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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현 Oct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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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톡, 까까톡, 까까까ㅌ…

 황급히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대형 강의실이어서 ‘예의 없음’의 주인공을 쉽사리 찾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누구야?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건이었다. 건? 눈썹이 자동으로 치켜세워졌다.


 그의 연락은 이랬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았던 거야? 와, 내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 이 방이 더 추워. 그리고 화장실에는 왜 잠금장치가 없어? 린 말로는 네가 만든 표지판으로 표시하면 된다는데, 정말 그렇게 하면 끝이야? 그리고 샤워 부스는 왜 이렇게 좁아? 도대체 어떻게 씻은 거야? 물 조금만 틀어도 막히고 난리도 아니야. 아, 맞다. 더 중요한 건, 이 집 아들 뭐야? 제이크, 걔는 왜 전자발찌를 하고 있어? 


 다행히 린의 집에 들어간 학생이 있었구나. 내가 소개해 준 것은 아니었다. 아마 건이 머물 방을 찾아 전전하고 있을 때, 마침 ‘한국인 여자 아이’가 쓰던 방이 있다며 홍이나 박이 알려줬을지도. 그리고 그 ‘한국인 여자 아이’가 ‘샤넌’이라면, 예민해 보이고 까다로워 보이는 사람이 살던 집이라면, 분명히 믿고 살 수 있는 곳이겠지, 라며 결론을 내렸을지도.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 여자 아이가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를.


 어떻게 답을 보내야 할지 망설였다. ‘그 집을 당장 나오세요!’라고 하기에는 린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싶었고, ‘조금만 참고 살아보셔요~’라고 하기에는 고난도의 생활이 맞긴 했으니까. 잠깐, 근데, 난 그 집을 떠났는데 왜 아직도 그 집안일에 책임을 지고 있지?


 생각은 그렇게 했으나, 내가 누구인가. 소심한 인간은 강의 중에는 답장을 보낼 수가 없으니 수업이 끝나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대신 머릿속에서 써야 할 문장들을 그려보았다. 최대한 당신을 이해한다는 태도와 함께 그 집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반영해서.


 오랜만이에요. 거기는 봄인데도 날이 너무 춥죠? 그 방이 원래 창고로 쓰던 방이라 많이 추워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두꺼운 목욕 가운 하나 장만하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 린에게 말해서 이불 하나 더 달라고 하셔도 되고요. 그리고 화장실은, 참, 어이가 없으시죠? 예전에 린 가족 중에 한 분이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대요. 문이 잠겨 있어서 큰일이 날 뻔했다고, 그래서 잠금장치를 달지 않았다고 그랬어요. 제가 만든 표지판은 믿고 쓰셔도 돼요. 처음에는 여러 사고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가족들도 잘 지켜서 상상하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샤워는 15분 이내로 끝내셔야 해요. 샤워부스가 간이로 설치되어 있어서 그 이상 사용하시면 화장실 전체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해요. 아시잖아요, 영국은 건식 화장실인 거. 그리고 제이크는.


 머릿속에서 커서가 깜빡깜빡했다. 겪지 않은 일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제이크. 집으로 돌아온 제이크. 갖고 있지 않아야 할 물건을 지니고 있는 제이크.






 모두가 들떠 있었다. 차를 렌트해서 갈지, 택시를 나눠 타고 갈지 의견이 분분했다. 매해 여름마다 그 도시에서는 열기구 축제가 열렸다. 축제가 시작되면 도시의 어느 곳에서건 하늘만 올려다보면 열기구가 있었다. 그 장관을 담은 기념품도 넘쳤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가끔 나도 모르는 어떤 것들이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바라보게 하는 듯하다.


 친구들도, 딘과 제이크도 모두 언덕으로 떠났다. 방에서 도시의 설렘을 느꼈다. 저녁까지 이어지는 음악 소리에 커튼을 젖혔다. 무엇인가가 번쩍했다. 불꽃놀이였다. 펑- 펑- 촤르르 떨어지는 불꽃들. 헛헛한 마음을 안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린은 소파에 삐딱하게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거실로 나오며 작은 목소리로 ‘굿나잇-’ 이라고 말했다. 린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2층에서, 그녀는 1층에서 일찍 잠이 들었다. 우리는 몰랐다. 폭죽 소리에 총성도 함께 섞였던 그 밤을.


 욕쟁이 할머니 쉘리의 말이 맞았다. 억울한 일이었다. 제이크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다만 제이크가 잘 따랐던 린의 한 친구가 진짜 범인이었을 뿐. 쉘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소리를 질렀고, 피터는 아무 말이 없었다. 린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제이크가 왔다면, 그는 여름 방학으로 가족들과 그리스로 떠난 이후 8개월 만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경찰들은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막 입국한 제이크를 공항에서 체포했다. 너무나도 길었고, 너무나도 혹독한 여름이었다.






 답장을 보냈다. 제이크가 돌아왔군요. 린은, 잘 지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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