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미 Oct 09. 2023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나려나

(17)

“여보세요. 저 오미실 어르신 딸인데요.”


“아휴 네. 어젯밤에 엄마가 전화했죠?”


“네. 두 번 전화받고 그다음부턴 안 받았는데 오늘 아침에 30통이 와 있더라구요.”


“밤에 난리도 아니었어요. 핸드폰 내놓으라고 난리 치다가 야간 근무하던 요양보호사 손을 깨물었어요.”


“네?? 사람을 물었다구요?”


“네 깨물었어요. 손을, 그냥, 꽉.”


맙소사…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그 사람 많이 다쳤으려나?‘가 아닌 ’혹시 엄마가 퇴소당하면 어떡하지?‘였다. 또 내 못난 모습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안 다쳤어요. 살갗에 자국만 난 정도? 아휴 근데 나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 그 선생님이 성격이 좋아서 웃고 끝났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안 넘어갔어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딸이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어쩔 수 없지. 하여튼 그래가지고 진정시켜서 방에 들여보냈는데, 기어이 옷장 구석에 내가 숨겨놨던 핸드폰을 찾았지 뭐야. 우리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핸드폰은 나중에 따님이 와서 설득해서 가져가요. 지금도 누구한테 전화해서 한참 떠들고 있어. 이제 우리랑은 말도 안 해. 다 싫대.”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동네방네 떠들겠구나. 천하의 불효막심한 아들 딸이 자길 요양원에 감금하고 못 나오게 하고 있다고.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현재 있는 곳이 요양원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 몰라, 오빠와 나의 체면은 잊은 지 오래였다. 엄마의 체면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밥은 잘 드셔. 아침마다 미역국 떠다 드리면 밥 말아서 한 그릇을 다 잡숴. 너무 걱정 말아요. 괜찮을 거야.”


이 분과 통화하면 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괜찮을 거다,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난 버틸 수 있을까.


그때,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누구지?


“여보세요?”


“야 너 진짜 안 올 거야?”


엄마였다.


“어.. 엄마? 이거 누구 핸드폰이야?”


“알 거 없어. 너 왜 내 전화를 안 받니? 당장 오란 소리 못 들었어?”


“엄마 나 못 가. 아기 봐야지.”


“니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빨리 와!”


“어머니 아기 못 보셔. 요새 어깨 아파서 집안일도 못하신대.”


“그럼 어린이집에라도 맡기고 와! 너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엄마는 이제 밤뿐 아니라 낮에도 폭주하고 있었다.


”엄마 제발… 좀! 조금만 있으라고 했잖아!“


아무리 제정신 아닌 엄마라지만 화가 났다. 나보고 어쩌라고. 나도 좀 살자, 제발! 응? 엄마! 응?


“나 지금 뛰어내릴 거니까 알아서 해. 당장 오든지 나 죽는 꼴 보든지.”


뚝. 전화가 끊겼다. 환장하겠네.


그래봐야 엄마의 방은 1층이고, 요양보호사들이 엄마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내버려 둘 리는 없었다. 엄마는 고통스러울지언정 살아는 있을 것이다. 지옥 속에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엄마는 누구 핸드폰으로 전화했을까? 번호를 ‘요양원 직원?’으로 저장하고 카카오톡을 켰다. 친구 목록 새로고침을 했다. 새로운 친구가 떴다.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니 스튜디오 웨딩사진이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젊고 예쁜 신부가 신랑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신랑도 키가 크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뒷배경을 눌러 이전 사진을 보았다. 엄마의 요양원 남자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가족들과 요양원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가 그 아저씨 핸드폰으로 전화했구나.


나는 화면을 터치해 다른 사진을 봤다. 결혼식이었다. 화창한 날, 교회 야외 결혼식장에서 아까 그 신랑과 신부가 퇴장하고 있었다. 환한 미소가 너무나 예쁜 커플이었다. 인생에서 아픔은 요만큼도 없다는 듯 티 없이 밝은 얼굴. 하지만 둘 중 하나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거동도 못하고 10년째 요양원에서 지내는 아픔을 숨기고 있겠지. 이 아저씨의 자식은 둘 중 누구일까? 딸일까, 아들일까?


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또 다른 번호였다. 불길했다. 왠지 엄마일 것 같았다. 받지 말까?


그러나 나는 전화를 받기로 했다. 내가 이겨내야지. 저 어린 부부(중 한 사람)도 아빠가 저런 상태인데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지 않나? 나는 그들보다 최소 10살은 많고, 삶의 연륜도 있고, 강인한 사람이다. 나도 의연하고 담담하게 이겨내자. 자신감을 갖자.


