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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까지 엄마에게선 전화가 없었다. 어젯밤에는 엄마가 얌전히 잤나?
궁금했지만 한편으론 알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상상도 못 했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터지면서 멘탈이 탈탈 털린 상태였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어찌 됐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러나 나는 엄마를 요양원에 처넣은 나쁜 자식이다. 연락까지 끊어버리면 그야말로 몹쓸 년이 된다. 뉴스에 종종 나오지 않는가. 요양원에 부모를 모시고 연락 두절되는 천하의 쌍노무 새끼들. 그게 내가 될 순 없었다. 엄마의 요양원 적응을 돕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이게 길어지면 연락두절까지 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곤, 그 천하의 쌍노무 새끼들도 처음부터 연락을 끊어버릴 작정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전화가 왔다. 미주 이모였다.
"여보세요. 이모?"
"야 류미야, 미치겠다."
"왜? 무슨 일 있어?"
"엄마가 할머니댁 위층에 사는 동 반장한테 밤에 문자 보냈대. 갇혀 있으니까 제발 꺼내달라고."
엄마 핸드폰에 유심칩을 다시 끼워놨구나.
"그래서?"
"그래서 반장이 깜짝 놀라서 나한테 전화했어. 밤 열 시에."
"에휴..."
"내가 사정 설명하고 엄마 번호 차단하라고 했어. 요양원에는 엄마 핸드폰 안 되게 하라고 말했고."
"응 이모 고마워."
"고맙긴. 엄마가 빨리 적응하면 좋겠다."
"그러게."
역시 아무 일 없지 않았다. 바로 어제 오후에 나랑 얘기 잘했으면서 왜 그랬을까. 아무래도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봐야 할 듯했다. 나의 불안한 평온이 깨진다 해도 상황은 알고 있어야지. 용기를 내자.
"안녕하세요, 오미실 어르신 딸입니다. 엄마 잘 계시나요?"
"아휴... 말도 마요. 이모한테 들었죠? 어제 사람들한테 살려달라고 문자 보냈다고. 그래서 내가 핸드폰 감췄어. 그랬더니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핸드폰 달라고 난리야. 안 주면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바닥에 머리 박고 죽겠다 협박하고... 내가 아주 애를 먹었어. 잠도 한숨 안 자."
전화하지 말걸 그랬다. 역시 모르는 게 약이었다. 심란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불효녀답게 엄마가 얼마나 괴로울까 보다는, 혹시 이러다 요양원에서 퇴소당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먼저 들었다.
"저희 엄마 원래 그런 분 아닌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왜긴, 치매라서 그러지. 아주 전형적인 치매 증상이에요. 처음에 여기 오면 다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 그런데 미실 언니는 유난히 힘들게 하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내가 머리를 썼지. 여기 치매 아닌 할머니가 한 분 있거든? 내가 가서 뭐라고 좀 해주라고 옆구리를 찔렀어. 그랬더니 할머니가 엄마한테 가서 '지금 여기 다 주무시는데 왜 이렇게 난동 부리냐고, 창문으로 뛰어내릴 거면 뛰고 바닥에 머리 박고 싶으면 박으라'고 혼을 냈어.“
"그랬더니요?
"아이고, 내가 웃겨가지고, 엄마가 가만히 있대? 한 마디도 못해~ 우리가 말릴 땐 듣지도 않더니 꼬부랑할머니가 혼내니까 가만 있어. 그러더니 방에 들어가 눕더라고. 잠은 밤새 안 잤는데 이후로 난리는 안 피웠어."
이러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난동 피우다 할머니한테 혼나고 얌전해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뭔가… 귀여웠다. 이 요양보호사님은 그런 재주가 있었다. 심각한 일을 별거 아닌 유쾌한 일로 만들어 버리는.
