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행복하겠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혼밥이었다.
남편은 퇴근하고 저녁을 먹지 않고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쉬고 있다.
나는 간단히 치즈케이크와 과일을 놓고 술 한잔 기울였다.
그럴 때마다 퍽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웃긴 것 같다.
결혼했다고 혼밥을 안 하는 부부도 없을 거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혼밥은 이제 필수가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난 남편과 연애할 때처럼 일상을 다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며 살 줄 알았다.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익히 알고 있는 말처럼 상대방을 바꿀 수 없기에 내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나는 이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면 나아질 거라 믿고 있다.
이 믿음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이효리가 한 명언이 있지 않은가.
본인은 돈이 많아서 남편이랑 차도 마시고 여유롭지만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둘 다 퇴근하고 오면 녹초가 되는데 말이 예쁘게 나오겠냐는 것이다.
서로만 바라보면 됐던 연애시절에서 억 단위의 집을 사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30대로 넘어온 우리 부부. 아무래도 집중할 게 많아졌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자 일에 몰두하고 투자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다.
상황은 바뀌었는데 이전과 같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일까?
오늘은 투자공부 강의의 마지막 날이었다.
200억 정도의 자산가인 강사가 에필로그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연히 돈은 필요하지만 부자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행복하는 법은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유독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다.
누군가 내게 행복하는 법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이제 막 방법을 안 것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결혼하고 남편과 계속 밥 때문에 싸우면서 불행하다고 느꼈지만 그 불행을 만든 것은 나였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다행히 긴 터널을 빠져나와보니 '행복은 내가 행복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과 산책하면서 물었다.
"자기는 막 누가 들어도 아는 그런 브랜드 아파트를 여기서(서울에서) 마련하고, 아이 낳아서 키우고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
"응"
단순하고 심플한 대답이었다.
"아.. 나는 아니야. 뭔가 한 채를 마련했으면 더 늘려보고 싶을 것 같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계속 도전할 것 같아"
"응 그래, 좋아 자기야"
남편과 매일 밥을 차려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행복이라고 믿었던 나.
그냥 나랑 있으면 좋다는 남편.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야 부부 사이가 더 좋다고 믿는 나.
사소한 장난을 치면서 자주 행복해하는 남편.
우리가 보는 행복의 관점은 많이 달라 보였고, 하나의 물음이 생겼다.
나는 왜 자꾸 조건을 걸까?
솔직히 남편과 나의 생각, 감정을 많이 나누지 못하는 불만은 여전하다.
나에겐 그게 중요한데 남편은 퇴근하고 녹초가 된다.
얘기도 많이 나눠야 하는데 돈도 많이 벌고 아껴서 투자를 하자고도 한다.
심지어 본인은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로운 걸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남편은 좀 벅찬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부부들은 통장도 각자 관리하고, 워낙 다들 똑똑하니까 되게 합리적으로 결혼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반면에 이혼사유에도 각자 할 일을 정확히 나누지 않아 불화가 많이 생긴다는 내용을 들었다.
예를 들면 집안일도 50:50, 시댁과 친정에 지출하는 시간과 비용도 반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아니, 정확히는 남편이 요즘사람(?) 같지 않아서 계산적이고 조건을 거는 내가 부부관계를 잘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빈도가 적을 뿐 혼밥 할 때 앞에 앉아주기도 하고,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대부분 맞춰주는 남편이다.
나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겨주는 남편이라면 더 바랄 게 없지 않나.
누군가는 나의 이런 사소한 불만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우리 부부의 밥 전쟁이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운하고 욕심이 들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기회일지도 모르고..
장점과 교훈을 찾으려면 끝이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됐다.
이제 그만 행복해야겠다.
이제 그만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야겠다.
남편과 식성이 안 맞아도 같이 밥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지금부터 '조건을 달지 않고 행복하기'를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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