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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Sep 06. 2023

손발이 묶인 채 바다에 빠진 기분이랄까

(11)

깜깜한 방,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직까지 요양원에 간 엄마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우려한 대로 난리가 난 걸까?


전화가 왔다. 미주 이모였다.


"류미야, 너희 엄마 잘 들어갔어."


"정말? 요양원인 거 알고도?"


"아니, 이모 친구 집이라고 했지. 엄마가 여기 마음에 들어 하네. 한참 수다 떨고 놀다가, 자고 가라니까 이러는 거야. '정말 그래도 될까요? 폐가 되지 않을까요?' 마음에 든단 뜻이거든 그거.”


"거기 엄마 또래도 있어?"


"없지. 다 할머니들이야. 50대 남자 한 분 있는데, 1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휠체어 타고 말도 못 해."


"엄마는 누구랑 수다 떨고 논 거야?"


"거기 요양보호사들이랑 친구라고 생각하더라. 자기가 일 도와주러 간 줄 알아."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엄마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의미여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가정집이어도 노인들과 휠체어 탄 사람만 있다면,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요양원이라는 걸 진즉 파악했을 것이다.


"오빠는 뭐래?"


"지금 사무실 들어가서 계약서 쓰고 있어. 나오면 같이 슬슬 가야지."


"이모... 엄마 괜찮겠지?"


"그럼, 괜찮아. 이모가 교회에서 잘 아는 권사님이라 잘 돌봐주실 거야. 야, 확실히 베테랑 요양보호사는 다르더라. 너희 엄마가 밥 먹다가 남기니까 그걸 가져가서 먹더라고. 자긴 아무렇지도 않대. 똥 치우는 것도 하나도 안 더럽대. 잘해주실 거야. 걱정하지 마 류미야."


"응 이모, 고마워. 고생했어."


"너도 고생 많았다. 너희 오빠 어깨가 축 처졌네. 나중에 오빠랑 통화 한번 해."


싫어. 오빠랑은 당분간 연락하지 않을 거다. 그거 며칠 못 참아서 엄마를 요양원에 가게 만들어?


"맘 안 좋겠지만... 너희 엄마는 지금 한 명이 케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냐. 요양원은 돌아가면서 몇 사람이 돌보니까 그나마 감당하지, 간병인이 집에 온다고 해도 한 명으로는 어림없어. 그러니 마음 편히 가져. 알겠지?"


"응 이모. 고마워."


전화를 끊었다. 창문에서 빛이 들어와 천장을 가로질렀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 엄마는 암수술을 했을 뿐인데, 왜 치매 할머니들이 가는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할까? 우리 엄마는 자식도 둘이나 있는데, 왜 시설에 맡겨져야 할까?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 살아서 그랬다. 내가 친구들처럼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아기를 낳았다면, 지금쯤 초등학생쯤 된 아이를 어디 맡기고 엄마를 돌보러 갔을 것이다. 혹은 결혼을 안 했다면, 맘 편히 엄마 곁을 지켰을 것이다. 아니면 결혼을 해도 아기가 없었다면, 엄마에게 가 있을 수 있었겠지. 아니면 아기가 두 살이라도 넘었으면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엄마에게 갔을 것이고.


아니면 내가 한창 돈 벌 시기에 착실히 돈을 모았다면, 적당히 넓은 집에 살면서 아기를 키우면서도 엄마를 모실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작은 거실, 작은 방 하나, 부엌, 화장실이 전부인, 혼자 살면 딱 좋을 집에 아기까지 셋이 살고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와도 엄마가 누울 공간조차 없었다. 만약 남편이 이직하지 않아서 집값 비싼 동네에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가 주차 문제를 들어 무조건 아파트만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엄마가 치매 외할머니에게서 진작 해방되어 우리 집 근처로 이사했다면 어땠을까? (엄마는 외할머니에게서 독립한 지 딱 5일 만에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아니면 내가 제비꽃이 아닌 다른 남자랑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돈 많은 그때 그 남친과 싸워서 헤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넉넉한 살림에 엄마까지 모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더 과거로 흘렀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다시 크게 사업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빠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뜯어말렸더라면... 나랑 오빠가 일찍 결혼해서 아빠가 일찍 일을 접고 욕심 없이 은퇴했더라면... 내가 첫 회사를 때려치우고 백수로 살면서 아빠의 불안감을 조장하지 않았더라면…


상념은 정처 없이 과거를 헤집고 다녔다. 과거의 결정 하나하나가 못 견디게 후회스러웠다. 내가 잘못 산 결과로 엄마는 '돌볼 사람이 없어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됐다. 엄마는 얼마나 얼떨떨하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울까?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낳아준 엄마 하나 돌보지 못하면서 살아서 뭐 해?


밤새 울다 깨다를 반복했다.

엄마에게선 전화가 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던가? 불안했던 평화는 그다음 날 밤에 와장창 깨졌다.


"여보세요?"


"류미야, 나 꺼내줘."


 엄마였다.


"어... 엄마, 거기 미주 이모 친구 집이라며. 있기가 불편해?"


"뭔가 좀 이상해...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문 앞에 누가 지키고 있어. 답답해서 거실에 나가려고 하는데 들어가라고 고함을 치는 거야. 나 아주 깜짝 놀랐어. 나 이제 집에 갈래."


올 것이 왔구나.


"엄마, 지금은 밤이 늦었으니까 일단 자고 내일 얘기하자."


