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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Sep 08. 2023

요양원에서 싹트는 사랑(?)

(12)

일요일 새벽 7시,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었다. 서울을 빠져나가자 쾌적한 길이 펼쳐졌다. 오늘 같은 날 아무 걱정 없이 나들이 가면 딱 좋을 텐데.


하지만 내겐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A시 요양원에 가서 원장을 만나야 했다.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던 날, 오빠는 계약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했다. 엄마의 신분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새벽 5시에 일과가 시작하니까 일찍 와요. 그런데 엄마는 만날 수 없어. 초반에 가족이랑 완전히 떨어져야 적응하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요."


원장의 말에 알겠다고 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요양원 적응이 우선이니까.


출발한 지 2시간 후, 내비에 입력한 주소에 도착했다. 꽤나 넓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잘 가꾼 잔디밭 한쪽에 꽃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처음에 신나서 들어갈 만도 했다. 차를 대고 원장에게 전화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엄마가 나를 볼 수 있으니 돌아서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최대한 자세를 낮춰 표지판을 따라 뒷문으로 갔다. 앞에서 봤을 땐 일반 단독주택으로 보였는데, 뒷문은 컨테이너 가건물 벽 같은 곳에 붙어 있었다.


똑똑. 문이 열렸다. 이 사람이 원장이구나


원장은 155cm쯤 되는 키에 통통한 체구였다. 둥근 얼굴에 머리는 하얗게 쇠었고, 사뭇 냉정해 보이는 얼굴에 화장기는 전혀 없었다. 늘어난 티셔츠에 몸빼바지를 입고, 네이비 색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어서 와요."


원장이 테이블 앞 소파에 날 앉히곤 망고 주스를 한 팩 건넸다.


"힘들지?"


왜 이 사람도 다짜고짜 반말인데.


"네. 좀 힘드네요."


원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왠지 보통 아줌마 같진 않았다.


"다들 그래, 다들... 얼마나 힘들어. 가족이 이러면 가정이 무너지거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절대 안 울어.


"여기는 주님의 사명을 받들어 운영되는 곳이에요. 이름은 알지? P 공동생활가정. 현재 아홉 분 계시고, 여자 어르신 8분, 남자 1분 이렇게 있어. 전부 우리 가족이라 생각하고 모시고 있어요."  

  

"네. 그런데… 저희 엄마 치매 아닌데 여기 계셔도 돼요?"


"보통은 치매 어르신들이 오지. 근데 엄마는 거의 치매인 것 같던데?"


치매라니... 뇌종양도 모자라 이젠 치매라네.  


"... 그런가요? 저는 엄마가 뇌수술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엄마 하는 행동 보면 영락없이 치매야."


"어떠신데요?"


"잠 안 자고 밤에 돌아다니기, 사람들한테 계속 말 걸기, 방금 한 말 기억 못 하고 또 하기, 자기 나이 헷갈리기, 시간 개념 상실... 이거 다 치매 증상이거든."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는 섬망이나 뇌수술의 단기 후유증이 아니라, 치매인 걸까? 원장이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니, 요양원을 오래 운영하면 치매 감별사가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 요양사들이 맘이 약해서 그렇지, 다른 요양원 가봐. 저 정도면 침대에 묶어놔."


엄마가 묶여 있는다고... 눈물이 솟구쳤지만 간신히 참았다.


"엄마는 이제 옛날 엄마가 아니야.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어. 그걸 알아야 돼."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안에 꾹꾹 눌러놨던 말도 동시에 터졌다.


"원장님, 저 이 상황이 적응이 안 돼요. 우리 집에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너무 혼란스러워요. 엄마가 이러는 게 뇌수술 때문인지,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영원히 이 상태가 지속될지… 아니면 뇌수술 때문이 아니고 치매가 원래 진행되고 있었던 건지, 그래서 공식적으로 치매인 건지... 아니면 수술 전이랑 후에 오는 섬망 때문에 이러는 건지… 근데 섬망도 오래되면 치매로 발전한다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너무 불안하고 죽을 거 같아요."


솔직히 암은 그렇다 쳐도, 치매는 너무 자존심 상했다. 왜 자존심이 상할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원장은 말없이 내가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원인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야. 엄마는 현재 치매 상태야. 엄마가 안타깝긴 해도 가족들은 자기 인생 살아야지. 딸은 아기도 있는데 오죽 힘들겠어."