“여보세요?”


“야. 이 개 같은 년아.”


엄마에게 처음 들어보는 쌍욕이었다.


“뭐.. 뭐? 엄마 왜 나한테 욕해?”


“이 썅노무 기집애야. 당장 안 와?“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인내심이 바로 한계치로 치솟았다.


“나한테 욕 하지 마.”


“내가 욕 안 하게 생겼어 이 개 같은 년아? 나 죽기 일보 직전인데?”


“욕하지 말라니까.”


“욕이 문제야 이 썅노무 기집애야? 왜 안 오냐고! 어?”


‘엄마는 ‘개 같은 년’과 ‘썅노무 기집애’라는 두 가지 욕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는 욕이 그게 다야? 나는 눈을 감고 엄마는 환자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동요하지 말자’를 되뇌며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다.


“빨리 와! 당장 와! 이 개 같은 년 내가 가만 안 둬. 빨리 와!!”


“못 가.”


“이게 진짜! 내가 암 때문이 아니라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이라고! 너는 니 엄마를 요양원에 가둬놓고 잠이 오니? 어?? 너나 오빠나 똑같애! 자식이라고 키워놨더니 이것들이!!!“


“그래도 못 가!!!”


“나 죽을 거야!! 이 개 같은 년아!!!”


“욕 좀 그만해!!!!”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넌 내가 죽는다고 해도 안 오냐?! 나 죽을 거라고!!!"


“이러지 마 엄마… 응? 상황에 맞춰서 행동해야지 이렇게 생떼를 부리면 어떡해? 제발 나 좀 살려줘. 이게 현재 상황에선 최선이야.“


“너는 배부르고 등따시게 집에서 놀고먹는데 뭘 살려줘? 나 이런 데다가 처박아놓고 룰루랄라 하고 있잖아!! 나 죽기 일보 직전인데!!”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 나도 몰라 이제!!! 그냥 죽어!! 죽어!! 나 지금 팍 죽어버릴 거니까 엄마도 거기서 죽어!! 죽어 그냥!!!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핸드폰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소리 지르다 목이 터져 내가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가 잠시 멈칫하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래 죽을 거야! 너도 죽고! 나도 죽고! 그냥 다 죽어!!!!"


전화가 끊겼다. 나는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 등신아, 너야말로 왜 살아 있니. 아픈 엄마에게 죽으라고 소리 지르는 쓰레기 같은 인간아. 벌레만도 못한 인간아. 누가 보면 무슨 10년씩 엄마 간병했는 줄 알겠다. 불과 몇 분 전에 크게 깨달은 것처럼 굴며 삶의 연륜이니 강인함이니 운운하며 전화를 받았건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한없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격파탄자였다.


-

다음 날, 엄마의 외래 진료가 있었다. 오빠가 차로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긴장해서 소식을 기다렸지만, 오빠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오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 알유오케?

- 엄마오케?


오빠에게서 답장이 왔다.


- 어 지금 교수 진료 기다리는 중

- 요양원에서 밥 먹고 아침 6시 반에 출발

- 새벽 4시부터 나한테 전화 계속...


- 나는 3시 3시 반 4시 반...


엄마는 전날 낮에 그렇게 전화를 끊어놓고 새벽에 또 전화를 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 잠깐, 지금 진료 들어간다 이따 연락할게


10분쯤 있다 연락이 왔다.


- 엄마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 시작할 거야

- 3주에 한 번씩 3개월 해본대


- 근데 엄마 그 상태로 항암 가능하대? 방사선도 같이 하고?


- 어 가능하대


- 가능하다니 다행이네


- 엄마 미영 이모랑 통화하다 핸드폰 집어던짐

- 자꾸 집에 가겠대


- 미치겠네

- 엄마 폭력적으로 변했어 지금?


- 그러고 나선 또 멀쩡해

- 잠시 딴생각하느라 잊어버린 듯


이후 오빠는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아침에 종양내과부터 시작해서 신경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진료가 주르륵 있어서 오후 늦게야 모든 진료가 끝날 예정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하게 오빠의 연락을 기다렸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 오빠에게 카톡이 왔다.


