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ings 19:12
-엄마, 너무 시끄러워요.
로아는 귀를 막고 구석에 앉아 작게 외쳤어요. 로아의 외침은 아무도 들을 수가 없었어요. 로아의 부모님은 서로 큰소리로 이야기하느라 들을 수가 없었지요. 어른들은 무엇이든 큰소리로 이야기해야만 잘 들린다고 생각했어요.
로아는 혼자 조용히 놀이터로 나갔어요. 부모님은 여전히 큰소리로 이야기 중이었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모래에 그림을 그리던 로아는 또다시 귀를 막았어요.
-너무 시끄러워. 그만, 그만.
놀이터 옆 골목에 계란과 과일을 실은 트럭들이 장사를 시작했네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모여든 사람들도 모두 큰소리로 이야기해야만 했어요. 로아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 걷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아이의 온몸을 흔들었어요. 로아는 깜짝 놀라 마구 달리기 시작했어요. 귀를 막아도 막아도 소리는 계속 들렸어요. 큰소리 때문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로아는 조용한 곳을 찾아 마을 뒷산으로 들어갔어요.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 이상 큰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 새도, 바람도 모두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어요. 로아는 가쁜 숨을 내쉬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안녕? 안녕.
나뭇잎들이 서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요. 잎들이 내는 소리는 작고 다정해요.
-나를 조심해 줄래?
풀들과 꽃들의 목소리도 친절하고 따뜻해요. 로아는 얼른 풀이 없는 곳으로 발을 옮겼어요.
-넌 누구야?
어디선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요. 로아는 모두가 듣도록 큰소리로 말했어요.
-난 로아야.
-얘, 너무 시끄럽잖아.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면 어떡해? 밤에 움직이고 아침에 잠이 드는 동물들도 있다고.
-아, 미안. 정말 미안해.
로아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더 미안했어요.
-그것도 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리니까 그렇게 소리 내지 않아도 돼.
-그래?
로아는 속으로 말했어요. 정말인지 궁금했어요.
-그럼.
-그럼.
-아주 그럼.
이번에는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들려왔어요. 그래도 시끄럽지 않았어요. 로아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어요. 나무와 꽃과 새와 곤충들이 가득했지만 아무도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어요. 대화가 멈추고 고요가 찾아왔어요. 숲의 친구들은 더 이상 로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로아가 물을 때만 대답을 해주었지요. 아이는 졸음이 몰려왔어요. 로아의 방은 어두운 밤에도 조용하지 않았거든요. 시곗바늘소리, 나무침대가 삐그덕거리는 소리,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창 밖의 발걸음 소리까지. 엄마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유난 떤다며 안방으로 가버렸어요. 문을 쾅 닫고서요. 밤새 로아는 시끄러운 악기연습실에 있는 것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로아는 모처럼 편안히 잠들 수가 있었어요. 아이가 잠들자 간간히 소곤거리던 잎들도, 새들도 모두 고요를 지켜주었지요.
로아가 발견된 것은 혼자 집을 나간 지 사흘 만이었어요. 그동안 경찰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온 마을을 샅샅이 살피고 방송에도 아이의 얼굴과 이름이 계속 나왔어요. 로아의 엄마는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지하실에서 혹은 누군가의 차 트렁크에서, 혹은 쓰레기더미 속 고양이와 같이 있다가 불쑥 나타나리라고 기대하는 듯했어요. 날마다 날마다 더욱더 큰 소리로 아이를 불러댔지요. 로아는 엄마의 마음이 다 녹아내리던 그날 산림보호요원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어요. 엄마는 큰소리로 아이를 찾다가 목소리가 다 닳아버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껴안고 울고 또 울었어요. 하지만 로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어요. 심장과 심장이 서로 맞닿은 채 대화를 했으니까요. 아빠는 수염으로 까끌해진 얼굴로 아이의 뒤에서 꼭 껴안았어요. 아빠에게서는 감사하다는 말이 계속 들렸어요.
로아가 돌아온 후로 로아의 집은 매우 조용해졌어요. 엄마와 아빠는 아무리 큰소리로 불러도 아이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아도, TV 볼륨을 최대로 높여도 아이는 더 이상 귀를 막지 않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다시 한번 크게 울었어요. 이제 아이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로아는 조용해진 세상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제는 아무도 큰소리로 떠들지 않아요. 로아는 큰소리 속에 가려진 세상의 모든 작은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TV 옆 올리브 나무가 목마르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몰래 들어온 정찰개미가 동료들을 부르는 소리도 들렸어요. 그뿐 아니었어요. 고요한 세상 속에서 로아는 몰랐던 많은 비밀들도 알게 되었지요. 불러도 나오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만 있던 고양이 핑꾸는 어둠 속에서 매일 꿈을 꾼대요. 밤마다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나비 한 쌍이 창문에 붙어 잠들 때까지 듣고 있다는 것과 싱크대 아래 바퀴벌레가 알을 낳고 쓰레기통 주변을 서성이며 불안한 밤을 보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말라버린 줄 알았던 수선화 뿌리는 곧 새로운 싹을 올려 보낼 준비를 하고 있고 무당벌레는 여린 속날개를 펴 보이며 자랑하기 바빠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말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의 소리는 아무리 커도 시끄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무도, 아무도 들을 수 없었어요.
로아는 그 모든 소리를 다 들었지만 엄마 아빠는 아이가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서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안심시켰지만 엄마 아빠는 매일 어두운 얼굴로 한숨만 쉬었어요. 그래도 로아는 행복했어요. 매일 아침 햇살은 로아의 어깨를 감싸며 사랑한다고 말해요. 부드러운 바람은 아이의 볼을 스치며 너는 소중하다고 전해 주어요. 커다란 달은 로아의 발끝을 밝혀 주고 별들은 왕의 노래를 불러요. 로아는 고요 속에서 모든 목소리를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