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행복독립

욕 좀 해본 엄마 1

얀이(고1), 레야(중1)

by 최여름

"사실은 중학교 때 엄마가 말이야..."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내 과거를 밝혀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욕 대결 챔피언이었어."

아이들은 놀라기보다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나의 사춘기의 정점이자 흑역사가 가득했던 중학교 시절, 초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내고 올라온 우리들은 거의 동시에 성과 욕에 눈을 떴다. 욕의 어원을 분석하며 새로운 욕을 만들기도 했고 그 시골 마을 어디서 구했는지 옷을 입다 만 언니들의 사진이 실린 잡지를 가져와 돌려 보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이 험한 분위기에 동조되지 않는 얌전한 범생이었다. 그러나 나라고 사춘기가 고상하게만 지나갔을 리가. 나는 아직도 그때 곁눈질로 본 사진들을 선명하게 다 기억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제의 그 욕대결이 돌발적으로 열렸다. 일대일로 마주 앉아 서로 한 마디씩 욕을 하고 상대가 못하겠다고 백기를 들면 그 자리에 다른 도전자가 앉아서 또 욕을 주고받는 그런 방식이었다. 거기에 내가 왜 끼어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결승전에 가 있었고 상대는 남학생이었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았던 데다가 나름 꽤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나의 전력은 밖으로 노출된 적이 없었다. 나는 차곡차곡 저장고에 쌓아둔 것들을 꺼내 새로운 욕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기억은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임을 참고). 그리고 내 기억에 아직 총알이 많이 남았는데도 남학생은 금방 포기를 선언했다. 모두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때가 생각난다.

"엄마가 말이야, 욕을 못 하는 게 아니야. 안 하는 거지. 내 입 더러워지는 게 싫거든."

작은 시골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아이들은 욕에 노출될 일이 잘 없었다. 그러나 얀이가 중학교를 진주로 진학하면서 더 이상 나의 보호막이 거기까지 미칠 수 없게 된 걸 알았다. 게다가 얀이는 이미 사춘기가 시작되어 나와 한창 휴전과 개전을 반복하는 전쟁 중에 있었기에 '바른말, 고운 말을 쓰세요.'이 따위 말은 콧구멍으로도 들릴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남녀공학이긴 해도 남녀합반은 아니었던 터라 교실은 그야말로 야생 수컷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 홀로 내던져진 아들. 그러나 나는 아들이 그곳에서 독야청청하길 바라는 꿈을 과감히 버렸다. 중학생 아들에게 욕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들이 내게 '엄마, 뒷담화는 나쁜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해도 엄마는 절대 하지 마세요.' 이런 것과 같다. 직장인에게 상사 뒷담화는 몸속의 독소를 빼내는 생명 유지 기술이다. 나도 안 되는 걸 아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피할 수 없다면 과감히 정면돌파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막을 수는 없다. 집에서 안 한다고 밖에서도 안 할 거라는 순진한 착각은 개나 줘 버려야 한다. 나의 바람은 아들이 욕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욕을 안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해 봐야 한다. 해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욕? 하고 싶으면 해. 대신, 해도 되는 상황과 하면 안 되는 상황만 구분해 줘."

나의 개방 정책으로 우리 애들은 집에서도 욕을 한다. 특히 둘이서 싸울 때는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다. 정말 참을 수 없이 괴로울 때는 "와, 진짜 듣기 싫네." 한 마디 한다. 진짜 욕은 나한테 하는 게 아니더라도 쉽게 지지 않는 오염물을 뒤집어쓰는 것 같다. 어쨌든 내 인내력을 발판으로 애들도 자기 취향 따라 선호하는 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도그베이비', '신발 세 개', '텐베이비' 같은 저질 욕은 입에 담지 않는다. 나는 그런 말들을 실제로 나름 순화(?)해서 보여 준다. 욕은 하고 싶고 입 더러워지는 것은 싫으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다시 말하지만 난 꽤 창의적인 사람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물의 다른 이름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