픈 곳 하나도 없어. 이제 나가기만 하면 돼."
우리 엄마,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암 수술을 네 번 거치는 동안 엄마가 신세를 한탄하거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내가 속상해서 자주 울었고, 그때마다 엄마가 날 위로하고 괜찮다며 꼭 안아주었다. 매번 수술도 씩씩하게 받았다. 신장암 때는 수술 직후 병실로 이송되면서 마취가 다 깨지도 않았는데 “엄마 왔다~~" 하고 손을 휘저으며 웃었더랬지.
이번에도 그때처럼 금세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엄만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핸드폰이 울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새벽 1시, 발신자는 '오미실 여사.'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야, 너 뭐 하는 짓이야."
"왜 엄마. 무슨 일이야?"
"나 왜 가둬놨어? 수술 끝났으면 집으로 가야지 왜 여기다 가둬놔?"
"엄마 수술한 지 이틀밖에 안 됐어. 며칠 회복하고 나가야 돼."
"무슨 회복이야. 나 지금 멀쩡하다니까. 너 의사랑 짜고 나한테 사람 붙여놨지? 이 여자 빨리 안 내보내?"
엄마는 간병인을 말하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뇌 수술한 사람은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된대. 누가 옆에 있어야 돼."
"그럼 니가 오면 되잖아."
"난 아기 때문에 못 가지. 왜 그래 엄마."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면 될 거 아냐. 암튼, 빨리 저 여자부터 내보내. 나 저 여자 싫어."
"병원 규정이 그런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아 진짜! 규정은 무슨 얼어죽을..."
"엄마... 엄마 제발 그냥 있어 좀."
"야, 엄마 엄마 거리지 마. 기지배가 하라면 할 것이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엄마 왜 그러는 거야. 어디 안 좋아?"
"시끄러! 확 그냥... 당장 해결해."
뚝.
전화가 끊긴 후에도 벙쪄서 그대로 있었다. 어려서부터 봐온 오미실 여사는 내성적 평화주의자에, 욕은 입에 담지도 못하고, 오빠와 나를 부를 땐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엄마와 큰 소리 내서 싸우는 일도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런데 그 오미실 여사가 나를 "야, 야" 하면서 "기지배"라고 부르고 협박까지 하는 것이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 평생 고운 목소리에 나긋나긋한 사람이었는데... 아마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겠지. 점점 괜찮아질 거야. 머리를 열고 종양을 꺼낸 대수술인데, 즉시 좋아지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조금만 더 두고 보자. 분명히 좋아질 거야.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엄마의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기분이 업되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다 갑자기 화를 내길 반복했다. 특히 밤에는 신경질이 폭발해서 나와 오빠에게 번갈아 전화하며 짜증을 냈다. 얌전한 공주 같던 오미실 여사는 이제 거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엄마는 담당 종양내과 의사를 찾아 외래병동으로 내려가 온 진료실을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다행히 담당 의사가 엄마 말을 들어주고 얌전히 돌려보내 별문제 없이 끝났다. 다른 의사였으면 만나주기는커녕 침대에 묶어놓고 진정제를 투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수술동의서에 적혀 있던 후유증 리스트가 생각났다. 분명 거기엔 극단적인 성격 변화 같은 항목은 없었다. 혹시 뇌수술 환자들이 비공식적으로 보이는 증상은 아닐까?
정보를 찾아보려, 네이버에서 뇌종양 환우 카페에 가입했다. 신장암 환우회, 폐암 환우회, 일반 암 환우회에 이어 4번째 암 카페 가입이었다.
검색해 보니, 수술 후 섬망 증상은 흔히 나타났고 극단적인 성격 변화도 간혹 보였다. 어떤 60대 남성은 뇌 수술 후 의료진과 가족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다가, 정신과 협진을 받고 호전되어 퇴원했다. 한 50대 여성은 누가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소변줄과 주삿바늘을 뽑고 병원을 탈출했다가, 경비에게 붙들려 다시 돌아왔다. 진정제를 맡고 며칠 회복한 후 무사히 퇴원했다.
