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도피처는 일상

오전 10:21

by 썸머

아침 일기를 쓰고 월요일 줌모임을 위해 강의를 듣고 만능 노트와 만능 카드를 쓰고 동영상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6명인 단톡방에서 새직장 출근과 시험을 이유로 두 명이 나갔다. 4명이 남은 곳에서 활동 안 하는 것은 두드러져 보였다. 여럿이 있을 때는 묻어가기가 가능했는데 오늘은 참석 안 하고 발표 준비 안 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마음 가장 어지럽히는 해야 할 것을 바로 한다는 심정으로 강의부터 들었다. 들으면서 만능 노트에 정리하고 다시 만능 카드에 요약했다. 내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엌 식탁에서.

줌모임 시작 시간은 8시. 작은 아이 유치원 등원시켜 주려고 자전거로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카메라를 끄고 소리로만 듣기도 도로 소음이 있어 어렵다. 참석이 어려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동영상을 찍기로 했다. 물론 내 연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말하기 단톡방은 말하기 연습하기 위해서 들어온 곳이다. 이후에 토요일 아침 고전 낭독회 그리고 시낭송 단체에 가입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에 자신이 없던 걸 연습하기 위해서다. 알게 된 곳에 망설임 없이 바로 들어갔다. 새로 들어간 그곳은 시작이어서 처음부터 빠짐없이 참여가 가능했다. 그러면서 이곳의 중요도를 잊고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준비해야 하는 게 많아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웠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야 하고, 읽고 들은 후에는 요약해야 하고, 그것을 보지 않고 5분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 얼개 짜기, 3-3-3법칙은 아직도 시도가 어렵다. 글쓰기도 말하기도 바로 쓰고 바로 말하는 즉흥성은 가능하지만 선 생각 후 정리해서 글쓰기와 말하기는 시도가 안 되고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작을 막고 있다. 알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구시렁거리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안방, 작은방, 신랑방. 각방에서 다들 자고 있다. 잠 깨우지 않고 말하기 동영상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아 손으로 들고 하려고 하니 팔이 아프고 힘들 것 같았다. 바닥에 앉아 할 수 있는 곳이 생각나 그곳으로 옮겼다. 공연장처럼 우드로 바닥이 깔려있고 벤치가 있는 곳.

6시의 이른 아침. 8월 끝자락의 여름. 이미 밖은 환하다. 나와 다른 목적으로 그곳을 사용하기 위해 나온 할머니가 한분 계셨다. 깔개를 깔고 빨갛게 잘 익은 고추를 펼쳐 놓으셨다. 할머니를 뒷배경 삼아 벤치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 핸드폰 뒤에는 손 잡이를 부착해 두어 4,50도 각도로 세워졌다- 나무 판이 깔린 바닥에 털푸덕 앉았다. 만능 카드를 앞 뒤로 한번 읽어보고 바로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연습도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발표를 위해 강의를 듣고 요약하는 게 힘들게 느꼈던 것도 노력하기 싫어서였다. 만능 카드를 읽고 내용을 숙지하고 생각하고 안 보고 말하기는 연습이라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래서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녹화버튼을 눌렀다.

원래 취지는 만능카드로 요약하고 만능 카드를 보지 않고 말하기지만, 한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강의를 들었고 만능 노크를 적었고 만능 카드까지 적었다.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다음을 위해서. 하기 싫은 거는 계속 미루게 만드는 요인이니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내가 편하기 위해 한 행동들의 합리화인걸 안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의 준비는 거기까지 인 거 같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만능 카드를 보면서 말하기 연습은 머릿속에 있는 말과 생각들을 말로 다 펼쳐 놓지 못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느낀 것과 말하기는 달랐다. 그 차이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생각정리 후 말로 연습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생각도, 말하기도 사전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이건 미비하지만 그래도 해보았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시도했고 작지만 결과를 냈다. 그거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과 성과가 있었다. 오늘도 작은 한 발이지만 내디뎠다.

