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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Sep 26. 2023

엄마의 요양원 외출, 그리고 중고차 딜러

새들은 죽기 전 어디로 갈까(15)

엄마의 외출날이었다. 요양원 입소 후 한 달 만에 하는, 병원 외래가 아닌 첫 일반 외출이었다.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할 때 원장은 면회, 외출, 외박이 자유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를 만나러 가려고 연락하면, 코로나를 핑계로 자제할 것을 권했다. 병원도 그랬지만 요양원 또한 코로나는 이들 편의대로 운영할 수 있는 쉬운 핑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처음 코로나가 터졌을 때 병원과 요양원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던가. 코로나에 민감할 수밖에.


요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선물로 사온 떡 2상자를 손에 들었다. 어린이집이든 요양원이든,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에는 잘 보이려 하는 편이다. 그래야 내 가족을 더 잘 돌봐주지 않을까 해서다. 돈이라도 찔러 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니 선물이라도 잘 챙겨야지.


현관문을 두드리니 요양보호사가 나왔다. 처음 보는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미실 어르신 외출 때문에 왔어요."


"네, 안 그래도 지금 아침 드시고 나오셨어요."


뒤쪽에서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류미야."


엄마는 다 늘어진 티셔츠에 몸빼바지 차림이었다. 평소 집에서 예쁜 무늬에 매끄러운 감촉의 홈웨어만 입던 엄마가, 이제 완전히 요양원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엄마! 잘 지냈어?"


"응. 얼른 나가자."


"미실 언니, 옷 갈아입고 나가야지."


엄마가 요양보호사와 함께 방에 들어갔다. 갈아입고 나온 옷차림도 촌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체육복 윗도리에 경량패딩, 아래는 어두운 색 등산 바지였다. 눈치 빠른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아유 미실 언니는 옷이 죄다 캐시미어야. 여기선 그런 거 못 입어요. 세탁기에 돌리지도 못하는데 누가 그걸 손빨래하고 앉아 있어. 이 옷 다 새 거고 편한 걸로만 골라 입힌 거니 그리 알아요."


"옷이 무슨 상관이야. 얼른 가자 류미야."


나는 엄마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늘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해서 다니던 엄마는, 이제 내 차 오른쪽 뒷좌석에 앉았다. 조심해서 차를 출발시켰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여기 수상해. 아무래도 요양원 같아."


뜨끔했다. 룸미러로 엄마를 보았다.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닌데, 느낌이 좀 그래."


나는 맞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쩌지. 어쩌긴 어째, 말 돌려야지.


"엄마 근데 아까 그 촌스러운 잠옷은 뭐야? 그런 거 입고 지내는 거야?"


"응 여기는 옷을 돌려 입더라고. 이 옷도 누구 건지 몰라. 그냥 주는 대로 입는 거야."


하긴, 여럿이 생활하면서 매일 빨래를 돌릴 텐데 개인별로 어떻게 다 분류하겠어. 편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류미야, 잠깐 집에 들르자."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 엄마. 점심 먹으러 가야지."


"방금 아침 먹었는데 무슨 점심이야."


"집에 갈 일이 뭐가 있어. 나랑 드라이브나 하자, 응?"


"됐어. 집으로 가. 잠깐만 있다 나올 거야. 넌 왜 이렇게 안 된다고 하는 게 많니?"


난감했다. 잠깐이라고 하는데, 믿어야 할까? 집에 들어가서 안 나오겠다고 버티면 난감해진다.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다. 하지만 엄마를 요양원에 넣어놓고 해 달라는 건 아무것도 안 해줬는데, 이거 하나는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알았어 엄마.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는 거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엄마를 부축해서 내렸다. 엄마의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의 4층이었다. 엄마가 건강할 땐 이 정도 높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젠 한 층 올라가는 것도 버겁다. 엄마는 중간에 여러 번 쉬면서 겨우 4층까지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은 깨끗하고 햇볕이 들어와 환했다. 엄마가 이사오기 전 리모델링을 해 새 집이나 다름없었다. 계단을 올라오며 숨을 몰아쉬던 엄마가 거실에 주저앉았다. 나도 옆에 앉았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주말 오후인데도 조용했다.  


엄마는 이사 온 지 겨우 며칠 만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요양병원, S병원 응급실, G대학병원, 요양원... 엄마가 이 밝고 아늑한 집에 돌아와, 작은 전기밥솥에 밥을 해 먹고, 보들보들한 나이스필 이불을 덮고 '내 집이 최고다' 하며 잠드는 날이 올까?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앉아 있던 엄마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힘들다며 침대에 누울 줄 알았는데,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벽에 걸린 5월 달력을 부욱 뜯었다. 6월 달력이 나타났다. 그래, 이제 6월이지. 엄마는 뜯은 5월 달력을 돌돌 말아 고무줄로 묶어 바닥에 놓았다.


이 행위가 조금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집을 떠나 있고, 암이 뇌로 전이되어 개두술까지 받았고,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또 이 집에 돌아오게 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엄마가 이 집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이 새 달에 맞춰 달력을 뜯은 것이라니. 게다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달력을 뜯어서 뭐 하나' 혹은 '나중에 돌아오게 되면 그때 뜯어야지' 이런 복잡한 생각 하나 없는 행동이었다. 달이 바뀌면 달력을 뜯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고 있었다.


