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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Sep 22. 2023

늙고 병들어감이 슬픈 이유

(14)

엄마의 G대학병원 외래 진료 날이었다. 다양한 암 이력답게 엄마는 외래 진료도 많았다. 2주에 걸쳐 뇌 신경과 교수, 비뇨기과 교수, 호흡기내과 교수,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내분비내과 교수를 각각 다른 날 만났다. 그때마다 오빠나 내가 요양원에서 엄마를 픽업하기도 하고, 요양원에 택시를 보내 요양보호사와 동행하게 해 병원에서 만나기도 했다.   


엄마가 요양보호사와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초여름인데 엄마는 경량패딩을 걸치고 있었다. 안 그러면 견딜 수 없이 춥다고 했다. 몸이 야위고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듯했다. 이런 몸으로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을까? 치료를 계속할지 말지 의사와 상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치료 중단은 엄마에게 없는 옵션이었다. 엄마는 내일 하늘나라에 가도 오늘 치료는 반드시 받을 사람이었다.


엄마와 동행한 요양보호사는 미주 이모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요양보호사가 엄마 핸드폰을 몰래 주며 말했다.


"사람들한테 연락할까 봐 아직 안 돌려줬어요. 봐서 잠잠해지면 돌려줄 거니까 걱정 마요. 혹시 또 누구한테 메시지 보내지 않았나 확인해 봐요."


엄마의 핸드폰 잠금을 풀고 카톡과 문자를 확인했다. 예상보다 더 심했다. 할머니 댁 위층 반장한테만 메시지 보낸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오빠 친구 엄마(10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남), 작은 엄마, 엄마 고등학교 동창, 엄마 걷기 동호회 회장한테까지 문자를 보낸 이력이 있었다. 전부 밤 늦게 발송되었다.


내용은 한결같았다. 갇혀 있으니 꺼내달라는 요청이었다. 텍스트는 맞춤법과 철자가 엉망이었다. 오미실 여사가 미쳤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겠구나. 엄마 나중에 이 사람들 얼굴 어떻게 보나. 그러나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엄마가 치매일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사실지도 모르는데 체면이 중요할까? 미쳤다고 생각하면 그러라지.

 

요양보호사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엄마가 말했다.  


"류미야, 나 내보내줘. 집에 가고 싶어."


"엄마 안 돼. 회복할 때까지 세 달만 있으라니까. 방사선이랑 항암치료가 세 달 걸린다니까, 그것만 끝나고 집에 가자."


"나 이제 괜찮다니까? 혼자 집에서 다니면 돼."


"안 돼. 부축 안 하면 걷지도 못하잖아."


"나 그리고 영국 갈 거야."


"갑자기 영국은 뭔 영국이야. 이 몸으로 비행기 열 시간씩 못 타. 그리고 항암이랑 방사선은 어쩔 건데."


"의사한테 영국 다녀와서 하겠다고 말할 거야. 이따 사진관 가서 사진 찍고 여권 갱신할 거야."


"엄마 제발... 간다고 쳐도 누가 엄마랑 가. 혼자 갈 거야? 난 같이 못 가."


"너 필요 없어. 미주 이모 친구랑 가기로 했어. 비행기 값만 내면 내가 숙소랑 먹을 거 다 책임진다고 했더니 좋대. 같이 가겠대."


요양보호사님이 장단을 맞춰준 모양이었다.


"엄마 고집 좀 부리지 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진짜."


"그리고 내일 저녁에 아줌마들 모임 있는데, 거기도 갈 거야."


엄마는 아프지 않을 때 하던 모든 것들을 똑같이 하려고 했다. 암 발병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격받아서 삶의 모든 희망을 놓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엄마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을 넘어, 불가능한 걸 하겠다고 우기고 있었다. 기운이 없어서 어디 기대지 않으면 앉아 있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우겨봐야 본인만 슬퍼질 뿐인데,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구는 걸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그러면 이 현실이 없던 것처럼 될 것 같아서?


"안 돼. 엄마 왜 이래 정말. 이 몸으로 무슨 모임에 가."


"갈 거야. 내가 총무라서 장부 가지고 가야 돼. 다들 나 기다린다구."


"장부는 내가 나중에 찾아서 아줌마들한테 보내줄게. 걱정하지 마."


"내가 가야 한다니까?"


"아 안 된다니까? 엄마 억지 좀 부리지 마! 정신 좀 차려!"


"너 안 된다는 말 좀 그만해! 제발 좀 그만하라구! 제발…!!"


엄마가 소리를 지르더니(그래봐야 모기 소리 만했다)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더라. 까마득해서 기억도 안 났다.