그 실천이 있어 생각은 고랑을 따라 흘러갔다. 오늘은 우선순위로 자역쓰 쓰기를 하자. 이번주는 자역쓰 목차, 얼개를 잡고, 거기에 맞춰 글을 삽입하고 이제껏 머릿속 생각을 꺼내 써 놓은 것을 읽어보며 정리하자. 다듬고 더하면서 이번 한 주는 자역쓰 마무리하는 걸로 하자고. 근장 담당자에게 이번주 근무를 개인 사정으로 못할 것 같다고 톡을 보내자고.

그렇게 마음먹고 조금은 여유 있게 아침을 보내다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내 머릿속에는 한 개 이상의 생각이 공존한다. 오늘 글쓰기를 위해 보조배터리를 충전했고, 노트북을 충전했다. 카페에 가서 쓸 생각이었고 9시 오픈 시간부터 밤 9시까지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다 글을 쓰고 글을 다듬고 탈고 준비를 마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다. 노트북을 자전거에 실어 갈 수 있을까? 점심,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지? 아침은 건너 띠려고 했는데. 생각이 많아지며 스트레스로 인한 배고픔이 느껴지려 하고 괜히 아침이 먹고 싶어졌다. 좋지 않은 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어느 하나를 딱! 하고 선택하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었다.

저번주중에 근장담당자가 이번주 근무 스케줄을 근장 단톡방에 올리고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을 때, 비어있는 3시간까지 추가해 주 40시간을 다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불과 며칠 전에 더 할게요라고 의욕적으로 톡 해 놓고서 월요일 출근도 전인 8시에 이번주 못하겠다고 말한다는 게 무성의해 보였고, 무계획적인 인간 같아 보였다.

정말 중요한 거라면 나를 무계획형으로 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침시간, 저녁시간등을 이용해 자역쓰를 쓸려면 쓸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에 게으름과 미루기로 하지 않고서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에 마음 잡고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큰 맘먹은 게 내 생각임에도 옳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확신이 없었다. 내가 글을 잘 쓸지도 모르겠었다. 생각의 확실한 답이 없었다.

그러다 대략의 결론을 내렸다. 결정을 확실히 하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 내가 이제 것 해왔던 습관화된 것이 여러 가지에 가능성을 열어둔 여러 갈래의 생각이었다. 담당자에게 이번주 스케줄 확인 톡을 올렸으니 하는 걸로. 그리고 다음 주 스케줄 올려주고 확인 요청할 때는 생각해서 스케줄 넣는 걸로. 근장 할 수 있는 시간인 520시간을 다 채울지, 책 탈고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하고 스케줄 넣기로. 내가 확인 답톡 보낸 건 지키는 걸로.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고 기름져 무겁게 느껴지는 내 머리를 감았다. 시간 없으니 빨리 준비하라고 아이를 재촉했다. 평소보다 십 분쯤 늦게 준비했지만 아침 준비를 잘 해준 아이 덕분에 집에서 서둘러 나올 수 있었다. 자전거로 집을 출발하면서 신호를 무시하고 최대한 빨리 달렸다. 폭포 앞에서 아이가 가까이 가 달라는 평소에도 하는 요구를 시간 없어 안된다고 했다. 출근 시간을 맞추려고 급한 마음에 자전거도 빨리 달렸다.

어린이집에 도착한 시간은 평소시간과 비슷했다. 신호 무시와 쉼 없는 질주가 단 몇 분이지만 차이가 있었다. 늦지 않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근장 출근지인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을 향해 달리면서 '글쓰기의 도피처는 일상'이라는 게 떠올랐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는 거 같았다. 지역쓰 쓰기의 도피로 출근 중이었다. 글감 같았다. 잊기 전에 이 제목으로 브런치스토리에 가서 글을 써야겠다, 고 생각했다.