당사자가 저럴진대,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이불속에 누워 처한 상황을 비관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수시로 치매 카페에 들어가 극단적인 사연을 읽으며 머릿속에서 엄마를 요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또 폐쇄병동으로 옮겼다가를 반복하고, 나를 욕할지도 모르는 친척들과 엄마 친구들에게 말할 변명거리를 온종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방 달력은 아직 4월에 멈춰 있었다. 현실에 발 붙이고 필요한 일은 하지 않은 채 불안에 떨고만 있었다. 나야말로 너무 많은 생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저렇게 한 치의 의심 없이 삶을 향해 가고 있는데.


장롱을 열어 모임 장부를 뒤적이던 엄마가 쇼핑백에 장부를 넣고 말했다.


"이제 나가자. 다 챙겼어."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점심을 먹은 후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렸다. 내겐 또 할 일이 있었다. 엄마의 차를 파는 것이다.


엄마는 어딜 가든 차를 가지고 다녔다. 장롱면허로 20년을 살다 큰맘 먹고 운전을 시작한 그녀는 17년 동안 차를 몰고 전국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12년 탄 아반떼를 중고로 팔고 신형 아반떼를 샀을 때 주변 사람들이 '또 아반떼냐'고 비웃었지만, 엄마는 아랑곳없었다. ‘내가 제일 편한 차 타는데 뭐가 문제냐’면서. 


제비꽃이랑 첫 드라이브와 첫 여행도 저 아반떼로 갔었다. 내게도 추억이 많은 차라 막상 팔려니 가슴이 아렸다. 엄마가 정신 차렸을 때 차가 없어져 있으면 얼마나 슬퍼할까. 하지만 엄마가 혹시라도 운전대를 잡으면 큰일이 난다. 빨리 팔아버리는 게 상책이다.


엄마의 아반떼는 산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주행거리가 7만 킬로미터에 달했다. 참 많이도 다녔다 우리 엄마. 조수석 대시보드에는 엄마가 운전할 때 듣던 올드팝 CD, 5만 원권, 자동차등록증, 장바구니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는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운전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은 엄마로부터 가장 즐거운 일까지 빼앗아 가버렸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딜러가 나타났다. 중고차 앱에서 찾은 딜러였다. 미주 이모의 지인이 중고차 딜러라서 물어봤을 때 800만 원 정도를 말했는데, 이 앱에서 어떤 딜러가 1000만 원 넘게 견적을 내서 이 사람을 불렀다. 물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돌려보내고 미주 이모 지인한테 팔아야지.


"안녕하세요. 중고차 파는 분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딜러는 생각보다 젊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 보였다. 딜러가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흠... 제가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심각하네요. 여기저기 기스도 많이 나고... 자잘한 사고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사실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얼마 전 논두렁에 바퀴가 빠진 적도 있고, 주차하다 여기저기 긁기도 했다. 그때는 단순히 엄마가 늙어서 운전 실력이 확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뇌가 부어 있어서 그랬던 거였다.


"네 그렇긴 해요. 보험 처리해서 고친 것도 좀 있고요."


딜러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제가 차를 몰아볼게요."


그가 차를 몰고 아파트 정문 밖으로 나갔다가 몇 분 후 돌아왔다.


"흠... 고객님, 이 차 엔진 소리도 그렇고 문제가 많아 보여요."


"그래요? 산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그래도 주행거리가 이 정도 되면 꽤 탄 거구요, 어쩔 수 없이 감가는 생각하셔야 해요. 아무래도... 500만 원 이상 드리긴 어렵겠는데요."


"네? 1000만 원 넘게 써내셨잖아요."


"그건 차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구요."


"아 그럼 그냥... 다른 분께 할게요. 아는 분이 800만 원 말씀하셨었거든요."


"그분이 이 차 직접 봤어요?"


"아뇨. 사진만 보내드렸어요."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 사람도 막상 보면 500만 원 이상 부르긴 어려울 거예요. 그냥 하시죠. 제가 550만 원까지 해드릴게요."


이 가격은 말이 안 된다. 팔면 안 된다. 하지만 막상 귀찮기도 했다. 내가 근처에 살면 나중에 다른 딜러를 찾아서 팔면 되는데, 우리 집에서 A시까지 2시간이 걸리는 데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고민되네요. 그래도 가격이 너무 확 낮아지니까..."


"제가 수원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꽤 멀리까지 온 거거든요? 고객님만 믿고 왔는데, 다른 딜러를 찾아본다 이런 얘기하시면 제가 뭐가 되나요? 혹시 제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이세요?"


"아뇨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냥 단순히 견적만 보려고 저 부른 거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너야말로 말을 참 예의 있고 싸가지 있게 한다. 마음 같아선 썩 꺼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자잘한 사고를 많이 낸 것도 사실이고, 오늘 A시에 온 김에 차까지 팔고 가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잘만 하면 최소 200만 원은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겐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오늘 모든 걸 해치우고 잊고 싶었다.


"그래요. 그럼 550만 원에 할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엄마의 행복한 여행길을 함께하고 내게도 많은 추억을 선사한 하얀색 아반떼였다. 우리의 소중했던 매끈하고 뽀얀 차는, 나이도 어리고 칼만 안 들었지 협박을 일삼는 중고차 딜러에게 헐값에 인계되고 말았다.


이 또한 사람이 갑작스레 아프면서 생긴 작은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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