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살아간다.

by 여름

오늘부터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사실 나는 엄청난 것을 해냈다.


어떠한 일로 인해 극심한 상처가 생겨 깊게 파이고 또 파였다.

하지만 5개월 후, 어떠한 공간과 시간 속 경험으로 치유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삶에서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워낙 행복이라는 단어를 잘 안 쓴다.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너무나 행복했기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행복했다. 오히려 그 순간과 시간들이 그리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내 기억 속 행복한 구슬로 자리 남았다.

그 경험을 하는 동안 오로지 나의 목표는, 한 달 동안 나의 열정을 배움에 다 쏟아부어야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렸을 때 슬며시 웃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오로지 이 두 가지였다.


열심히 기록을 하고 넓은 배움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이라도 꼭 전하는 것.

여기에 열정을 다 쏟아냈다. 열정과 노력을 다했더니 정말 후회가 없었다.


일을 끝내는 마지막 날, 함께했던 사람들이 정성 가득한 선물의 시간을 전해주었는데

목이 메고 아쉽고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편지와 함께한 사람들의 반짝반짝하고 따스한 눈빛이 담긴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소중하고 따뜻하고 따스한 문장을 받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따뜻한 순간들을 받아도 되는 존재인가?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땀도 엄청 많이 나고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다. 저번에는 어떠한 일로 인해 자존감이 이미 바닥이었고 상처에 또 상처를 내기 바빴다.


하지만 사람들이 ‘함께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재밌었다, 존경한다’하는 문장을 보고 들으면서 아 정말 다행이다. 나와의 순간들을 기억해 주고 표현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내 목표가 이루어졌구나. 사람들에게 닿았구나. 진짜 다행이다 하며 눈물이 계속 주르륵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그 일과 관련된 단어만 들어도 한숨이 푹푹 나오고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근래 함께한 추억들을 꺼내어 기억해야 다시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고 살아갈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돌보기 싫고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눈물이 날 때, 함께한 추억들을 생각했다.

살아야지. 살아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지. 그러려면 나 자신을 보살펴야지. 수없이 다짐했다.

솔직히 불안해서 이 일을 다시 도전하지 않고 좀 쉬면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는 없고 그 상처를 똑바로 다시 직면하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이번에는 조금은, 조금은 다를 수도 있잖아.’ 하는 작은 희망을 가졌다.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어. 이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많이 그동안 고민했으니까. 괜찮아.’ 하며 작은 희망에 붙들며 다시 도전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작은 희망이 어마 무시한 일들을 일어나게도 한다. 그래서 자꾸 살아가고 싶다.

그 일과 관련된 단어 한 글자조차 듣기 싫어했던 내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따뜻한 단어들로 내게 남게 되었다. 이렇게 신비하고 꿈같은 일들이 일어나니까 자꾸 살고 싶어진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삶을 잠시 멈추고 싶을 때,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길거리에서 들리거나

사랑하는 존재에게 전화가 온다거나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직원분께서 아이스크림을 정량보다 더 넣어드렸다고 따스한 말이 건네지거나. 이러한 작지만 소소하고 따스한 순간들이 나를 다시 살려낸다.


그래서 나는 ‘다시’의 힘을 너무 좋아해서 다시 도전한 거 일지도 모른다.

깊게 파인 상처의 기억이 이제 생각이 잘 안 난다. 그 상처는 흔적이 남아있지만,

이제 새 살이 돋아 따스한 시간과 순간들이 가득 담긴 좋은 연고를 꾸준히 발라주며 잘 돌봐가며 살아가고 싶다. 상처에 새 살이 돋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다. 긴 시간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거니까.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정말 대단하다고. 내가 나 자신을 이제는 꼭 안아줄 수 있다.


이 ‘다시’의 힘을, 이 엄청난 힘을 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여전히 펜을 들고 기록을 한다.

이 글을 쓰며 ‘다시’의 힘이 생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삶을 살아갈 것이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