처참한 기분이었다. 앞으로 항암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치매에 걸렸다면 항암치료를 받으러 갈 수나 있을까? 엄마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  


"엄마 여기 남자친구 있는 거 알지?"


띠용?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여기에 남자 분이 딱 한 명 있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는 못 걸어서 휠체어 타고 말도 거의 못하거든. 엄마가 계속 말 걸고 자기 남자친구라 그러더라고. 먹을 거 갖다 주고."


아 무슨 요양원에서 남자친구야!!!


“엄마가 자꾸 전화번호 물어보고 말 걸어서 힘들어해. 어제는 요양사한테 자기 들어가서 쉬게 해달라고 수신호까지 보냈다니까…“


엄마 진짜 치매가 맞나 보다… 하아...


"자 여기 계약서. 잘 읽어보고 사인해요."


다른 일이었으면 계약서를 읽는 둥 마는 둥 했겠지만, 이 계약서는 꼼꼼히 다 읽어봤다. 전반적으로 '본인들이 성심껏 어르신을 돌보겠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래, 엄마가 집에서 혼자 있다가 하늘나라 갈 뻔했는데,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잘 모셔주실 거야.


"저... 엄마 장기요양등급 없는데 괜찮나요?"


"원래는 안 되는데, 100퍼센트 자부담으로 하면 받아줄 수 있어요."


계약서 세 번째 페이지에 금액이 나와 있었다. 한 달에 238만 원. 간식비와 식비가 더해지고, 1인실이라 10만 원이 추가되어 있었다. 간병인 불렀으면 400만 원인데, 이 정도면 싸다.


"여기 있으면 요양등급 받는 것도 도와줄게요. 엄마가 만 65세 넘었으니 가능해요."


"요양등급 받으면 한 달에 얼마 내면 되나요?"


"3등급 받는다고 치면, 한 달에 한 20만 원 내외예요."


"꼭 받아야겠네요."


"꼭 받아야죠."


원장은 어느새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특실로 옮기고 싶어 하는데, 괜찮아요? 한 달에 10만 원 추가되고.”


"네 옮겨주세요. 특실은 뭐가 달라요?“


"넓어요.“


"네, 괜찮아요. 옮겨주세요."


나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아기가 어리지?"


"네 지금 돌도 안 됐어요."


"그래 얼마나 힘들어... 아기 돌보랴 엄마 신경 쓰랴... 이제 엄마는 신경 안 써도 돼. 우리한테 맡겨. 자기 가정 지켜야지 언제까지 엄마한테 매여 있을 순 없잖아. 그리고 여기 올 필요 없어. 아무 때나 전화하면 우리가 엄마 바꿔줄 테니까 통화 자주 하고."


"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엄마 보고 갈래?"


시야가 흔들렸다.


"그래도... 돼요?"


"그래. 잠깐만 보고 가."


원장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무실 문밖으로 거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살며시 거실로 나갔다. 공간이 꽤 넓었다. 열 개쯤 되는 간이의자들이 거실 벽에 달린 TV를 향해 나란히 놓여 있었다. TV에는 만화영화가 틀어져 있고, 할머니 네 분이 TV를 향해 앉아 있었다. 치매노인들이라 그럴까? 시선은 TV를 향해 있지만 딱히  보는 것 같지 않았고, 얼굴에 표정이 하나도 없었다.


창문 바로 앞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눈에 초점이 뚜렷하지 않았다. 저분이구나, 우리 엄마 남친. 원장이 덧붙인 말에 의하면 40대 초반에 뇌졸중이 와서 몸도 못 가누는데 엄청 폭력적으로 변했다가, 약을 잘 처방받고 폭력성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대신 걷지도 못하고 말도 거의 못 하게 되었다.


엄마는 어딨지?


"어이, 미실 언니 여기 오라 그래."


그러자 저쪽 공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거 놔, 나 부엌에서 음식 해야 돼."


엄마 목소리다.


"아이, 언니 잠깐 나와보래."


엄마가 누구랑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요양보호사의 팔에 붙들려 휘청거리며 걸어오다가 나를 보고 그 자리에 멈췄다.


'엄마...'


엄마는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은, 무해한 눈.


"너어... 진짜 이럴 수 있어?"


"엄마! 잘 있었어?"


나는 일부러 쾌활하게 말을 건넸다.