"엄마가 밤에만 그러지 낮에는 괜찮아. 지금 아침 드시고 사람들이랑 수다 떨고 있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순위도 매겼어. 1번이 여기 있는 간호사고, 2번이 나, 3번이 원장님이야. 간호사는 출근하면 좋다고 껴안아주고 볼에 뽀뽀도 한다니까. 아이처럼 좋아해요."
엄마가?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내가 안아달라고 하지 않으면 먼저 안아주지 않는다. 엄마 집착녀인 나는 30대까지도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맨날 어리광을 부렸다. 뽀뽀는 당연히 없는 일이다. 그런데 간호사를 안고 뽀뽀한다고? 낯선 모습이었다. 아니면 저게 엄마의 솔직한 모습일까? 사랑이 많고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그리고 엄마가 인정이 많잖아. 알지? 사람들 치킨 사주라고 자꾸 돈을 줘. 여기 어르신들 밥이랑 떡 같은 간식 외에는 못 드시거든. 근데 막무가내로 자꾸 치킨 시키래. 아이고 참나... 그래서 이따가 시켜서 우리 직원들이랑 나눠 먹기로 했어. 남자친구한테도 뭐 사 먹으라고 용돈 준다? 그걸 어디 가서 쓴다고."
그래 엄마, 남친이라도 잘 만나서 적응해. 말 못 하고 감정 표현 못하고 걷지 못하는 남친일지라도... 아 그리고 스무 살이 어릴지라도…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 잘 적응하실 거니까 걱정 말고 아기나 잘 봐요. 엄마랑 잠깐 통화할래?"
"그래도 돼요?"
"응, 우리 통해서는 얼마든지 통화해도 돼."
"네 그럼 할게요."
"잠깐만."
"여보세요?"
엄마다.
"엄마 나야, 류미. 어제 잘 잤어?"
모른 척하고 물었다.
"응 아주 잘 잤어. 개운해. 걱정하지 마."
들은 말이 있는데 거짓말하긴.
"핸드폰 없어졌는데, 괜찮아. 어차피 연락할 사람도 없는데 뭐. 여기서 아침에 미역국 끓여줘서 맛있게 먹었어."
"아픈 데는 없어?"
"응 아픈 데 하나도 없어. 여기 정원 너무 예뻐서 이따가 산책하려구."
낮이라 그런지 기분이 안정된 것 같았다.
"그래 엄마 산책하면서 운동도 하고 그래. 이제 슬슬 움직이면서 운동을 해야 빨리..."
"잠깐만, 뭐라고요? 아, 류미야 나 고스톱 치러 가야 돼. 끊는다."
뚝.
오미실 여사는 전화를 끊고 가버렸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했다. 엄마는 확실히 이상했다. 수술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왜 밤에만 그렇게 돌변하는 거야? 애초에 뇌종양은 뇌종양이고, 치매는 치매대로 진행되고 있었던 걸까? 암 때문인지, 수술 때문인지, 치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증상이 중요하지 이유가 뭐가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뇌종양이나 수술 때문이라면 가역적이고, 치매라면 비가역적이다. 그러니까 치매라면 더 이상 좋아질 확률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희망을 갖는 의미가 있을까?
컴퓨터를 켰다. 엄마가 새롭게 아플 때마다 그랬듯 또다시 인터넷 카페를 검색했다. 이번엔 치매 카페였다. 신장암, 폐암, 일반 암, 뇌종양 카페에 이어 5번째 환우 커뮤니티였다.
글을 하나씩 읽어봤다. 치매 카페에서 본 세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동안 나는 '치매'라고 하면 기억을 잃고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며 가족을 못 알아보는 정도로 생각했다. 최애 드라마인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 환자(김혜자 분)는 옛사랑과의 추억에 빠져 사는 얌전한 할머니였다. 또 인터넷 어느 글에 등장한 치매 할머니는 남편인 할아버지를 기억 못 하고 그와 매일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치매는 그런 고요히 서글픈 게 아니었다. 육탄전이 가미된 절망이었다. 치매는 곧 폭력, 망상, 배회, 욕설, 충동 조절 불능과 맞닿아 있었다.