근장 담당자분 책상에 있는 출퇴근 기록지에 사인을 하고 오늘 오전 근무지인 3층 문학실로 왔다. 띄워져 있는 인터넷 창에 네이버를 검색하고 네이버 창에 브런치 스토리를 쳤다. 언제 사용했을까. 아이디칸에 클릭하니 브런치스토리에 아이디로 사용하는 내 메일만 하나 떴다. 비번을 넣고 카톡 2차 인증을 통한 로그인을 했다. 그리고 바로 글쓰기에 들어와 출근길에 떠오른 제목을 제목란에 적었다. 문학실 담당자가 내 옆에 와 서있었다. 모니터를 보고는 아침 해야 할 일부터 하죠라고 했다. 빠른 창 변환을 한다고 했는데 글쓰기 제목을 본 것이다. 제목만 써 두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먼저 할 것이었다. 공부하려는데 공부해야지 하는 엄마의 지적처럼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반납도서가 많았다. 서가 정리하는 것으로 한 시간이 흘렀다. 이용자가 복사를 물어왔고 예치금을 사용해 복사한다고 했다. 문학실 담당자분이 예치금을 사용하려면 스캔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스캔 사용법을 배우려고 뒤에서 보고 있었다. 손으로 데스크를 가리키며 가보라고 했다. 이분 지난번에도 가르쳐달라고 말해도 같은 시간에 근무하러 오시는 자원봉사자분이 할 수 있다며 나더러 반납책 꽂는 거 위주로 하면 된다고 했다. 그게 뭐 별거라고 안 가르쳐주는 건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한번 알려주면 될걸 굳이 안 알려주려 하는 게 기분 나쁘면서도 우스웠다. 정말 별거여야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가지. 자기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갈동안 문의가 있으면 해결하기 위해 알아두려던 것을 배울 필요가 없다니.

그렇게 점심시간에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고 그 시간에 출근하신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왔다. 내가 물었던 걸 이용자가 요구해 왔다.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하려는데 안된다. 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도 안 받는다. 다른 근장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안 물어봤다. 자기가 안 가르쳐주고 가고, 안다던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아는데 하면서 못하고 있는 걸 보았다.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벽한 켠에 붙여진 근무자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해 물어 해결하셨다.

그게 뭐라고 안 알려주나. 그 연장선으로 오늘 글 쓸 때마다 옆에 서보고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해 주세요를 세 번은 말한 거 같다. 잔소리로만 들린다. 이쁘게 안 들린다. 그냥 네 하고 만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도 낭비란 생각이다.

서가정리하고 데스크로 돌아오는 데 그 담당자가 포카리스웨트 500ml 페트병을 정리실에 급히 넣는 거 같았다. 급히 움직이는 모습이 숨기는 거 같았다. 두병 이상이었는데 주기 싫어 뒤쪽에 감추는 걸로 보였다. 미운말, 거리감 두는 말, 의도적으로 비꼬는 말등을 감으로 느끼고 그 사람의 행동이 그와 같이 해석했다. 브런치 스토리 글 쓰는 창이 뒤편에 띄워진 컴퓨터 책상에 와 앉았다.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있는 포카리 스웨터 페트병을 하나 주시며 드세요 하고는 뒷말을 붙인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게 웃으면서 여기 일이 단순한 일로 쉬운 거 같아도 집중하지 않으며 실수할 수 있어요. 집중해 주세요. 나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네. 일도 물론 집중해 잘할 테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건 행동보다 말. 그저 웃으면서 냐하면 된다. 그리고 각자 할 일 하면 된다. 하는 일이라는 게 이용자 책 대출, 반납, 예약도서 처리. 도서 관련일들이다. 이분과는 웃으면서 네하면 그뿐이다.

오늘도 일상의 기록을 한다. 기록이 쉼이다. 자역쓰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담당자에게 확인 답을 보낸 이번주 근무를 하는 것으로, 아이 유치원 등하원을 책임지는 것으로 나의 일상을 사는 것으로 한다. 근장을 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음학기 쓸 돈을 준비한다는 생각을 한다. 기분전환을 위해 소비에도 쓰자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스케줄로 잡힌 근장을 한다. 그곳에서 부담스러운 자역쓰 마무리를 다음 주로 미루며 이곳을 도피처로 삼는다.

오늘을 시작했고 시간은 잘 굴러간다. 오늘 할 일을 하고, 하기로 한 일을 못하게 됐다고 어렵고 미안한 톡을 안 보내도 되고, 오늘 일함으로써 돈을 벌고, 다음 주에는 근장이 끝나 여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오늘 일하기로 하고 보니 좋은 점이 많이 보인다. 이제 그 일들을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해나가면 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생각하며 살면 된다. 그 사이사이 생각과 대화와 일상을 기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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