- 엄마 오늘 요양원 절대 안 들어가겠대

- 내일 엄마 요양병원으로 옮기자

- 거기도 안 들어가면 엄마 혼자 살라 그래. 더 이상은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 내일 병원 안 들어가고 버티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 인간 뭐야. 병원은 왜 또 들어가며, 경찰은 불러서 뭘 어떻게 할 건데. 엄마는 병원 들어가면 그야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네 번에 걸친 암수술과 항암치료로 인해 엄마는 병원에 학을 뗐다. 병원 밥은 입에도 안 댔다. 요양원은 그나마 가정집처럼 운영되어 버티는 거지, 병원에서는 하루도 못 살지도 몰랐다. 지금으로선 요양원이 최선이라니까. 정말 자식들끼리도 손발 안 맞아서 못해먹겠네.


- 기다려 봐. 내가 요양원에 연락해 볼게


요양원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문 앞까지만 데려다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거기 계신 분들 모두 그런 거에 익숙하고 훈련받은 사람들이니 믿고 맡겨달라는 말과, 엄마가 말만 그렇게 세게 하지 폭력적인 성정은 아니라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 오빠, 그냥 오래. 문 앞까지만 데려다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한대

- 치매 카페에 보면 요양원 들어간 사람들 중에 죽어버린다고 자식들 협박하고 전화 100통씩 하는 사람들도 있대

- 그러다가 적응하고 잘 산대

- 암튼 엄마 암 네 번 걸리고 감당 안 돼서 정신적으로 무너진 거 같으니 당분간 지켜보자...


오빠가 엄마를 요양병원, 거기도 안 되면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들여보내자고 날뛸까 봐 최대한 좋게 구슬렸다. 나는 엄마를 오빠에게서까지 지켜야 했다.


- 나 이제 엄마 태우고 간다

- 가는 길 중간에 엄마 집이 있어서 딴 데로 새거나 집 지나치면 차 안에서 난리 날 가능성

- 나 교통사고로 죽으면 장례나 잘 치러줘라


왜 오바하고 있어. 그러나 지금 엄마 상태를 보면 아예 가능성 없는 일도 아니었다


- 조심해서 가


그러고는 또 한참 연락이 없었다. 난 어김없이 어두운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차 사고로 엄마랑 오빠를 동시에 잃으면 어떡하지? 그럼 합동 장례를 치러야 하나? 조카는 어쩌고 새언니는 어쩌지? 근데 그러면 나 평생 조카 못 보나? 나는 늘 그렇듯 불길한 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전화가 울렸다. 오빠였다.


"여보세요? 어떻게 됐어?"


"야, 엄마 들어갔다. 와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왜? 문 앞에서 버텨서?"


"하아... 요양원 가는 길에 엄마 집 지났거든? 엄마가 내려달라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러면서 차에서 뛰어내린다고 계속 차 문을 열려고 그래. 그래서 내가 한 손은 운전대 잡고 한 손은 문 잠그는 버튼 다다다다다 계속 누르면서 갔어. 오늘 엄마랑 손 잡고 황천길 건너는 줄 알았다."


"근데 달리는 차에서 문이 열려?"


"어 열리지. 진짜 식겁했어. 내가 엄마 딴생각하라고 미주 이모한테 전화해서 저녁 먹자고 말하라 했더니, 통화하다가 금방 기분 좋아지더라. 그러고 요양원에 도착했는데, 진짜 황당한 거 뭔지 알아?"


"뭔데?"


"그 앞에 직원이 나와 있으니까 나 한번 흘겨보더니 '너 나중에 보자' 이러고 나갔어. 그러고 자기 발로 성큼성큼 들어갔어. 와... 유주얼 서스펙트인 줄. 대박이야 엄마."


긴장이 풀린 오빠와 나는 서로 키득댔다. 마치 우리가 옛날에 엄마를 두고 놀리던 것처럼. 엄마는 유머 감각도 별로 없고 고지식했지만, 종종 독특한 언행을 보였다. 진지하게 하는 행동이 오히려 웃음 포인트가 되는 류의 사람이랄까. 오빠와 나는 각자 목격한 엄마의 엉뚱한 언행을 화두에 올리며 낄낄대길 좋아했다. 그만큼 우리는 엄마에게 관심이 많았고, 엄마는 우리 집에서 단연 인기 스타였다. 귀엽고 엉뚱한 그녀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위기의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 엄마가 순순히 들어가서 안심이었고,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현명하게 대처한 오빠에게 고맙기도 했다.


요양보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씻고 식사하고 계세요. 잘 들어오셨으니 걱정 마요. 에휴 오빠도 어깨가 축 쳐졌더만. 얼굴빛도 넘 안 좋고. 자식들이 고생이야. 피곤할 텐데 얼른 자요."


순탄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이 좋으니 다 괜찮았다. 불안하지만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고 있음에 감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