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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Sep 01. 2023

아무리 인생이 소풍이라지만

(10)

G대학병원을 떠나, 점심때가 훌쩍 지나 A시에 도착했다. 거의 한 달만이었다. 요양병원에 갈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떠나 있을 줄 몰랐지.


엄마는 걸음걸이는 여전히 시원찮았지만 혼자 움직일 수 있고, 거친 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종일관 웃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해서, 조증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아 포근하고 좋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엄마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엄마는 평소 푹신하고 보드라운 침구를 선호하여 나이스필이라는 브랜드의 이불을 계절마다 사 모았다. 나도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감촉이 부드럽고 피부에 착 감겨 기분이 좋았다.


"너 얼른 가. 엄마 혼자 있을 수 있어. 아기 봐야지."


"진짜?"


"그래. 여섯째 이모가 낮에 와본다고 했고, 오빠가 연휴 동안 있을 거니 걱정 마."


여섯째 이모, 즉 미주 이모는 엄마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미주 이모는 아주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외할머니를 모시면서도 세탁소 일도 잘 하고,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었다. 나랑 나이가 크게 차이 안 나서 언니처럼 터놓고 지내고 있었다.


"알았어, 엄마. 그럼 나 간다?"


"그래. 어서 가. 무슨 일 있으면 미주 이모한테 연락하면 되니까, 넌 아기나 잘 봐."


엄마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의 4층이었다. 왜 하필 엄마는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을까? 이러면 어디 외출하기도 힘들 텐데.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날 밤, 아기가 아팠다.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이고, 몸을 미온수로 닦아주고 계속 안아주었다. 나도 감기몸살이 걸려 여기저기 쑤시고 기침이 나왔지만, 아기가 아프니 내 몸은 뒷전이었다. 사실 아기 돌보는 게 엄마를 돌보는 것보다는 쉬웠다. 새벽까지 아기를 안았다 눕혔다 하면서 겨우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엄마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 머리가 믖 ㅡㅡ믄히

 무치

 ㅁ집ㅂㅇ


메시지가 온 시각은 새벽 4시.


'이게 무슨 말이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엄마 카톡 이거 뭐야?"


"류미니? 나 있잖아, 밤에 사고쳤다?"


"무슨 사고?"


"머리가 무지무지 아픈 거야.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현관문 두드렸어. 살려달라고."


"새벽에?"


"응."


"아프면 우리한테 전화를 해야지,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면 어떡해."


"그럼 어떡하니?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그래서 누가 나와봤어?"


"한 집도 안 나오다가 어느 집에서 한 명 나오더라. 여기서 이러지 말고 119 부르래."


"그럼 119 불러서 병원 가지 그랬어."


"근데 그러다 보니까 머리가 안 아프더라고. 까먹었나 봐. 그래서 집으로 왔어. 이제 괜찮아."


"엄마 당장 병원 가야 돼. 그렇게 아프면 뭔가 문제 있는 거야."


"아냐, 지금은 괜찮아. 아주 멀쩡해. 컨디션 굿!"


엄마의 목소리가 활기찼다.


"미치겠네. 내가 가 있을 수도 없고."


"걱정하지 말라니까? 걱정 말고 너나..."


엄마는 말을 다 끝내지 않은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뭔가 불길했다. 카톡도 이상하게 보내고 전화도 중간에 끊어버리고. 게다가 머리가 아파서 새벽에 남의 집 문을 쾅쾅 두드리고 다닌다니... 밤에 또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닐까? 불안했지만, 아픈 아기를 두고 엄마에게 다시 갈 수 없었다. 남편에게 연차를 더 내라고 하기도 미안했다.


다음날 새벽 5시, 핸드폰이 울렸다. 미주 이모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여보세요? 이모?"


"류미야...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놀라지 말라는 말에 심장이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병원 응급실이야. 엄마 한밤중에 피투성이가 돼서 응급실 왔대."


"어? 왜!!!"


"화장실에서 쓰러졌나 봐. 정신 잃었다가 밖에 나와서 택시 잡아서 응급실로 왔대. 나도 조금 아까 연락받아서 새벽기도 가다 말고 여기로 뛰어왔어."


"엄마 많이 다쳤어?"


"머리 10바늘 꿰맸대."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엄마 어때? 의사는 뭐래고?"


"천만다행으로 상처가 수술 부위에서 약간 비껴났대. 잘 꿰매서 위험하진 않을 거라네. 엄마 지금 자니까 이따 깨면 연락할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는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았다. 우리 아기도 아프고 엄마도 아프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내가 동시에 돌볼 수가 없었다. 무력감이 몰려왔다.


