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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09. 2019

서울 와신디 지하철에 똥이 이서

(제주 사투리)


아스팔트 뜨거운 서울의 여름. 산 넘어 바다 건너 제주에서 친구가 왔다. 롯데월드를 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공항철도를 타고 역으로 왔다. "비밀인데 나 지하철은 두 번째라서 지금 좀 신나." 잠실역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지하철 플랫폼으로 갔다.

4호선 파란 라인 서울역. 지하철이 들어온다. 빠르게 지나치는 형광등 빛 창문 안에 북적북적한 사람들이 보인다. 열차가 멈춰 섰다. 어라? 8-4 우리가 타려던 칸이 텅 비었다. 옆 칸에 타려던 사람들도 이쪽 객실을 슬쩍 보더니 다가온다. 문이 열렸다. 먼저 탄 아주머니가 썩은 시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며 옆 칸 중간문을 열었다. 친구가 말했다. "와. 누가 지하철에 똥 쌌어. 대박."


파란 줄의 지하철 바닥 한가운데에 똥이 있었다! 강아지 똥도, 토끼 똥도 아닌 게 크고 뭉쳐진 것이 분명히 사람 똥이었다. 그것도 하나 위에 하나 더. 똥이 두 개. 친구는 '대박'을 연신 외쳐대며 눈을 떼지 않았다.

옆 칸으로 가 문에 달린 유리창으로 똥을 지켜봤다. 다음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똥을 피해 양 옆 칸으로 달아났다. 저 비어 있는 칸에 좀비가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어째 서울 사람들은 태연하네." "조용해서 그렇지. 다들 놀랐을 거야."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며 친구는 말했다. "응 엄마. 나 서울 와신디 지하철에 똥이 이서." 친구는 똥이 아직까지 잘 있다며 똥의 안부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서울은 별 일이 다 있네." 나는 설명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서울에 삼십 년 살았지만 지하철에서 똥도, 오줌도 본 적 없다. 이건 서울 사람에게도 유별난 일이라고 했다. 친구는 '유별나다'가 강원도 말로 '똥별나다'는 걸 아냐며 웃어재꼈다.

가을학기가 개강했다. 강의실에서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났다. 동기들이 친구에게 물었다. "서울 가서 다미 만났다며. 뭐 핸?" 친구가 답했다. "야. 내가 서울 가신디 지하철에 똥이 있더라." 친구는 어디를 갔냐, 맛있는 거 먹었냐, 쇼핑했냐는 질문에도 '서울'만 나오면 즉각 '똥'으로 답했다.



지하철을 두 번 타봤다는 친구는 50%의 확률로 똥을 봤다. 그녀는 '서울 지하철에는 똥이 있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이 정도면 로또가 아닌가? 똥 로또.


명동, 강남, 건대입구 등 북적한 곳만 간 제주 사람은 "서울은 발 디딜 틈이 없다."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서울특별시 쌍문동은 한적하다. 비 오는 날 제주 여행을 한 서울 사람은 "제주는 할 게 없다."라고 한다. 제주는 해가 쨍 한 날 수영하고 오름을 오르느라 바쁘다. 우리는 이렇게 도시를 오해한다.


서울에 대한 오해를, 제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경험을 틀렸다고 지적하고 싶지 않다. 비 오는 제주를 만났어도 '할 것 없는 제주'도 제주가 맞다. 서울 지하철에 똥이 있다는 오해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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