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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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던 소리도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봐봐, 이렇다.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누군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처음으로 들을 때는 안타까워하던 사람도 자꾸만 들으면 ‘저 사람은 자신밖에 모르는군’하고 거리를 둔다. 내 경험담이므로 확신해서 말할 수 있다. 눈썹을 꿈틀 움직이거나 눈동자의 빛을 잃고 자기 손등만 내려다보거나 ‘으응’이라 말하며 자세를 고쳐 앉던 그들의 속마음이 들렸다. 차라리 단 한 번만 할 걸. 내 이야기가 그들의 마음에 깃털처럼 우아하고 천천히 내려앉았다면 좋았을걸.
그런 면에서 하농 할머니도 실패했다. 별명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농만을 연주했다. 드르르륵. 피아노 의자를 끈다. 탁. 피아노 뚜껑을 연다. 따따다다. 이어지는 연주. 엄마는 그 소리가 들리냐며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봤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했다. 강도는 세지고 빈도도 잦아졌다. 여든에도 피아노를 연주하시다니 정말 멋지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오, 존경스럽다. 음, 너무 열정적이신걸. 아, 이제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
“이거 갖다드리면서 말해보라니까.”
엄마는 검은 봉지에 담긴 비타민 음료 상자를 내밀었다. 우리 저번에 세탁기 수전 교체하는 것도 도와주셨잖아. 감사하다고 하면서 슬쩍 말하면 되겠다. 그렇게 해맑은 일이면 엄마가 하지 왜 나한테 시키는 걸까. 그리고 이건 엄연히 엄마 집의 일인 것을. 아, 엄마 집 아니고 우리 집.
이것 참 별거 아닌데 엄마는 서운해했다. 왜 너는 자꾸 엄마 집이라 해? 엄마 명의로 된 것이라 엄마 집이라 한 것이온데 저에게 왜 엄마 집이라 하냐고 물어보신다면…….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3년을 혼자 생활하다가 엄마와 함께 지내는 것은 어려웠다. 엄마는 경계가 없었다. 깁스한 팔을 위로 들고 한껏 굴욕적인 자세로 씻고 있으면 엄마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괜찮냐고 물었고, 한밤중에도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왜 아직도 안 자느냐고 물었다. 이후부터 잠금장치를 걸었는데 엄마는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공포 영화의 장면처럼 문고리가 혼자 다급했다. 그래서 이제는 문을 살짝 열어놓고 지내기로 했다.
딸, 일어나서 아침 먹어. 엄마 나간다. 문을 열어두었더니 오히려 엄마는 문밖에서 말했다. 지난 일 년의 생활을 요약하면 이렇다. 엄마가 출근한다. 거실로 나온다. 소파에 앉는다. 잠이 몰려온다. 수술 이후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은 낮보다 통증이 심했다. 수술한 부위가 콕콕 쑤시고 땡땡하게 붓는 느낌 때문에 누울 수가 없었다. 침대에 앉아 밤을 꼬박 보냈다. 때로는 새벽 두 시. 보통은 새벽 네 시. 무겁고 둔탁한 엘리베이터 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관통하기 시작한다. 우웅. 철커덩. 냉기가 쏟아지는 벽에 기대 하루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웃들이 모두 어딘가로 떠나고 조용해진 아파트에서 비로소 눈이 감겨왔다. 이대로, 이대로 천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소파와 내가 하나가 되는구나. 깊은 곳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라치면 피아노 소리가 끼어들었다. 드르르륵. 탁. 따단다다. 따다단다. 따다다단.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세상에는 낮에 자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곳에 산다고 모두가 똑같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장한 표정으로 옷에 조심스럽게 팔을 집어넣고 한 손으로 간신히 단추도 잠갔다. 모자도 푹 눌러썼다. 머리를 감지 않고는 절대 밖으로 외출하지 않는 나의 원칙이 하농 할머니 덕분에 깨지기 직전이었다.
현관문 앞에 서서 대사를 정리했다. 관리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인사를 한다. 저번에 집에 오셨던 기사님께 비타민 음료 상자를 건넨다. 안부를 묻고 감사함을 이야기한다. 기사님, 죄송한데요, 위층 할머니 피아노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러는데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한 손에는 깁스를, 다른 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나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상상하는 사람에게는 현실이 늘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사무소에는 기사님이 계시지 않았다. 대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직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아, 어, 저번에 감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못했고, 그대로 예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아, 괜찮은데.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직원이 일어서서 검은 봉지를 가져가는 찰나 깁스한 내 팔을 쳐다봤다. 인사를 하고 사무소를 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메스꺼웠다. 지구를 타고 도는 내가 멀미하고 있나. 한겨울의 햇빛이 너무 강렬했다. 신기루처럼 보도블록이 자글자글하게 보였다. 근데 늦은 밤도 아니고 낮에 피아노 좀 치겠다는 게 잘못된 거야? 듣기 싫으면 네가 집을 나가 있던가. 요즘 잘 나왔다는 이어폰 사서 끼고 있어. 그리고 젊은 사람이 그 시간에 집에서 뭐 하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래. 괜히 어른이 피아노 치는 거 갖고 트집이나 잡으면 되겠어? 평범한 이웃집 할머니도 아니고 상가 주인 할머니인데 민원 넣었다는 거 들켜서 좋은 게 뭐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