카톡!


미주 이모였다.


- 엄마 깨어났어.

- 아주 상태 좋네.

- 사진을 보냈습니다


사진 속 엄마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세상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뭐가 이렇게 행복한 거야, 죽을 뻔했는데. 눈물이 가득 고였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환한 웃음을 짓는 엄마를 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엄마를 지켜주리라 다짐했다.



"야, 엄마 멀쩡한데?"


오빠였다. 머리 깨진 엄마를 보러 간 김에, 연휴 내내 엄마와 있을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밤에 엄마를 혼자 두는 게 불안해서 우리는 다음 주부터 24시간 상주 간병인을 쓰기로 했다. 비용은 한 달에 400만 원. 그나마 조선족이라 이 정도지 한국인은 훨씬 더 비쌌다. 엄마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더라...


"다행이다. 밤이 문제니까 잘 지켜봐. 상주 간병인 오기 전까지만 고생해."


"그래. 의사 만났는데 퇴원해도 되겠대. 너 아기는 좀 어때?"


"열났다 떨어졌다 반복이야. 내일 병원 가봐야지."


"그래... 애 아프면 부모도 고생이야. 수고해라."


"엉."


그날 밤, 오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 미치겠다

- 엄마 통제가 안 돼

- 화를 내면서 고집을 엄청 피워


동영상에서 엄마는 계단에 앉아 허우적대고 있었다.


"비켜! 이거 놔!"


"엄마, 여기서 이러면 안 돼. 밤이잖아. 들어가야지~ 응?"


오빠가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었다.


"나 안 들어가!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어떻게 들어가! 나 혼자 내려갈 수 있으니까 저리 가!"


"엄마! 계단에서 넘어지면 큰일 나. 또 응급실 가고 싶어?"


"괜찮다니까. 이거 놓으라고!!!"


엄마가 또 거친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어딜 가겠다는 거야. 게다가 밤 열두 시가 넘었는데.


- 나 진짜 한계다


- 오빠... 좀만 버텨. 며칠만 있으면 간병인 오잖아


- 돌겠다 진짜


다음날 아침에 오빠가 보내온 동영상도 비슷했다. 몸도 못 가누면서 나가겠다는 엄마와 실랑이하는 오빠.


- 밤보다는 누그러졌는데 아직도 고집 피우네


나는 조마조마했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욱하는 성질의 그가 엄마를 버틸 수 있을까? 동영상 속 오빠는 아주 친절하고 조근조근하게 엄마를 어르고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성질을 억누르다 보면 더 크게 폭발하는데... 불안했다.


그날 오후, 나는 열이 나는 아기를 안고 병원에 갔다. 귀에 농이 가득 찬 중이염 진단을 받았다. 내가 곁에 없는 동안 아기는 심하게 앓고 있었다. 워낙 튼튼한 아가라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얼마나 아팠을까... 너무 미안했다.


아기를 안고 병원 로비로 내려오는데, 전화가 왔다. 오빠였다.


"야 나 못해. 엄마랑 더 이상 못 있어."


"왜 그래 오빠. 무슨 일인데?"


"계속 고집 피우면서 나한테 성질 내. 나더러 당장 가라 그런다. 기분 좋았다가 화냈다가 반복이야. 나 이제 몰라. 포기야."


"...못하면 어떡해. 간병인이 다음 주에 오는데."


"몰라. 아무튼 난 못해."


뚝. 전화가 끊겼다.


무책임한 인간, 내 저럴 줄 알았다. 엄마한테 과하게 친절할 때부터 조마조마했어. 원래 잘하려 노력할수록 더 크게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버리면 엄마는 누가 돌보나? 아픈 아기를 두고 내가 갈 수는 없었다. 남편 연차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화가 나고, 난감하고, 짜증나고, 원망스러웠다. 저 인간… 엄마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엄마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어려서 난 오빠에 비해 차별받는다고 느꼈다. 그는 미취학 아동 때부터 피아노와 플루트, 바이올린을 개인 레슨 받았고, 원어민 영어 과외, 미술, 성악, 작곡, 수영, 스케이트, 태권도, 논술, 컴퓨터 등 많은 사교육을 섭렵했다. 나도 몇 가지는 배웠지만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오빠가 받는 사교육과는 상대가 안 됐다. 