"지금 와. 나 못 견디겠으니까."


"지금 어떻게 가. 아기 봐야 하는데. 엄마, 내일 얘기해. 응?"


"...알았어. 그럼 내일 와."


전화를 끊고 미주 이모 친구, 그러니까 요양보호사 김 권사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엄마가 전화해서 당장 오라고 하는데 어떡해요?


- 전화받지 마세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 언제까지요?


- 당분간이요. 급한 일 있으면 제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통화하세요. 우리 원을 전적으로 믿고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적응하세요


- 네 알겠습니다


제발... 엄마가 적응하게 도와주세요. 하느님 성모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제발 누구든 엄마가 적응해서 잘 있다가 회복해서 나오게 도와주세요.


다음 날 오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수십 통씩 오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문자에 불이 났다.


- 네겣. ㅓㄴ화보ㅓㄴ호기안찾아지네바로전화해


- 심가한생화이야 바로 솨 전환해


- 이상해ㅣ


- 꼭 전화해 가곡히 브탇해


'간곡히'라는 단어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 맞춤법 하나 안 틀렸던 엄마였다. 그렇게 똑똑했던 엄마가 이제 문자도 제대로 못 쓰는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문자 폭탄이 잠시 잠잠하더니 밤에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 많이화났어 이번사좋은사이 다끝났어 가족익.간.억


- 아빠 낙바븘넝 ㄱㄴ.ㅣㅣㅅ.ㄴ 낼 아마 널아 빠 오젓에 옷ㄴ꺼야 네바붓ㄴ헜렀어나 티ㅡ원시킷나고

이번에 좋ㄴ가지ㅡ콴계다 끝났어 이모들도


엄마의 원망에 속이 타들어갔다. 엄마를 데리고 나와야 하나?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뇌 수술까지 하고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엄마를 이렇게 방치해도 될까?


하지만 데리고 나오면? 오빠도 엄마 못 돌본다고 가버렸잖아. 새언니에게 엄마 퇴원하고 딱 2주일만 집에 모셔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잖아. 결국 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를 모실 수 있을까?


내겐 아기가 있었다. 만약 아기를 데리고 엄마를 돌보러 가면 어떨까? 안돼 안돼. 만약 내가 엄마한테 정신 팔려 있는 동안 아기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해. 무엇보다, 난 아기 하나로도 허덕이는 서툰 엄마였다. 그런 내가 둘을 동시에 돌볼 수 있을까?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는 옵션을 생각해 봤지만, 돌도 안 된 아기를 장기간 봐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눈치가 보였다.


나는 지금 내 가족에게 최소한의 해만 끼치고 싶었다. 내가 꾸린 이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엄마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요양병원과 G대학병원에서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며 화내던 엄마였다. 오빠가 보내온 동영상 속 엄마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났다.


결국, 나 또한 엄마를 돌볼 수 없었다. 난 비겁한, 천하의 불효자식이었다. 엄마를 버린 몹쓸 년이었다.


셋째 이모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거느린다는 말이 딱 맞네.'


아마 미주 이모를 제외한 다른 이모들은, 말은 안 해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나를 너무하다 생각할 것이다. 이모들은 늘 나를 착하고 야무지고 엄마한테 살가운 효녀라고 칭찬했었다. 이제 난 엄마를 버린 나쁜 년이 되어 있겠지.


처참한 기분으로 김 권사님에게 전화했다.


"권사님, 엄마가 너무 나오고 싶으신가 봐요... 어쩌죠? 그냥 모시고 나오는 게 나을까요?"


"말했잖아요. 처음엔 다 이래요."


"엄마 어제 잠은 주무셨나요?"


"합쳐서 1시간 주무셨나? 잠을 안 자요. 한 10분 자고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또 한참 있다가 5분 자고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밤 근무 하는 선생님들이 아주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어떡하죠..."


"일단 여기서 한번 해볼게요. 이 상태로는 어르신 집에 못 모셔요. 우리야 이게 직업이고 여러 명이니까 하는 거지, 집에선 불가능해요. 가족들이 병나요. 걱정 마시고 저희를 믿으세요. 적응하실 겁니다."


“근데요 제가요... 너무 속상해요... 이게 맞는 걸까요? 그냥 어떻게 되든 모시고 나와야 하나 고민이 돼서..."


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감당할 수 없고, 엄마는 그곳에서 미친듯이 나오고 싶고, 요양원 직원은 집에서 엄마를 돌보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르신 엊그제 화장실에서 정신 잃어서 큰일 날 뻔했잖아요. 지금 나가면 위험해요. 우리가 밤새 지켜보면서 화장실 갈 때 부축하고 밖에 못 돌아다니게 하니까, 여기 있어야 그나마 안전해요. 걱정 말아요. 어르신 곧 적응할 거니까."


아줌마였던 엄마는 그새 어르신이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 어르신 아닌데… 세 달 전만 해도 직접 운전해서 강원도도 가고 매주 두 번씩 10km 걸으면서 돌아다니던 팔팔한 중년 여성이었는데…


전화를 끊고 다시 방바닥에 누웠다. 낮에 아기가 열이 많이 오르고 아파서 두 번이나 응급실에 다녀온 상태라 더 기진맥진했다.


나는 무력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동안의 인생에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먹고 노력하면 대부분의 일이 어찌어찌 해결되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생사가 걸린 이 상황에서, 난 완전히 무력했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지랄발광을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마치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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