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미 Feb 07. 2020

제주가 하나만 더 있더라면

일상을 벗어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스트레스 풀기'는 일생일대의 과제다. 풀어도, 풀어도 계속 오는 이 녀석은 초딩 시절부터 함께였다. 매주 목요일이면 초인종을 누르던 구몬 선생님은 빨간 색연필로 학습지를 죽죽 그으며 내 마음에 스크레치를 냈다. 그때마다 스트레스 풀기 과제가 되살아났다. 나는 '하늘색 다미'라는 이름으로 크레이지아케이드 게임에 접속했다. 해피 서버 캠프 6 맵에서 물풍선을 날리며 익명을 고수들을 재패했다. 게임이 끝나고 'Win!'글씨가 뜨며 적군의 캐릭터에서 눈물이 죽죽 흐를 때 입이 귀에 걸렸다. 나는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신속하게, 정확하게, 치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해결했다.

크레이지아케이드 캠프 6 맵

 불행이 5만큼 생기면 썬칩 과자를 먹으며 행복을 맛봤다. 불행이 60이나 쌓이면 그 날은 하고 싶은 것만 왕창하는 날이다. 모니터를 열어 '하늘색 다미'가 다른 사람의 아이템을 훔쳐 먹을 때마다 "호우~!"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게임했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알았다. 재수를 하면서도 학원 점심시간에 코인 노래방에 달려가 박봄의 You and I를 불렀다. 나는 제대로 행복했다. 성인이 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행'이었다.

제주도 가고 싶다.

 퇴근길, 야근, 일상의 무료함. 사람들은 '일상에 찌든 나'가 아닌 '여행하는 나'를 찾기 위해 제주에 간다. 제주에서 여행자는 복잡했던 고민을 단순히 풀어내고, 먹고, 사랑하고 돌아간다. 제주는 강릉, 부산, 전주보다 더 여행지답다. 여행의 대표 요소인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기 때문이다. 비행기표를 끊는 순간부터 여행의 시작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김포-제주행 티켓은 나에게 일상이고 과제다.

 3년. '여행 같은 일상'이 단순히 '일상'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제주에서 개강을 여섯 번 맞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친 다리를 이끌고 조별과제 회의에 가기도 했다. 내가 번아웃이 되는 곳은 대한민국 관광 1위 제주도였다. 제주가 다시 여행지가 될 수는 없을까. 일상에서 여행을 생각하는 건 그 또한 과제였다. 제주 여행 일정을 짜면 설레는 게 아니라 가야만 하는 현장학습 같았다. 제주 친구들끼리 신혼여행을 제주로 가라는 농담을 던지곤 한다. 일상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그 자체가 여행이 되어야 한다.

 제주에 살면서도 자주 떠났다. 사람들이 제주를 떠올리듯 나도 마음의 파라다이스를 하나 갖고 싶었다. 작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에서 말하듯, 익숙한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제주. 일상을 벗어나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비행기를 타고 전국 어디를 가도 제주보다 놀라운 풍경이 없었다. 제주가 하나만 더 있더라면 거기로 갈 텐데.

 국내에서 선택지가 없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비행기를 탈거라면 차라리 국제선을 타자.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곳,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 해외. 발리행 국제선 티켓을 쥔 비행기 안. 창밖으로 자그마해진 제주를 내려다보며 입이 귀에 걸린다.

 발리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제주로 되돌려 놓았다. 발리에서 물이 투명한 크리스탈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해도 역시. 제주만 한 곳이 없었다. 국내, 해외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에 견주어도 지지 않는 제주도가 문제였다. 제주로 돌아오기 위한 여행. 나는 ‘스트레스 풀기’ 과제를 위해 이런 여행을 한다.


 안녕하세요. 작가 최다미입니다. 새해가 시작하기 무섭게 배낭을 짊어지고 제주를 떠나느라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 풀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이죠. 글 기다리고 있다는 독자들이 있어 발리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발행을 누르자마자 라이킷 눌러주시는 독자, 하루 하나씩 읽고 있다는 지인 모두 고맙습니다. 브런치를 제대로 시작한 지 석 달만에 구독자 200명을 넘겼습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더 열심히 읽고, 쓰고, 읽히겠습니다.

이전 11화 서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