엄마는 훗날 '오빠가 머리가 비상하고 이것저것 재능을 보여서 욕심을 안 부릴 수 없었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반만큼 내게 관심을 쏟았으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공부 관련 학원을 한 번도 안 다녀본, 반에서 공부 못하는 애의 대명사였다. 다행히 엄마가 성적 갖고 혼내지 않고 나 또한 철이 늦게 든 덕분에(?), 공부 못하는 애들이 흔히 겪는 좌절감이나 열등감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에 재미를 붙여 그럭저럭 대학을 갔으니 망정이지, 여차했으면 최종학력이 고졸로 남을 뻔했다.


그러나 오빠는 오히려 지나친 기대가 자신에게 독이 됐다며 불만이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학원과 학교를 빠지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 게임에 빠져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비상한 머리' 덕분인지 적당히 대학에 진학하긴 했다.

 

나는 화가 났다. 양과 질 모두에서 나보다 훨씬 많은 교육과 사랑과 관심을 받은 그가, 엄마를 며칠 돌보지도 않고 대책 없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엄마에겐 자식이 딱 둘 있는데, 오빠가 안 하면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열이 펄펄 나는 돌도 안 된 아기 엄마인 내가.


부아가 치밀었다. 왜 혜택은 아들이 받고 돌봄은 딸의 몫인가? 딸들은 뭐 특별히 돌봄을 잘하게 태어났는 줄 아나? 아들이 힘들면 딸도 힘들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글들이 생각났다. 유산은 아들이 물려받고 모시는 건 딸이 한다는 이야기, 노년이 편하려면 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들, 딸 시집 안 보내고 월급을 족족 부모가 빼앗아 쓴다는 사연... 내가 겪지 않은 일이지만 모든 억울한 대한민국의 딸에 빙의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미주 이모였다.


"류미야, 나 지금 교회 권사님이랑 요양원 다녀오는 길이야."


"이모, 있잖아 오빠가..."


"알아, 좀 아까 너네 오빠랑 통화했어."


"어떻게 해 이모?"


"뭘 어떡해. 엄마 요양원으로 모시자."


"요양원? 아니 이모,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상주 간병인이 오기로 했거든. 그때까지만..."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간병인이 엄마랑 둘만 24시간 붙어 있는데 불안하지 않아? 게다가 조선족이라며."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


"내가 상주 간병인 온다는 얘기를 교회 권사님한테 했거든? 그랬더니 그분이 차라리 요양원으로 모시래. 마침 자기가 일하는 요양원이 가정집처럼 되어 있고 인원도 적어서 적응하기 쉬울 거라고 하네. 지금 개인실이 딱 하나 비어 있대."


우리 엄마가, 아직 팔팔하게 젊은 우리 엄마가 치매 할머니들이 가는 요양원에? 말도 안 돼.


"근데 엄마 상태가 어떤지 알지 이모? 밤에 계속 나가려고 하고 끝도 없이 말하고 고집 피우고..."


"알아 설명했어. 일단 데려오래. 어떻게든 다 적응하게 해 준대. 걱정하지 말래.”


눈물이 났다. 오빠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도 엄마 곁에 있을 수 없다. 아픈 아기를 두고 갈 수 없고, 엄마 집에 아기를 데려가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주 이모가 일하면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엄마까지 케어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이모... 괜찮을까? 엄마 요양원 절대 안 가려고 할 텐데."


"방법이 다 있대."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며칠 말미가 있다면 더 고민해 보겠지만, 현재로선 대안이 없었다. 엄마를 오늘 밤 혼자 두면 생명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몇 시간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류미야, 나 미주 이모랑 이모 친구랑 소풍 가기로 했다? 저~기 풀밭이 아주 이쁜 곳이 있대.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놀다 올 거야."


엄마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목이 막혔다. 엄마를 소풍 간다고 속였구나.


“지.. 진짜? 좋겠네 엄마.”


“응 너무너무 좋아! 병원에서 나오니까 이런 날이 다 오네.”


“그래 엄마 잘 놀다 와… 무슨 일 있음 전화해."


"무슨 일이 왜 있겠어. 나 컨디션 너~무 좋고 기분도 최상이야! 아, 혹시 늦을지도 모르니까 전화 안 돼도 걱정하지 마, 알겠지? 난 네가 걱정하는 거 너무 싫어... 엄마 다녀올게~"


“... 응. 조심히 다녀와.”


“그래. 이따 전화할게! 엄마 놀러 간다~~"


소풍 간다는 말에 한껏 신난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소풍 가는 줄 알았는데, 간 곳이 요양원이란 걸 알면 엄마는 얼마나 배신감이 들까? 엄마… 미안해. 자괴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언제까지나 지켜주겠다고 결심했지만, 나는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


너무 쉽게 내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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