가족을 도둑으로 몰아 못살게 구는 사람
가족을 구타하는 사람
수시로 욕하고 침 뱉는 사람
온갖 쓰레기를 가져와 집안 곳곳에 숨겨놓는 사람
몰래 집을 나가 가족과 경찰이 밤새 찾으러 다니게 만드는 사람
망상으로 난동 피우는 사람
등등 치매 환자가 만드는 막장 드라마 같은 사연이 줄줄이 있었다. 물론 글 쓴 사람들이 특별히 힘든 케이스이고, 착한 치매(얌전하고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은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만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고도, 치매 환자의 가족들은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었다. 치매 환자보다 자기가 먼저 죽겠다고 하소연할 만큼. 치매 환자를 돌보다가 병을 얻어서 먼저 죽은 사람도 있고, 치매 시아버지에게 맞아서 사산한 임신부도 있고, 심지어 치매 부모와 동반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치매 가족 돌봄으로 인해 병을 얻거나 심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거의 다였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른바 '착한 치매' 환자들은 상황이 낫지만, 가족이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치매환자를 모시는 집에서는 평범한 일상이 불가능하다. 생업을 포기하고 옆에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돌발상황에 늘 긴장해야 하는 상황을 기꺼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 해도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며 온전히 간병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가정이 무너진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그렇게 화목하던 가족도, 형제들 간 의견 차로 사이에 금이 가는 건 물론 독박 간병으로 다른 형제들과 의절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요양원에라도 모실라 하면 욕 하면서 불효자식 취급하거나 교묘하게 재산을 빼내가는 친척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는 말은 치매 카페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였다.
암 환우회 카페의 주된 분위기가 '간절함'이라면, 치매 카페는 '포기와 해탈'이 주된 분위기였다. 어차피 좋아질 가능성은 제로에,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내가 맞춰서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인지 게시글들이 굉장히 철학적이고 삶에 대한 통찰이 많았다. 인생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괴로움이 이어질 때, 사람이 성숙해지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해서일까?
글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이것이었다.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건 불효가 아니다. 케어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은 없으며, 필요한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날 미칠 듯 괴롭혔던 죄책감이 수그러드는 걸 느꼈다. 정신승리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엄마를 위해 안전한 선택이었고, 우리 남매가 각자의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상황에 맞는 선택이었다.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치매 카페에서 본 글들을 얘기해 줬다. 그다지 유쾌하게 듣지 않던 남편이 한 마디 했다.
"나는 절대 우리 부모님 요양원에 안 보내. 절대 남의 손에 안 맡겨. 근데 만약에 내가 천하의 개 씨발놈이라 부모를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게 되면, 거기서 부당한 대우받으면 가서 다 죽여버릴 거야."
우리 엄마의 자식들은 너무 쉽게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엄마가 핸드폰도 빼앗기고 할머니한테 혼났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천하의 개 씨발놈인 걸까? 엄마가 요양원에 간 이유 중에는 '남편 너를 포함한 내 가정의 일상을 지키고, 너의 귀한 어머니에게 육아의 힘듦을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도 있다는 걸 모르나 보네. 치매 카페에서 받은 위로가 무색하게 가슴에 상처가 남았다.
하지만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그다지 늙지 않은 엄마가 갑자기 아프고, 그로 인해 내 일상과 가정이 무너지고, 엄마가 인지저하와 혼란으로 인해 비정상적인 언행을 하는 상황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치매 카페에 이런 글이 있었다. 정말 죄송스럽지만, 자기는 친구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부러웠다고. 자기 아버지도 치매가 아니고 암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 그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실제로 겪어본 사람밖에 없을 거다.
치매는 멀쩡한 사람도 몹쓸 불효자식으로 만드는 슬픈 병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