"나... 지금까지 암 네 번 걸렸는데 한 번도 안 울었거든? 근데 지금 너무 서글픈 기분이 들어."


엄마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뼈만 앙상한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엄마의 작고 깡마른 어깨가 들썩였다. 너무나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나 살아 있다고 알리고 싶어. 얼굴 보여주고 싶다구. 어디서 들은 얘긴데, 모임에서 갑자기 사라지거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조용해졌다가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죽은 거래."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는 사람은 사회라는 무대에서 의도치 않게 퇴장당한다.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었던 엄마는, 인사할 틈도 없이 사회에서 제외되었다. 친척이나 친한 모임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소식을 듣겠지만, 행복센터 영어 수업, 바리스타 수업, 뜨개방 모임, 걷기 동호회 모임에서 엄마는 어느 순간 유령처럼 사라져 있을 것이다.


하늘의 새처럼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살던 엄마의 세계가 작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2평 남짓한 요양원 방에 갇혀 밖에도 못 나가고, 사람도 못 만나고, 심지어 연락이 끊겨 고립되었다. 하다못해 집에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엄마는 죽는 날까지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엄마에게 자유는 위험했다. 정신과 신체가 아픈 사람에게 자유가 과연 최우선일까? 그래도 살아 있어야 자유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만약 야생에서 살던 새가 크게 다쳐 평생 새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새가 자유의지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사람의 선택은 짐승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같을까, 다를까?


한참 울던 엄마는 잠잠해져 있었다. 많이 미안했다. 내가 아이와 남편을 두고 집을 나와서 엄마의 식사를 챙겨주고, 밤에 밖에 나가는 걸 온몸으로 막고, 끝없이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치매 증상을 감내하고, 모임에 엄마를 들쳐업고 데려다준다면 엄마는 어느 정도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늙고 아픈 사람이 그나마 덜 초라하게 생의 마지막을 살 수 있으려면 젊고 건강한 누군가가 자기 삶을 어느 정도 혹은 완전히 희생해야 한다.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를 건사할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이었다. 현재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을 갖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류미야, 나 저번에 문자 받았는데 나이스필(엄마가 좋아하는 이불 브랜드) 반값 할인한대. 전화하면 될 거야. 여름 이불 주문해 줘."


요양원에서는 정해진 이불만 덮을 수 있다. 세 달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엄만 요양원에서 언제 나올지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불을 주문해도 못 덮을 가능성이 더 크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의 일상을 고집하며 헛된 희망을 갖는 엄마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왜 엄마는 죽음이 머나먼 날의 이야기인 것처럼 굴까.


"그래 엄마. 주문해 놓을게."


포기다. 그냥 알았다고 말했다. 영국에 간다, 모임에 나간다, 집에 돌아가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상 이불을 덮는다…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고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내가 애초에 차단하는 건 또 다르니까. 그나마 이런 것들이 엄마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지도 몰랐다.


"오미실 환자 들어오세요."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진료 차례가 되었다.


"오미실 환자, 지금 폐에도 암 재발한 거 아시죠?"


엄마의 독한 암은 신장에서 폐로, 또 뇌로 전이되었고 폐에 재발이 됐다.


"다음 주부터 방사선이랑 항암 치료 병행할 거예요."


"선생님, 엄마 몸이 이렇게 안 좋은데 견디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충분합니다."


피검사 결과지를 본 의사가 말했다. 수치야 정상일지 몰라도 이런 몰골을 보고도 충분하다고 말하다니. 대체 얼마나 안 좋은 사람들까지 독한 치료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엄마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 영국 가려구요. 갔다 와서 치료해도 되죠? 영국에 아무 때나 가서 있을 수 있는 집이 있어요 별장처럼. 조심해서 갔다 올게요."


‘누구 맘대로’ 하는 표정을 짓던 의사가 어이없이 픽 웃었다.


"허허 그쵸? 이거 봐요, 충분하다니까. 다음 주부터 치료받고 이겨내 봅시다."


의사가 엄마의 의지를 단번에 꺾어버렸다. ‘엄마가 머리 수술을 받아서 좀 이상해졌다‘고 말할까 하다가 엄마가 자존심 상할까 봐 가만히 있었다.


진료실을 나왔다. 이제 요양원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엄마 잘 있어, 알겠지? 다음 진료 때 만나. 치료받을 때까지만 있는 거니까 잘 적응하구. 알았지?"


"그래, 세 달만 어떻게든 해볼게. 걱정 마.“


역시 늘 괜찮다 걱정 말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오미실 여사였다. 또 언제 마음이 바뀌려나.


불안한 평온이 깨지지 않길 바라며, 엄마와 요양보호사를 택시에 태워 요양원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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