뇌 수술이 으레 그러는지, 신경외과 중환자실 의료진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얘기도 있었다. 뇌수술 후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서 돌보느라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며칠 안에 많이들 좋아져서,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한 것도 잊고 퇴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러나 수술 후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 케이스도 꽤 있었다. 한 70대 여성은 뇌 수술 후 치매 증상을 보이다가 폭력성과 배회 증상까지 더해져 병원 침대에 묶여 지낸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수술 후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의사는 수술과 관계없다고 말하며 원인을 규명하지도, 치료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의사들은 외과적인 면에서 수술이 잘 됐다 잘 안 됐다를 판단할 뿐, 수술 후 나타나는 성격 변화, 망상, 불안증 등은 논외로 하는 것 같았다.
수술 후 성격이 완전히 변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겨도 의사들은 수술이 잘되었다고 본다. 뇌출혈이나 부정맥 같은 명백한 외과적 이상이 아닌 이상, 이런 문제는 후유증의 축에 끼지 못한다. 생명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삶의 질'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의사의 소관이 아니다.
가만 보면, 메이저 대학병원은 병을 고치는 곳이라기보다 거대한 수술 공장 같았다. 신체 일부를 열고, 원인이 되는 무언가를 잘라내거나 접합한 후, 바이탈 사인을 안정화시키고, 특별히 수치에 문제가 없으면 밖으로 내보내는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가는 공장. 이 안에 환자의 삶의 질이나 완전한 회복 같은 항목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병원은 매뉴얼대로 의술을 제공했으므로, 각자 회복은 알아서 해야 한다. 회복 못하면 그건 환자 사정이지 병원은 책임이 없다.
물론, 병원이 신도 아니고 생로병사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환자의 병을 고치고 죽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게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이젠 수술만을 위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아무리 아파도 수술 일정이 잡혀야 입원을 시켜주고, 수술을 하면 최대한 빨리 병상을 비워야 하고, 곧 숨이 넘어가게 생겨도 수술불가인 환자는 병원에서 내보낸다.
메이저 대학병원으로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기 때문에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환우 가족으로서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퇴원 날이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담당 교수가 회진을 오기 기다렸다. 이윽고, 우리 자신만만 교수님이 병실에 들어왔다.
"좀 어때?"
여전히 노빠꾸 반말 시전이요.
"많이 좋아지시긴 했어요. 그런데..."
"응 그래. 좋네. 잘 됐어."
"그런데 교수님, 엄마 성격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말이 많아지고 거칠어졌어요. 좀... 공격적이랄까요? 시간 개념이랑 상황 파악 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수술 때문에 그럴까요?”
자신만만 교수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 툭툭 쳤다.
"그게 중요해? 엄마가 살았잖아. 뭐가 더 중요한지 알아야지. 별거 아니잖아 이런 건."
별거 아니라고요?
"우리 좀 지켜보자, 조급해하지 말고. 응? 아직 수술한 지 열흘밖에 안 지났어.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해. 수술 후 3개월까지는 지켜봐야 해. 할 수 있지? 힘내고."
"네... 감사합니다."
자신만만 교수님은 뒤도 안 돌아보고 퇴장했다. 그래, 아직 열흘밖에 안 지났는데 뭐. 엄마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뇌 속에선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좋아질 거야. 조금 더 기다려보자.
간병인이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조용히 있던 엄마가 말했다.
"저 사람 너네 학교 선배 맞지? 너 좋아했던 거 아니냐?"
...엄마는 성격 변화에 심각한 인지저하 문제까지 더해지고 있었다.
"아니야, 엄마! 엄마 수술해 준 의사잖아! 왜 그래 진짜... 그 정도도 파악이 안 돼?"
"근데 왜 반말이야? 그러니 내가 헷갈리지. 무슨 의사가 입만 열면 반말이래. 수술한 의사인 건 알어 나도."
...엄마가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 같진 않았다.
깜놀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