"너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원장을 바라보며 '그래도 되냐'는 눈빛을 보냈다.


"미실 언니, 딸이랑 방에서 얘기 나눠요 그럼."


원장이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다. 엄마 방은 거실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들어가니 2평쯤 되는 방에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있었다. 한쪽에는 환자용 변기와 엄마의 분홍색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너희들한테 실망했어. 내가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없었잖아.”


“미안해 엄마. 우리가 사정이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화 한 통화만 하자고 해도 안되는 게 말이 돼?”


“…”


“그리고 왜 핸드폰이 안 되니. 아무랑도 통화를 못하니 가슴이 터질 거 같애. 핸드폰 새로 사와. 그럼 다 해결될 것 같애.“


“…알겠어 엄마. 새로 하나 사올게.”


거짓말. 더 많은 거짓말을 피하려면 화제를 전환해야지.


"엄마 더 넓은 방으로 옮기고 싶다며? 옮겨."


"아냐 나 여기 좋아~ 나 집에서도 넓은 방 두고 좁은 방에서 지내잖아. 안 옮겨도 돼."


말이 다른데? 슬쩍 원장을 봤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다가 거실로 나가버렸다.


"류미야, 나 여기 언제까지 있어야 돼?"


"엄마... 지금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회복하고 나와야 돼. 조금만 더 있어, 응?"


"... 그래 여기 한 두 달은 있어도 될 거 같애. 아니면 한... 세 달? 여기 너~무 이뻐! 미주 이모 친구가 좋은 집에 살아서 다행이야.“


다행이다. 아직 엄마가 여기 요양원인 걸 모르는구나. 마음이 놓인 나는 엄마에게 짓궂게 말을 건넸다.


"엄마 여기 남자친구 있다며?"


엄마가 '아이고 이 바보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야 장난이지, 내가 그럴 사람이냐? 내가 여기서 얼마나 심심하고 할 일 없으면 그 짓을 다 하겠어. 나이도 50대 초반인가 그런데... 내가 진짜 그러면 미친 거지."


...엄마 정상이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류미야, 나 잠깐 나가고 싶어. 응? 집에서 옷만 좀 가져올게. 갔다 오자."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안 돼. 이건 엄마의 계략일 수도 있어. 엄마랑 차를 탔다가 엄마가 내리지 않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라. 그러면 정말 난감해진다. 여기에 어떻게 데려왔는데. 엄마는 평소 꾀가 많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머리를 써서 늘 기발한 해결책을 내곤 했던 오미실 여사였다.  


"엄마 나 이제 가야 돼. 조금 있음 차 막혀서 너무 오래 걸려."


"잠깐만 갔다 올게 응? 그래봐야 다녀오는 데 30분밖에 더 걸리니?"


그거 못 가서가 아니란 말야, 엄마. 엄마가 일단 나간 다음에 안 돌아오겠다고 버티면 내가 너무 난감해지잖아. 갑자기 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엄마를 감당할 수 없다.


"엄마, 애기가 지금 많이 아파. 열이 40도까지 올랐다가 내렸는데 계속 안 좋아. 빨리 가봐야 해."


엄마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정말? 아니 아기가 왜 아프데. 그럼 얼른 가 얼른. 나 괜찮으니까 가서 애기 봐. 옷은 나중에 가져와도 되니까 걱정 말고 얼른 가."


"엄마… 잘 있을 수 있지?"


"응 잘 있을게. 낮엔 괜찮아. 밤에가 문제지. 누가 지키고 방 밖에 못 나오게 하니까 답답해 죽을 지경이야. 그래도 한번 지내볼게. 걱정 말고 가."


엄마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암 진단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울지 않은 엄마를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나 보다. 엄마가 나를 엄청나게 원망할 줄 알았는데, 나름 안정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하느님 성모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거기서 식사 잘 하고 규칙적인 생활(5시 기상, 8시 취침)을 하다 보면 분명히 좋아질 것이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전화가 왔다. 원장이었다.


"잘 갔지? 아까 가고 나서 엄마한테 이 얘기 저 얘기 전했거든. 그런데 류미 씨가 ‘우리 집에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더니 엄마가 울더라고... “


암수술을 네 번이나 받아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던 오미실 여사가 울었다고 했다.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마냥 밝은가보다 생각했는데, 엄마는 다 알고 있었나보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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